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 세계 최초의 '핸드폰' 개발 - 모토롤라 다이나택
1973년, 잔느 바우어(Jeanne Bauer)가 다이나택(DynaTEC) 핸드폰을 들고 뉴욕 6번가를 걷고 있는 모습. 같이 걷고 있는 이는 이 핸드폰 개발의 책임을 맡았던 모토롤라(Motorola)사의 엔지니어 출신 CEO인 존 밋첼(John F. Mitchell, 1928~2009) 씨이다.
다이나택은 모토롤라 사에서 개발한 셀룰러 폰(Cellular phone) 브랜드로, 사진은 아직 양산단계 이전의 시제품으로 보인다. 모토롤라의 마틴 쿠퍼(Martin Cooper, 1928~)가 만든 다이나택 시제품은 1973년 4월 3일에 완성됐다.
최초 핸드폰에 적용한 '셀룰러 시스템'은 1947년 벨(Bell) 연구소에서 처음 내놓았으며, 이후 주파수 검토 후 미 연방 통신위원회(FCC)가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사이에 다수의 민간 통신용 주파수를 할당했다. 이후 모토롤라의 책임연구원이 된 존 밋첼은 이동 통신 제품 연구에 들어갔고, 트랜지스터를 활용한 첫 "페이저(삐삐)"를 출시했다.
모토롤라는 이미 차량용 무선전화기를 상용화하고 있었는데, 차량용 외의 제품을 출시하지 못하고 있던 이유는 당시의 배터리 기술과 전자부품 영향이 컸다. 우선 아직 부품 크기가 크던 시절이므로 손 안에 들어오게 만들기 어려웠고, 배터리 기술이 초창기 단계였으므로 휴대하고 다니기엔 충분한 전력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당시 모토롤라가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은 자동차 엔진으로 발전기가 돌 때 그 전력을 함께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모토롤라는 휴대용 전화기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함에 따라 1970년대에 집중적인 개발에 들어갔으며, 1973년 시제품을 내놓으면서 "셀룰러 폰"의 특허 대부분을 등록했다.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모토롤라는 첫 시제품을 완성한 후 전화통화를 시연했는데, 이 첫 전화 번호를 잘못 눌러 엉뚱한 곳과 연결됐던 일화가 있다.
모토롤라는 1976년~1977년 사이에 이 "다이나택"을 양산할 계획을 세웠으며, 목표 중량은 1.4kg, 가격은 월별로 약 $60달러~100달러 정도로 책정했다. 모토롤라는 이 가격이 20년에 걸쳐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떨어져 월 약 $10~12달러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정작 FCC의 등록허가 문제가 발생해 다이나택은 1985년이 되서야 출시가 가능했다.
모토롤라는 다이나택 8000x 시리즈 외에도 여러 핸드폰 시리즈를 출시했으며, 1984년 말에 첫 제품이 판매에 들어갔을 때 이 "다이나텍"의 소비자 가격은 $3,995달러(2021년 환율가치로 약 $10,400달러)에 달해 판매량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선구자'였기 때문에 핸드폰 시장은 모토롤라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으며, 1998년 기준 핸드폰 매출액은 모토롤라의 1년 매출(약 $300만 달러)의 2/3를 차지했다.
다이나택은 1989년에 출시된 소형 핸드폰인 마이크로택(MicroTAC)이 시장을 대부분 대체했고, 이후 모토롤라 핸드폰의 대명사가 된 공전의 히트작 '스타텍(StarTAC)'이 1996년에 출시됐을 때는 이미 다이나택 시리즈는 단종된 지 오래였다. 모토롤라는 이후 2000년대 중반에 출시한 RAZR 시리즈까지 선방했지만, '핸드폰'의 시대가 스마트폰의 시대로 넘어가는 추세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후발주자로 등장한 노키아(Nokia)와 삼성, 애플(Apple) 등에게 밀리고 말았다.
결국 모토롤라 사는 모토롤라 모빌리티(Motorola Mobility)와 모토롤라 솔루션즈(Motorola Solutions)로 분사했으며, 모토롤라 솔루션즈는 주로 통신관련 소프트웨어에 집중하면서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지만 모토롤라 모빌리티는 2012년 구글(Google)이 흡수합병을 시도하다 결렬된 뒤 결국 중국의 레노보(Lenovo)사가 $29억 1천만 달러로 인수 합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