[1944. 12. 24] 총살 집행 중인 독일군 침투부대
미군 진영에 침투하던 독일군 첩자들이 총살당하기 직전의 모습. 이들은 1944년 12월 23일, '그리프(Grief)' 작전을 통해 미군 전투복을 입고 미군 진영 후방에 투입되었으며, 공공연하게 연합군 최고사령관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 원수를 암살할 것이라고 알렸다. 이들은 미군 전투복을 입고 교란행위를 한 혐의로 사형이 언도됐다.
이들을 처형한 근거는 정확하게 말하면 헤이그 협정 내용 중 '지상전에 관한 협약' 부분이다. 23조에 따르면 "이하의 내용은 특히 금지된다(중략)...휴전을 위한 백기, 혹은 적국의 국기나 군사 표식, 군복을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그리프 작전은 발지 대전투 중 독일군이 실행한 비밀 작전으로, 1944년 12월 17일부터 독일 무장친위대(SS)의 오토 스코르체니(Otto Skorzeny, 1908~1975) 중령에 의해 실행됐다. 이 작전의 목표는 적 전선 후방으로 침투해 연합군 수뇌부에 혼란을 야기하여 작전을 방해하는 것이다.
스코르체니는 독일군 정예를 선발해 '제 150 기갑여단(panzerbrigade 150)'이라는 위장 명칭을 썼으며, 전원 영어를 쓸 수 있도록 교육시킨 후 연합군 후방으로 침투했다. 이들은 연합군으로부터 노획한 차량이나 레플리카 차량을 타고 이동했으며, 장착된 장비류도 모두 실제와 똑같게 달아 위장했다. 이들 침투대는 혼란을 야기하기 위해 연합군 진영 내에서 다양한 전술을 구사했다.
이들은 우선 통신선을 끊고, 도로 표지판을 바꾸고, 거짓 명령서를 뿌려 연합군의 사기를 꺾었다. 일부 대원은 헌병으로 위장하여 연합군 부대의 이동을 다른 곳으로 유도해 혼란을 부추겼다. 이에 미군 수사대가 투입되어 오로지 미국인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고안해 이들 침투대 색출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 브루스 클라크(Bruce C. Clarke, 1901~1988/대장 예편) 준장은 시카고 컵스(Chicago Cups)가 소속된 리그를 잘못 대답했다가 수시간 동안 구금되기도 했다. 그리프 작전이 노린 또 다른 목표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아이젠하워 장군의 납치나 암살이었는데, 이 때문에 미군 당국은 보안문제로 그가 수일간 영외로 나갈 수 없도록 하면서 경호조치를 했다.
그리프 작전이 다소간의 혼란을 야기하긴 했으나, 전반적인 영향 자체는 제한적이었다. 독일 침투대는 보급문제를 겪었고, 특히 미군 전투복이나 지급품이 부족했기 때문에 위장을 오래 유지하기 어려웠다. 발지대전투 중 독일군의 공세는 실패로 끝났으며, 전략적 목적을 하나도 달성하지 못했으므로 결국 연합군은 독일의 이 마지막 공세를 격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