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전쟁사/2차세계대전사 127

[1942] 팔렘방에 강하하는 일본군 기록화

1942년경 일본 화가인 츠루타 고로(鶴田 吾郎, 1890~1969)가 그린 '팔렘방으로 강하하는 신의 군대(神兵パレンバンに降下す)'라는 제목의 유화. 1942년에 완성한 이 그림은 '정진집단(挺進集団/테이신슈단)'이라 불리던 일본육군 공정대가 팔렘방 전투 중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강하하면서 수마트라 섬의 팔렘방 활주로와 네덜란드 정유시설을 점령하기 위해 공중강습을 실시 중인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 전투는 일본 육군과 해군 공정대가 최초로 실시한 공정강하 작전이었으나 성과 자체는 절반의 성공으로 기록됐다(전투 자체는 일본군 측이 승리했다). 츠루다 고로는 서양화풍을 지향하는 '요가'운동의 일원이었으며, 일본미술협회 회원이었다. 전후에도 계속 화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던 그는 서구풍과 일본 전통 기법을 섞..

[1942] 수류탄 위에 앉아 휴식 중인 아프리카군단 병사

1942년, 독일군의 아프리카 군단(Afrika Korps) 소속 병사 한 명이 휴식을 취하면서 맨바닥에 앉을 의자 대용으로 M24 막대형 수류탄(Stielhandgrenate) 두 개 위에 앉아있는 모습. 북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 통칭 DAK(Deutsche Afrika Korps)로 불린 독일군 독립군단. 최초 독일은 이탈리아와 동맹을 체결하면서 이탈리아군이 북아프리카 방면을 장악해 중동과 연결, 석유 등을 확보하기를 기대했지만 기대했던 이하의 약체인 이탈리아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심지어 연합군이 북아프리카를 추축국의 '약한 지점'으로 파악하고 상륙하기 시작하자 군단급 원정군을 창설하여 이탈리아군을 지원하기 위해 파병했다. DAK는 히틀러의 총애를 받던 명장 에르벤 롬멜(Erw..

[1941. 4. 11] 동아프리카에서 로마 파스케스를 철거하는 영국군

1941년 4월 11일, 소말리아의 키스마요에서 촬영된 영국군 병사들의 모습. 이들은 당시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에서 파스케스(로마제국 양식의 기둥)를 철거하고 있었다. 이탈리아령 에티오피아(1936~1941)는 원래 에티오피아 제국이었으나,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가 침공하여 5년간 지배했다. 이탈리아령 에티오피아는 오늘날 에티오피아 뿐 아니라 이전 암하라, 하라르, 갈라-시다모- 스키오카를 아우르던 땅이었으며, 이탈리아가 점령한 뒤에는 행정상의 공식 명칭으로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 혹은 'AOI(Africa Orientale Italiana)'라 불렀다. 사진 속 파스케스는 로마의 12개 고대도시 중 하나인 에트루스칸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는 로마가 정복했던 에트루리아의 도시였다. 이 도시의 상징은..

[1945] 일본군과 하룻밤(?)을 보낸 미 해병대원

이오지마 전투 중, 지친 미 해병 한 명이 근처에 있던 진지 하나에 기어 들어간 후 웅크린 채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그가 깨어 주변을 둘러보니 같은 굴 안에는 자신만큼이나 놀라 보이는 얼굴의 일본군 병사가 있었다. 일본군 병사는 곧 진지에서 도망쳐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중에 이 해병에게 "왜 적이 있는 걸 보고도 공격하지 않았나"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래도 하룻밤 같이 잔 사이인데 어떻게 쏘겠어요..."

[2024. 3. 13]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보여준 드골장군의 아들 타계

프랑스의 필리프 드 골(Philippe de Gaulle) 제독이 2024년 3월 13일자로 타계했다. 향년 102세.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장군의 아들인 그는 프랑스가 독일에게 점령당하고 아버지가 영국으로 탈출하자 그 또한 해군에서 복무 중 탈출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메세지를 듣고 탈출한 것은 아니었으며, 영국에서 계속 저항할 요량으로 탈출했다고 한다. 이후 자유 프랑스 해군에 합류한 그는 전쟁 내내 자유프랑스군 초급 지휘관으로 싸웠으며, 종전 후에도 계속 군문에 남았다. 해군 항공 분야에서 내내 근무한 그는 1982년 대장 계급으로 예편했다. 이후 정계로 옮긴 그는 파리를 거점으로 2004년까지 상원의원을 지내다 은퇴했다. #인물사 #프랑스사 #현대사 #2차세계대전

[1946. 3. 12] 아우슈비츠 책임자 회스 체포되다

1946년 3월 12일, 나치 전범인 루돌프 회스(Rudolf Höss, 1901~1947)가 독일 고트루펠(Gottrupel)에서 영국군에게 체포됐다. 유대인 대학살, 통칭 '홀로코스트(Holocaust)' 범죄의 핵심인사 중 하나이던 회스는 1940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 무장친위대(SS) 형집행 부대에서 중령으로 근무했다. 이 기간 중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을 지냈다. 1945년 초, 독일 제3제국이 붕괴하기 시작하면서 회스는 가족과 함께 독일 북부 드레스덴으로 여행을 떠났다. 프란츠 랑(Franz Lang)이라는 가명을 쓴 그는 독일제국이 무너지자 그대로 고트루펠로 숨어 농부 행세를 했다. 1946년, 유대인 '나치 사냥꾼'인 한스 알렉산더(Hanns Alexander, 1917~2006)는 ..

[1941.2.2.] 진주만 공습을 내다 본 제독

1941년 2월 2일, 미 해군 함대사령관 제임스 리차드슨(James Richardson,1878~1974) 제독이 보직에서 해임됐다. 그는 미 태평양함대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에서 하와이로 이전하라는 명령에 지속적으로 반대해왔다. 그는 하와이로 함대를 옮길 경우 본토에서 떨어진 원거리 지역에서 자원이 부족한데다 이전으로 전투태세에 영향이 발생해 방어능력에 취약점이 생길 것을 우려했다. 그리고 태평양함대는 불과 10개월 뒤 진주만 공습으로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1942. 12. 22] 막내동생의 전사소식을 들은 '히틀러의 최측근' 알베르트 슈페어

1942년 12월 22일, 문 앞에 지친 모습으로 앉아있는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 1905~1981). : 독일의 건축가로, 히틀러에게 중용받아 2차세계대전 내내 군수생산부 장관을 지냈다. 만하임의 중산층 집안 출신이며, 성적이 좋았지만 1923년에 발생한 초 인플레이션 사태로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카를스루에(Karlsruhe) 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이후 사정이 좀 나아지면서 뮌헨 기술대학교로 편입했다가 1925년에는 베를린 기술대학교로 옮겼으며, 이 곳에서 건축가 하인리히 테세나우(Heinrich Tessenow) 문하로 들어갔다. 그는 1927년 테세나우의 조교가 되면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슈페어는 1931년 1월 나치당에 가입 신청서를 냈으며, 1931년 3월 1일자로 수..

[1944. 12. 24] 총살 집행 중인 독일군 침투부대

미군 진영에 침투하던 독일군 첩자들이 총살당하기 직전의 모습. 이들은 1944년 12월 23일, '그리프(Grief)' 작전을 통해 미군 전투복을 입고 미군 진영 후방에 투입되었으며, 공공연하게 연합군 최고사령관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 원수를 암살할 것이라고 알렸다. 이들은 미군 전투복을 입고 교란행위를 한 혐의로 사형이 언도됐다. 이들을 처형한 근거는 정확하게 말하면 헤이그 협정 내용 중 '지상전에 관한 협약' 부분이다. 23조에 따르면 "이하의 내용은 특히 금지된다(중략)...휴전을 위한 백기, 혹은 적국의 국기나 군사 표식, 군복을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그리프 작전은 발지 대전투 중 독일군이 실행한 비밀 작전으로, 1944년 12..

[1941. 12. 13] 진주만 공습 중 불시착한 일본군 조종사가 일으킨 '니이하우 사건' 발생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이 벌어지던 중 일본군 함재기 조종사인 니시가이치 시게노리(西開地 重徳)가 하와이 제도 중 조금 떨어진 섬인 인구 136명의 니이하우 섬에 불시착했다. 아직 진주만 공습 사건을 모르던 현지 주민들은 그를 구조해 치료했으나, 곧 일본군의 기습에 대해 니이하우 주민들도 알게 되었고, 니시가이치 역시 공습 중 추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목숨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니시가이치는 곧 현지 주민 중 일본계 주민을 모아 섬을 장악하려 했으나, 하와이 원주민인 베네하카카 카나헬레가 니시가이치를 제압하려 했다. 니시가이치는 베네하카카를 향해 권총을 세 발이나 쐈지만 이 거구의 하와이 원주민은 쓰러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니시가이치를 잡아 들어 돌벽에 집어던졌다. 그리고 베네하카카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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