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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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 68

[2003] 할렘 한 아파트에서 몰래 사육되어 온 호랑이

2003년, 뉴욕 시경 경찰이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비밀리에 사육되던 450파운드(204kg) 호랑이인 '밍(Ming)'과 조우한 모습. 밍은 할렘의 한 대형 아파트 5층에 입주해 있던 안투안 예이츠(Antoine Yates)라는 남자의 방 다섯 칸 중 하나에서 사육되어 왔다. 이 날 그의 아파트에서는 이질적인(?) 다른 동물도 함께 발견됐는데, 예를 들면 '알(Al)' 이라는 이름의 악어가 침실방 중 하나에 살고 있었다. 예이츠는 '무모한 위험을 초래(reckless endangerment)'한 혐의로 5개월 실형을 살았다. 밍의 존재는 예이츠가 팔과 다리를 밍에게 물리면서 할렘 중앙병원 응급실에 실려오면서 밝혀졌다. 그는 응급실 도착 후 애견 핏불에게 물린 것이라고 둘러댔지만, 의료진은 상처의 모양과..

현대사 2024.10.29

[1901. 9. 6] 맥킨리 대통령,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

1901년 9월 6일, 미국의 윌리엄 맥킨리 (William McKinley, 1843~1901) 대통령이 암살을 노린 테러에 당했다. 1897년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이 해에 재선에 성공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중이었다. 공화당 소속이던 맥킨리는 이미 1차 임기 중 미서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인기가 치솟은 상태였고, 이 여세를 몰아 재선에 도전해 선거인단 투표를 292표로 압승(승리 확보 수는 272)하면서 민주당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William Jennings Bryan, 1860~1925) 전 국무장관을 여유롭게 꺾었다. 1901년 9월 6일, 맥킨리 대통령은 뉴욕 버팔로의 음악회관(Temple of Music)에서 열린 범미 박람회에 참석했다. 참석자들과 악수를 하며 다니던 중, 폴란드..

근대사 2024.09.07

[1947. 7. 8] 'UFO 미스터리', 로즈웰 사건 발생

1947년 7월 8일, '로즈웰 UFO' 사건이 일어났다. 하루 전인 7월 7일, 출발 원점을 알 수 없는 미확인 비행물체 하나가 미국 뉴멕시코주 로즈웰 인근 목장에 추락했다. 이튿날, 로즈웰의 '로즈웰 데일리 레코드'지는 이 사건에 대해 기사를 냈고, 이 기사는 순식간에 미국 전역의 언론사가 다시 받아가면서 전국적인 뉴스가 됐다. 로즈웰의 미확인 비행물체 이야기가 퍼지자마자 온갖 이론이 등장했고, 미 정부 당국 역시 그냥 방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미 육군은 해당 지역을 광범위하게 수색한 결과 고무와 금속재질 잔해를 수거했으며, 비행 원반 하나를 찾았다고 발표했다. 미 육군은 이 발표를 하루만에 취소했다가 다시 다음날 발표를 통해 '추락한 것은 기상관측 풍선'이라고 정정했다. 이후 이 풍선은 기..

우주 · 과학 2024.07.10

[1972. 2] 미 전용기 '에어포스 원' 내부의 미-중 고위 관계자들

1972년, 미 공군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Air Force One)'인 VC-137C SAM26000 ('스트라톨라이너' 개량형)의 내부. 사진 캡션에 인물들 이름이 전부 명확히 표기되어 있지 않으나, 창가 쪽에 앉은 이부터 오른쪽으로 마셜 그린(Marshall Green, 1916~1998) 당시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저우은라이(周恩来, 1898~1976) 중국 총리, 줘린(卓琳, 1916~2009)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판공청 부주임, 존 딘(John Dean, 1938~) 백악관 고문으로 보인다. 여기서 줘린은 당시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 주석 겸 국가원수 권한대행이 세 번째 부인으로, 당시 덩샤오핑의 건강이 안 좋아 덩샤오핑의 대외 활동을 대행하고 있..

현대사 2024.02.26

[1961] 백악관에서 미 해군에 하달된 극비 프로젝트의 정체

1961년, 백악관에서 미 해군으로 남극 빙하 아래에 해군 기지를 설치할 계획 실시하라는 문서가 전달됐다. 문제의 계획서 뒷면에는 "이대로 지으시오! 케네디(Build it! J.F.K.)"라고 쓴 종이가 붙어있었다. 미 해군은 즉각 문서 검토에 들어갔으나, 내용이 비현실적이었으므로 해군성 소속 제독들이 직접 백악관에 연락해 이 사업의 타당성과 예산에 대해 문의했다. 그리고 해군 측은 그제서야 이 문서가 12살짜리 소녀가 작성해 백악관에 보낸 문서를 케네디의 보좌관 하나가 장난으로 케네디의 메모까지 붙여 해군성으로 보낸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이 장난이 하나도 재미 없었던 해군 측은 해군 정보실 주도로 수사에 착수해 누가 장난을 친 것인지 확인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수사의 결과나 범인이 누구였는지는 ..

현대사 2024.02.13

[1941.2.2.] 진주만 공습을 내다 본 제독

1941년 2월 2일, 미 해군 함대사령관 제임스 리차드슨(James Richardson,1878~1974) 제독이 보직에서 해임됐다. 그는 미 태평양함대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에서 하와이로 이전하라는 명령에 지속적으로 반대해왔다. 그는 하와이로 함대를 옮길 경우 본토에서 떨어진 원거리 지역에서 자원이 부족한데다 이전으로 전투태세에 영향이 발생해 방어능력에 취약점이 생길 것을 우려했다. 그리고 태평양함대는 불과 10개월 뒤 진주만 공습으로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1907. 05. 30] 창녀촌에 간 남편 성기를 잘라버린 여성

1908년, 남편의 성기를 면도기로 잘라버리는 만행(!!)으로 구속된 버타 보론다(Bertha Boronda)의 머그샷. 그녀는 남편이 매음굴에 갔던 것을 발견하자 그날 밤 일을 저질렀다. 당시 법원은 그녀에게 5년형을 선고한 뒤 산 쿠엔틴(San Quentin) 교도소에 수감했다. : 그녀의 남편인 프랭크 보론다(Frank Boronda)는 산호세(San Jose) 소방국 산하 제1 소방서 소속 소방감이었다. 버타는 그녀의 남편이 1907년 5월 30일 금요일에 창녀촌에 갔었다고 주장했으며, 바로 그날 자정쯤 취침 중이던 남편의 성기를 잘랐다. 그녀의 남편은 집 바로 옆에 있던 소방서로 도망친 후 응급조치를 받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사건 후 버타는 남장을 하고 오토바이를 탄 후 도주했다. 그녀는 사건 ..

근대사 2023.12.31

[1941. 12. 13] 진주만 공습 중 불시착한 일본군 조종사가 일으킨 '니이하우 사건' 발생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이 벌어지던 중 일본군 함재기 조종사인 니시가이치 시게노리(西開地 重徳)가 하와이 제도 중 조금 떨어진 섬인 인구 136명의 니이하우 섬에 불시착했다. 아직 진주만 공습 사건을 모르던 현지 주민들은 그를 구조해 치료했으나, 곧 일본군의 기습에 대해 니이하우 주민들도 알게 되었고, 니시가이치 역시 공습 중 추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목숨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니시가이치는 곧 현지 주민 중 일본계 주민을 모아 섬을 장악하려 했으나, 하와이 원주민인 베네하카카 카나헬레가 니시가이치를 제압하려 했다. 니시가이치는 베네하카카를 향해 권총을 세 발이나 쐈지만 이 거구의 하와이 원주민은 쓰러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니시가이치를 잡아 들어 돌벽에 집어던졌다. 그리고 베네하카카의 아내..

[1953. 4. 23] 625에 참전한 패튼 장군의 아들

1953년 4월 23일, 강원도 인제군 인근에서 자신의 M46 패튼(Patton) 전차를 배경으로 선 조지 패튼 4세(George S. Patton IV, 1923~2004) 대위와 버나드 프레스키(Bernard Preskey) 중사의 모습. 이들은 당시 미 제 40보병사단 140 전차대대 A 중대의 중대장과 중대원이었다. 당시 140 전차대대 예하 2개 중대는 한국군 제 12보병사단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름으로 알 수 있듯, 패튼 대위는 2차세계대전의 전쟁영웅인 조지 패튼(George S. Patton, 1885~1945) 대장의 친아들이다. 당시 그는 한국에 부임한지 2개월 차였으며, 휴전선 경계를 놓고 UN 진영과 공산진영이 마지막 전력을 쏟아넣는 치열한 시기에 한국에서 싸웠다. 그는 8월 휴전 무..

[1950] 처음 콜라를 마신 파리 시민의 반응

평생 처음 콜라를 마시며 리액션을 보여준 어느 파리 시민의 모습. 1950년대에 촬영된 사진이다. 코카콜라는 1950년부터 프랑스 시장에 진출해 소프트드링크 분야를 석권하고자 했다. 당시 코카콜라는 "신선하게 마셔요(Drink Fresh)"를 슬로건으로 밀었으며, 광고로 포장된 미니밴이 파리시내를 누비면서 세일즈맨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홍보용 콜라를 돌렸다. 코카콜라는 이 활동을 '차가운 혁명(La revolution du froid)'이라 불렀다. 코카콜라는 1919년부터 이미 프랑스에 진출했으나 해외 운송 과정에서 제품 변질이 일어나 집단 식중독이 일어나는 등 사고가 많았기에 적극적으로 판매하지 않았다. 코카콜라가 해외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것은 1945년 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부터 였는데,..

현대사 202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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