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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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55

[1936] 20세기 최고의 전쟁사진이 된 한 스페인 병사의 전사 순간

1936년, 로버트 카파(Robert Capa)가 스페인 내전 중 촬영한 '쓰러지는 병사' 사진. 이 사진은 자유주의 청년단 소속 공화국군 병사가 사살당해 쓰러지는 순간을 찍은 것으로, 쎄로 무리아노(Cerro Muriano) 전투 중 촬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속 병사는 무정부주의 민병대 병사인 페데리코 보렐 가르시아(Federico Borrell Garcia)로 확인됐다. 이 사진은 죽음의 찰나를 찍은 명작으로, 사진 속 병사는 두부에 총격을 당하며 비탈에서 뒤로 쓰러지는 한편 오른손에 쥔 라이플을 놓치고 있는 상징적 모습으로 사진 속에 담겼다. 이 사진이 출판된 뒤, 이 작품은 전쟁 중 촬영된 최고의 명작 중 하나로 회자됐다. 하지만 1970년대에는 이 사진의 장소와 사진 속 병사의 신원, 그리..

근대사 2024.11.17

[1899] 두루마기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은 벽안의 미국인

미국의 여행가이자 사진가, 영화제작자인 버튼 홈즈(Elias Burton Holms, 1870~1958)가 한성(서울) 방문 당시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 그는 1899년 경 조선에 방문해 다수의 사진을 남겼다. 홈즈는 전세계를 여행하며 사진과 영상을 남겼으며, 미국으로 귀국한 후에는 자신의 여행담을 강연하며 지냈다. 그는 1958년 88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약 8,000회의 강연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대사 2024.10.07

[1901. 9. 6] 맥킨리 대통령,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

1901년 9월 6일, 미국의 윌리엄 맥킨리 (William McKinley, 1843~1901) 대통령이 암살을 노린 테러에 당했다. 1897년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이 해에 재선에 성공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중이었다. 공화당 소속이던 맥킨리는 이미 1차 임기 중 미서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인기가 치솟은 상태였고, 이 여세를 몰아 재선에 도전해 선거인단 투표를 292표로 압승(승리 확보 수는 272)하면서 민주당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William Jennings Bryan, 1860~1925) 전 국무장관을 여유롭게 꺾었다. 1901년 9월 6일, 맥킨리 대통령은 뉴욕 버팔로의 음악회관(Temple of Music)에서 열린 범미 박람회에 참석했다. 참석자들과 악수를 하며 다니던 중, 폴란드..

근대사 2024.09.07

[1916] 스와스티카를 로고로 사용하던 캐나다의 하키팀

1916년, 캐나다 앨버타 주의 에드먼턴 시가 운영하던 여성 하키팀인 '에드먼턴 스와스티카즈(Edmonton Swastikas)'의 모습. '스와스티카'라는 단어는 '행운'이나 '행복'을 의미하는 '스바스티카(Svastika)'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스와스티카의 심볼이 된 마크('비틀린 십자가')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왔으며, 7,000년 전에도 사용된 흔적이 있다. 스와스티카는 힌두교, 파간교, 오딘교, 자이나교 등에서 성스러운 상징으로 사용해왔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스와스티카는 일부 극우성향의 집단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게 됐다. 1920년, 나치당이 스와스티카를 공식 마크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1933년에는 정권을 잡자마자 아예 당기를 독일 국기로 채택해 사용했다. 이 ..

근대사 2024.07.23

[1939.5.19]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이탈리아 자원군단

1939년 5월 19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스페인 국민군이 내전 승리기념 퍼레이드를 하자 이탈리아 자원군단(Corpo Truppe Volontaire) 병사들이 이에 함께 참가해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1975) 상장의 사열을 받는 중인 모습. 이탈리아 자원군단은 1936년~1939년 기간 중 이탈리아가 프랑코를 지원하기 위해 베테랑 병사들을 모아 파병한 원정군이었다. 최다 파병시기에는 군단 예하에 6개 차량화 보병사단이 배속되어 있었으며, 병력은 7만에서 7만 5천명 규모였고 항공기도 758대나 갖추고 있었다. 내전 기간 중 이탈리아 군단은 말라가 (Malaga) 전투, 과달라하라 (Guadalajara) 전투, 북부지역 전투, 산탄데르(Santander) 전투, ..

근대사 2024.03.28

[1804. 1. 2] 아이티 혁명으로 최초의 '노예들이 세운 국가' 성립

1804년 1월 2일, 아이티(Haiti)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프랑스는 1659년 초부터 당시 '생도맹그(Saint Domingue)'로 불리던 아이티를 식민지로 삼았다. 바로 옆에 있던 영국령 식민지인 자마이카와 함께 생도맹그는 곧 전세계 최대 설탕 공급처가 되었다. 설탕 산업은 커피, 코코아, 인디고 산업과 함께 중남미 무역에서 큰 할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렇게 생도맹그에는 곧 노예 경제가 정착하게 되었다. 노예제에 기반한 대규모 농장사업이 계속 팽창하자 아프리카로부터 노예를 잡아다 이 곳 농장주에게 파는 '노예무역' 역시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1787년~1788년 사이에 횡행한 황열병 등 각종 질병으로 사망률이 크게 늘어 최대 50%에 가까운 생도맹그의 노예가 죽고 말았다. 프랑스는 이 곳에..

근대사 2024.01.02

[1907. 05. 30] 창녀촌에 간 남편 성기를 잘라버린 여성

1908년, 남편의 성기를 면도기로 잘라버리는 만행(!!)으로 구속된 버타 보론다(Bertha Boronda)의 머그샷. 그녀는 남편이 매음굴에 갔던 것을 발견하자 그날 밤 일을 저질렀다. 당시 법원은 그녀에게 5년형을 선고한 뒤 산 쿠엔틴(San Quentin) 교도소에 수감했다. : 그녀의 남편인 프랭크 보론다(Frank Boronda)는 산호세(San Jose) 소방국 산하 제1 소방서 소속 소방감이었다. 버타는 그녀의 남편이 1907년 5월 30일 금요일에 창녀촌에 갔었다고 주장했으며, 바로 그날 자정쯤 취침 중이던 남편의 성기를 잘랐다. 그녀의 남편은 집 바로 옆에 있던 소방서로 도망친 후 응급조치를 받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사건 후 버타는 남장을 하고 오토바이를 탄 후 도주했다. 그녀는 사건 ..

근대사 2023.12.31

[1927] 농구의 창시자 제임스 나이스미스 박사

1927년에 촬영된 농구의 창시자 제임스 나이스미스(James Naismith) 박사의 모습. 나이스미스 박사는 1891년 매사추세츠 주 스프링필드에서 농구를 만들어냈다. 당시 체육교사이던 그는 겨울 기간이 도래해도 학생들을 실내에서 계속 운동할 수 있게 만들 체육관용 게임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이 경기를 고안했다. 그는 주변에 있던 복숭아 수확용 바구니를 체육관 벽에 설치하고, 축구공을 이용하여 이 바구니에 공을 넣는 형태로 경기를 만들어냈다. 그가 농구를 창시했을 당시의 규칙은 바구니에 공을 던져넣을 때마다 3점을 부여하게 했으며, 반드시 공을 튀기며 이동하도록 했다. 만약 공을 든 상태로 이동하면 '볼 바이얼레이션'이라 부르는 반칙으로 간주했다. 물론 이 당시의 바구니는 아래가 뚫려있지 않..

근대사 2023.11.04

[1783. 11. 2] 미국, 독립전쟁 종료 후 육군 총 해산

1783년 11월 2일, 미 독립전쟁이 끝나고 미 역사상 첫 동원령이 해제됐다. 1783년 9월 3일, 미 독립전쟁이 파리 협정 서명과 함께 막을 내렸다. 11월 1일에는 펜실베이니아 패켓(Pennsylvania Packet)지가 처음으로 "확실한 협정"이 체결됐다는 보도를 미국 전역에 보도했다. 10월 8일, 이를 예상하고 있던 미 의회는 미 독립전쟁 중 동원했던 병사들에 대한 소집해제를 선언했으며, 장교에 대해서는 장기휴가나 전역을 허가했다. 11일 뒤인 11월 4일에는 독립전쟁 중 창설된 대륙 육군에서 펜실베이니아 주 남부 출신 병력에 대해 공식적인 전역 허가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 명령서는 결국 펜실베이니아 주 이북 출신들에게도 전역을 허가했으며, 미 육군은 공식적으로 11월 4일에 총 해산을 선..

근대사 2023.11.03

[1805. 10. 21] '영국의 이순신' 넬슨 제독, 트라팔가에서 나폴레옹 함대 격파

1805년 10월 21일, 트라팔가(Trafalgar) 해전이 벌어졌다. 이 전투는 나폴레옹 전쟁 중 결성된 3차 신성동맹군과 프랑스 제국군 간의 전투였다. 나폴레옹은 스페인 점령 후 스페인 함대와 프랑스 함대를 연합시켜 영국 침공을 단행하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프랑스군 제독인 삐에르-샤를 빌뇌브(Pierre-Charles Villeneuve)가 스페인 카디즈에서 이곳까지 함대를 이끌어 온 뒤 영국 왕립해군의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중장과 격돌했다. 넬슨 제독은 33척의 프랑스-스페인 함대를 맞이하여 27척의 소규모 전력으로 대응했다. 당시 스페인 해군에는 세계 최대 전함인 산티스마 트리니다드(Santisma Trinidad) 함이 포함되어 있었다. 수적으로 유리한 이들 연합전력을 ..

근대사 202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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