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테러와의전쟁 11

[2001.10.7] 미국, '항구적자유작전'으로 아프간 침공 개시

2001년 10월 7일, 미국의 '항구적 자유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이 시작됐다. 1996년 이래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계 군사조직인 탈레반이 장악하여 통치해왔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벌어진 사상 초유의 테러 사건인 9.11 테러가 터지자 국제 여론은 탈레반에 대해 순식간에 부정적으로 변했다. 미국의 조지 부시(George H.W. Bush) 대통령은 탈레반에게 즉각적으로 미국에 테러행위를 자행한 배후 조종자인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을 넘길 것을 요구했으나, 탈레반은 이를 거부하며 오히려 '빈라덴이 테러를 자행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미국은 탈레반의 오사마 빈 라덴 인도 거부를 개전 명분으로 판단했다. "항구적 자유..

현대사 2023.10.10

[2001. 9. 11] 테러로 '윈도우즈 온 더 월드'에서 추락한 희생자

월드 트레이드 센터 107층에 위치하고 있던 최고급 레스토랑인 의 전경. 노스 타워 최상층에 있던 이 레스토랑은 뉴욕의 최고급 레스토랑으로 일컬어졌다. 운영이 되던 마지막 해에는 미국 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식당이라는 영예를 차지했다. 의 직원은 다국어에 능숙한 사람들로만 뽑았으므로 전체 직원들이 구사할 수 있던 언어만 60개 언어가 넘었다고 하여 "레스토랑계의 UN"이라는 별칭도 있었다. 1976년, 뉴욕 매거진(New York Magazine)은 표지 타이틀로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레스토랑"을 잡으며 레스토랑 평론가인 게얼 그린(Gael Greene)의 코멘트를 실었다. "레스토랑의 모든 뷰가 다 엄청 납니다. 전부 다 기적같죠. '자유의 여신상' 라운지부터 보면 장엄한 뉴욕 항이 발 아래로 내..

현대사 2023.09.15

[1999. 4. 20]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사건 발생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 주 콜럼바인(Columbine) 시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기학살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학교에서 발생한 첫 대규모 총기사건이었으며, 2007년 4월 16일 버지니아 주 블랙스버그(Blacksburg)의 버지니아 테크(Virginia Tech)에서 재미교포 학생에게 32명이 살해당한 일명 '버지니아 테크' 총기사건 이전까지 최악의 사건으로 꼽혔다. 콜럼바인 사건은 12학년(한국의 고3)으로 재학 중이던 에릭 해리스(Eric Harris, 1981~1999)와 딜런 클레보드(Dylan Klebord,1981~1999)가 무장을 한 상태로 학교 식당에 들어와 총기로 학우 및 교사들을 살해했으며, 이날 총 12명이 사망했다. 에릭은 하이포인트 995(Hi-point..

현대사 2023.04.22

[2001. 4. 19] 9.11 이전 미 본토 최대 테러 사건인 '오클라호마 정부청사 테러사건' 발생

1995년 4월 19일, 미국 오클라호마 주 오클라호마 시티 내 연방정부 청사 건물인 알프레드 P. 뮤라(Alfred P. Murrah) 빌딩에 폭탄 테러가 자행됐다. 뮤라 빌딩은 미 연방정부청사 단지로 사용 중이던 건물이며, 저층에는 대형 유아 탁아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 테러사건이 발생하기 전, 두 건의 논란이 많던 사건이 앞서 발생했다. 두 건 모두 무장 및 비무장 민간인을 상대로 연방 사법집행기관이 대립했던 사건으로, 하나는 1992년 아이다호 주 루비 릿지(Ruby Ridge, Idaho) 주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으며 두 번째는 1993년 텍사스 주 웨이코(Waco, TX)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테러를 자행한 티모시 맥베이(Timothy McVeigh, 1968~2001)는 걸프전 참전용사로,..

현대사 2023.04.20

[1963. 9. 7] 테러리스트들로부터 아이들을 구하다 사망한 살신성인의 스튜어디스, 니자 바노트

니자 바노트(Neerja Bhanot)는 1986년 팬암(Pan Am) 73편 납치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탑승한 22세의 승무원이었다. 테러리스트는 항공기를 장악하자마자 인도계 미국인 승객 한 명을 처형한 후 항공기 밖으로 시신을 버렸다. 그 후 이들은 미국인 승객을 확인하기 위해 바노트에게 기내 승객들의 여권을 모두 수거하라고 했다. 하지만 바노트는 여권을 수거한 후 미국 국적자 43명의 여권을 좌석 아래에 숨기거나 쓰레기통에 버린 뒤 나머지 여권만 테러리스트들에게 갖다 주었다. 이들은 17시간 이상 인질로 붙잡혀 있었으며, 대치상태에 지친 테러리스트들은 폭탄을 터트리고 총기 난사를 시작했다. 바노트는 항공기 뒷편 문을 열었지만, 자신이 빠져나가는 대신 승객들이 탈출하도록 유도했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

현대사 2023.02.02

[2010] 뉴욕 WTC 잔해에서 발견된 1770년대 범선 잔해의 모습

9.11 테러 발생 후 월드트레이드센터(WTC) 잔해를 치우는 과정에서 발견된 '대항해시대' 선박의 잔해. 당시 이 배는 건물 지하의 건물 토대 2m 아래에 있었다. 사실 이 배의 발견은 고고학적으로 적지 않은 의미가 있었으나, 9.11 테러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 때문에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이 배는 2010년 로워 맨하탄(Lower Manhattan)에서 건물 잔해 아래에서 발견됐으며, 연구 결과에 따르면 1773년 남동부 펜실바니아 지역에서 자란 목재로 건조한 것으로 판단되는 범선이었다. 콜롬비아 대학교의 에드워드 쿡(Edward Cook)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독립기념관(Independence Hall)이나 기타 건국 시절 미국의 수도이던 필라델피아에 건축된 건물들은 유사한 시기에 펜실바니아 지..

현대사 2023.01.05

[2001. 9. 11] 월드트레이드센터가 순식간에 붕괴한 이유?

뉴욕 세계 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 건물의 둘레 틀을 이루는 관은 매우 중첩적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911 테러 당시, 항공기가 건물에 직접 충돌하는 바람에 외부 기둥 몇 개가 붕괴된 상황에서도 프레임이 버티고 있었지만, 곧이어 항공기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강철이 녹아내려 건물의 균형이 무너지고 말았다. 구조 건축가들은 이 건물의 '약점'은 건물 둘레 벽 위의 기둥과 건물 코어(core) 구조 사이의 바닥 조이스트(joist: 소형 보)를 받치고 있던 앵글 클립(angle clip)이었다고 보고 있다. 각 층이 설계 상 버틸 수 있던 압력은 약 700파스칼이었으며, 각 층은 자체 무게를 제외하고 약 1,300톤 이상을 버틸 수 있었다. 두 건물은 각각 최대 50만 톤의 무게를 견뎌낼..

현대사 2022.12.19

[2003. 12. 13] 사담 후세인, '붉은 새벽' 작전으로 체포

2003년 12월 13일, 독재자인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 1937~2006) 이라크 전 대통령이 "붉은 새벽 작전(Operation Red Dawn)"으로 레이먼드 오디어노(Raymond T. Odierno, 1954~2021) 소장이 지휘하는 미 육군 제 4사단에 체포됐다. 이 작전은 후세인이 은닉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두 장소가 특정되면서 개시됐다. 미 육군은 두 지점에 병력을 급파해 수색했으나 어느 장소에서도 후세인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병사 하나가 바닥에 튀어나온 바닥재를 걷어찼고, 그 자재가 옆으로 치워지면서 작은 굴이 하나 발견됐다. 미군이 안을 제대로 수색하기도 전에 후세인이 먼저 굴에서 스스로 손을 들고 나왔으며, 스스로 저항하지 않겠다고 언급한 후 투항했다. 미군은..

[2022. 12] 美, 1988년 록커비 사건 테러 용의자를 34년만에 체포

1988년 스코틀랜드 록커비(Lockerbie) 상공에서 폭탄 테러로 추락한 팬암(Pan Am) 103편의 테러리스트를 미국이 구속했다. 34년 전 벌어진 이 사건으로 270명이 사망했으며, 그 중 190명이 미국인이었다. 해당 항공기는 공중에서 폭발했으며, 당시 테러 배후로 리비아의 무아마르 알 카다피(Muammar Gaddafi, 1942~2011)가 지목됐다. 독재자로 악명을 떨치던 그는 2011년 아랍혁명 때 반군에게 사로잡힌 후 한 어린 민병대원이 죽였다. 미 정부에 따르면 팬암 폭탄 테러 사건, 통칭 "록커비 사건"은 아부 아길라 마수드(Abu Agila Mas'ud)라는 전 리비아 정보장교가 폭발물을 제조한 후 테러를 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영국 영공에서 다수의 미국인이 포함된 민간인을 테러..

국제 · 시사 2022.12.12

9.11이 터지자 다시 소방수로 구조작업에 합류했던 영화배우 스티브 부셰미(Steve Buscemi)

영화배우 스티브 부셰미(Steve Buscemi, 1957~)가 1980년~1984년까지 미국 뉴욕 시 제 55 소방서 소속 소방수로 재직하던 당시의 사진. 그는 18세가 되던 해인 1976년 뉴욕 소방청 공무원 시험을 치렀으며, 1980년에 채용이 결정되어 뉴욕 시 소방수로 발령이 났다. 이후 그는 4년간 뉴욕 시내에서도 가장 바쁜 구역인 맨하탄 리틀 이탈리(Little Italy)를 끼고 있는 제 55구역 소방서에서 근무했다. 그는 1984년 영화배우로 전향하기 위해 소방수를 관두었으며, 두 번째 커리어로 승승장구하며 배우이자 작가, 감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2001년 9월 11일, 두 대의 민항기가 월드트레이드센터(WTC) 건물에 충돌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그는 당장 밖으로 뛰어나가 뉴욕 소..

현대사 2022.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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