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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4. 18] 중국, 후야오방 사망으로 천안문에 시위대 운집 시작

라마막 2024. 4. 19. 21:17

1989년 4월 18일, 수천 명의 학생들이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모여 중국 정부를 상대로 시위에 들어갔다.

정식 시위는 이미 수일 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인 후야오방(胡耀邦, 1915~1989)이 사망하면서 시작됐다. 후야오방은 당시 개혁을 주도하면서 정부의 기업 경영 간섭을 최소화하고, 전반적이면서 폭넓은 사회, 정치적 변혁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의 개혁 구상은 중국에는 아직 부패와 경제문제가 산적했지만 일단 이를 차치하고 자유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물론 중국에는 인플레이션, 부패, 불평등, 정부의 권위주의가 만연한 상태였다.

시위는 학생과 노동자 연대로부터 시작됐다. 학생들은 더 폭넓은 정치개혁을 요구했고, 특히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적 선거를 원했다. 노동자는 인플레 완화에 중점을 둔 정책 도입과 공공 복지를 늘려줄 것을 요구했다. 이 날 운집한 시위대가 워낙 많았으므로, 시위대의 요구는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다소 뒤죽박죽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원하는 시민들이 모이면서 이 날 천안문 광장에는 최소 백만 명 이상이 운집했다.

이들에 대한 대처를 놓고 중국정부도 최초에는 의견이 갈렸다. 온건파는 자오지양(趙紫陽,1915~2005) 국무원 총리 같은 이가 이끈 반면, 강경파는 리펑(李鵬, 1928~2019) 총리 등이 이끌며 대립했다. 시위대 대처를 놓고 팽팽하던 대립은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시위대 진압을 결정하면서 강경파가 승리했다.

중국 정부는 5월 20일까지 계엄령을 선포했으며, 문제의 천안문 광장 시위대 진압으로 야기된 통칭 '천안문 사태'는 6월 4일, 정부가 시위대 적극진압에 나서면서 돌격소총으로 무장한 병력과 전차를 동원하며 일어났다. 이날 사망한 이는 최소 수천 명으로 추정되지만, 이후 시위 진압에 성공한 중국정부가 후야오방의 개혁을 모두 원점으로 돌리고 오히려 언론 통제를 강화하면서 확인할 길이 없게 되었다.

중국은 오늘날도 공산당이 통제하는 1당 지배체제의 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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