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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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205

[1944. 9. 13] 미군을 환영하는 도미니칸 수도회

미 제 113 기병단("적마 기병대") 예하 113 기병 정찰대대 소속 M8 그레이하운드(포드 제) 경장갑차 승무원들이 1944년 9월 13일, 네덜란드 림부르크(Limburg)의 레이크홀트(Rijckholt)에 위치한 가톨릭 도미니꼬 수도회에 진주하자 수도원의 수사들이 나와 열렬히 환영 중인 모습. 몇 사람은 포탄 탄피를 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미군이 수도원에 진군했을 당시, 수도사 두 명이 나와 인근 수녀원에 여전히 독일군 병사들이 은닉 중이라고 알렸다. 이에 소대장인 마틴 그레이디 (Martin J. Grady) 중위는 M5A1 전차 세 대를 차출해 대응에 들어갔다. 그는 수녀원에 도착하고 나서야 수녀원이 높다란 벽돌 담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발견했고, 전차 포탑에서도 수녀원 내부가 거의 보이지..

[1942] 북아프리카의 이탈리아 정예군, 베르살리에리 연대 원사

1942년, 북아프리카의 베르살리에리(Bersaglieri) 부대의 어느 원사. 식민지 주둔군이던 제 9 베르살리에리 연대 마크가 새겨진 군모를 쓰고 있다. "바이라(Vaira)"라 불리는 베르살리에리 부대의 깃털 장식 모자는 이탈리아군 식민지 주둔군의 아이콘으로, 정식 명칭은 '모레토 다 베르살리에레(Moretto da Bersagliere)'였다. 이들은 술이 달린 검은 모자를 쓰고 다니는 독특한 군복으로 유명했다. 깃털 장식은 베르살리에리의 신속성과 기동성을 상징했으며, 이 부대는 이탈리아 군의 정예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 1871년 창설된 경보병부대. 이탈리아 피에몬테에서 창설되어 기동성에 중점을 두고 육성됐다. 1차 세계대전 중엔 오스트리아-헝가리군과 싸우며 카포레토 전투 등에서 대활약..

[1937] 독일에 방문해 히틀러와 따로 밀담을 나눈 영국의 전 국왕

영국의 전 국왕인 에드워드 8세(Edward VIII, 1894~1972) 부부가 1937년 나치 집권기의 독일에 방문해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와 기념 촬영 중인 모습. 에드워드 8세는 한 해 전인 1936년 12월에 왕위를 포기하고 동생인 조지 6세(George VI, 1895~1952)에게 선양했다. 에드워드는 미국 여성인 월리스 심슨(Wallis Simpson, 1896~1986)과 결혼한 뒤 윈저(Windsor) 대공 작위를 받았다. 두 부부는 요제프 괴벨스, 헤르만 괴링,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알베르트 슈페어 같은 고위 나치 인사들과 만찬을 즐겼으며, 베르히스가텐(Berchtesgarten)에서 따로 히틀러와 차를 마셨다. 에드워드 대공은 히틀러와 오랫동안 ..

[1943] 무기도 없이 홀로 게릴라전을 치른 '해군의 1인 군단'

1943년, 미 해군 구축함 스트롱 함(USS Strong, DD-467)이 어뢰에 격침되자 이 함에 승선 중이던 전 앨라배마 주 풋볼 쿼터백 출신인 유 밀러(Hugh B. Miller, 1910~1978) 대위는 일본군이 점령 중이던 아룬델(Arundel) 섬 해안으로 쓸려왔다. 그는 부상을 입었고, 혼자 였으며, 소총도 없었지만, 죽은 일본군 병사 시신에서 얻은 수류탄을 모아 한 달동안 게릴라 전을 펼쳤다. 그는 정찰대에 폭탄을 던지고 일본군 기총좌 몇 개를 격파하는 등 후방 적 교란 활동을 하다가 미 해군의 J2F '덕(Duck)' 수상기에 간신히 구조됐다. 귀환 후 그는 해군 십자훈장과 은성훈장 두 개를 수여 받았으며, 명예대훈장도 상신됐지만 훈장이 승인되지 않아 수여받지는 못했다. : 참고로 과..

[1951. 3] 김일성 초상화에 '다 끝났다'고 적고있는 미군

미 제 11공정사단 187 공정연대전투단 (ARCT) 소속 미군 공정병이 김일성의 사진 위에 "다 끝났다(The End)"라고 적고 있는 모습. 이 사진은 사진가인 하워드 소츄렉(Howard Sochurek)이 촬영했으며, 장소는 불분명하나 북한의 순천이나 석촌 중 하나로 추정된다. 이 사진은 지에 수록됐던 사진이다. 제 187 공정연대는 1951년 3월 23일, UN군의 '토마호크(Tomahawk)' 작전에 참가해 625 전쟁 중 실시된 두 번째이자 마지막 공중강습 작전을 실시했다. 187 연대전투단은 석촌전투, 원주전투, 무산리 전투에 참가했으며, 한국에 파병기간 중 총 4개의 부대표창을 받고 3명의 대원이 명예대훈장을 수훈 받았다. 이들은 전쟁기간 중 442명이 전사하고 2,115명이 부상을 입었다.

[1942] 팔렘방에 강하하는 일본군 기록화

1942년경 일본 화가인 츠루타 고로(鶴田 吾郎, 1890~1969)가 그린 '팔렘방으로 강하하는 신의 군대(神兵パレンバンに降下す)'라는 제목의 유화. 1942년에 완성한 이 그림은 '정진집단(挺進集団/테이신슈단)'이라 불리던 일본육군 공정대가 팔렘방 전투 중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강하하면서 수마트라 섬의 팔렘방 활주로와 네덜란드 정유시설을 점령하기 위해 공중강습을 실시 중인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 전투는 일본 육군과 해군 공정대가 최초로 실시한 공정강하 작전이었으나 성과 자체는 절반의 성공으로 기록됐다(전투 자체는 일본군 측이 승리했다). 츠루다 고로는 서양화풍을 지향하는 '요가'운동의 일원이었으며, 일본미술협회 회원이었다. 전후에도 계속 화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던 그는 서구풍과 일본 전통 기법을 섞..

[1951] 625 전쟁 중 화염방사기를 사용 중인 미 해병대원

6.25 전쟁 중 미 해병대 병사가 북한군 진지 소탕을 위해 화염방사기로 화염을 방사 중인 모습. 화염방사기는 2차 세계대전까지 빈번하게 쓰인 무기였지만, 전차를 비롯한 차량류에 탑재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도태됐다. 특히 개인용 화염방사기가 도태된 결정적 이유는 안전성 문제였는데, 액체 연료를 등에 지고 다녀야 했으므로 적의 기총소사를 받거나 폭발물 파편이 잘못 튀면 그대로 폭발해 사용 중이던 병사와 주변 병력까지 모두 피해를 입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기본적으로 액체연료를 담고, 압축공기와 질소를 채워 화염을 방사하는 무기. 최초 사용은 7세기경 비잔틴 군이 사용한 기록이 있으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차 세계대전이다. 주로 요새나 진지 방화용으로 많이 쓰였으며, 벙커나 토굴에 숨은 적..

[1942] 수류탄 위에 앉아 휴식 중인 아프리카군단 병사

1942년, 독일군의 아프리카 군단(Afrika Korps) 소속 병사 한 명이 휴식을 취하면서 맨바닥에 앉을 의자 대용으로 M24 막대형 수류탄(Stielhandgrenate) 두 개 위에 앉아있는 모습. 북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 통칭 DAK(Deutsche Afrika Korps)로 불린 독일군 독립군단. 최초 독일은 이탈리아와 동맹을 체결하면서 이탈리아군이 북아프리카 방면을 장악해 중동과 연결, 석유 등을 확보하기를 기대했지만 기대했던 이하의 약체인 이탈리아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심지어 연합군이 북아프리카를 추축국의 '약한 지점'으로 파악하고 상륙하기 시작하자 군단급 원정군을 창설하여 이탈리아군을 지원하기 위해 파병했다. DAK는 히틀러의 총애를 받던 명장 에르벤 롬멜(Erw..

[1941. 4. 11] 동아프리카에서 로마 파스케스를 철거하는 영국군

1941년 4월 11일, 소말리아의 키스마요에서 촬영된 영국군 병사들의 모습. 이들은 당시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에서 파스케스(로마제국 양식의 기둥)를 철거하고 있었다. 이탈리아령 에티오피아(1936~1941)는 원래 에티오피아 제국이었으나,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가 침공하여 5년간 지배했다. 이탈리아령 에티오피아는 오늘날 에티오피아 뿐 아니라 이전 암하라, 하라르, 갈라-시다모- 스키오카를 아우르던 땅이었으며, 이탈리아가 점령한 뒤에는 행정상의 공식 명칭으로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 혹은 'AOI(Africa Orientale Italiana)'라 불렀다. 사진 속 파스케스는 로마의 12개 고대도시 중 하나인 에트루스칸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는 로마가 정복했던 에트루리아의 도시였다. 이 도시의 상징은..

[1945] 일본군과 하룻밤(?)을 보낸 미 해병대원

이오지마 전투 중, 지친 미 해병 한 명이 근처에 있던 진지 하나에 기어 들어간 후 웅크린 채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그가 깨어 주변을 둘러보니 같은 굴 안에는 자신만큼이나 놀라 보이는 얼굴의 일본군 병사가 있었다. 일본군 병사는 곧 진지에서 도망쳐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중에 이 해병에게 "왜 적이 있는 걸 보고도 공격하지 않았나"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래도 하룻밤 같이 잔 사이인데 어떻게 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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