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베트남전쟁 13

[1953. 4. 23] 625에 참전한 패튼 장군의 아들

1953년 4월 23일, 강원도 인제군 인근에서 자신의 M46 패튼(Patton) 전차를 배경으로 선 조지 패튼 4세(George S. Patton IV, 1923~2004) 대위와 버나드 프레스키(Bernard Preskey) 중사의 모습. 이들은 당시 미 제 40보병사단 140 전차대대 A 중대의 중대장과 중대원이었다. 당시 140 전차대대 예하 2개 중대는 한국군 제 12보병사단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름으로 알 수 있듯, 패튼 대위는 2차세계대전의 전쟁영웅인 조지 패튼(George S. Patton, 1885~1945) 대장의 친아들이다. 당시 그는 한국에 부임한지 2개월 차였으며, 휴전선 경계를 놓고 UN 진영과 공산진영이 마지막 전력을 쏟아넣는 치열한 시기에 한국에서 싸웠다. 그는 8월 휴전 무..

[1961. 8. 10] 미군,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 첫 사용

1961년 8월 10일, 미국이 처음으로 제초제인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를 사용했다. 에이전트 오렌지는 강력한 독성 제초제로, 최초에는 산업용으로 개발되어 주로 공업단지나 도로, 철도 주변에 살포되어 잡초나 풀이 그 주변으로 자라지 못하게 하는 용도로 썼다. 미국은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吳廷琰, 1901~1963) 당시 대통령의 요청으로 에이전트 오렌지를 베트남 정글에 투하하기 시작했다. 이 제초제는 나무의 잎을 말려 죽였으므로 주요 전투지역이나 수송로 등에 살포시 시야를 막는 나무를 제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62년부터 1971년까지 미군은 베트남 내 약 76,000 제곱미터 면적에 에이전트 오렌지를 살포했으며, 약 20,000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면적 내의..

[1998. 6. 30] '무명의 용사'로 오인받은 미군 조종사, 이름을 되찾다

1972년, 베트남 공화국군(ARVN: Army of the Republic of Vietnam) 정찰대가 미군 A37 지상 공격기 추락 지점을 정찰하던 중 시신 일부를 수거해 미군에 전달했다. 당시 베트남 공화국 군은 해당 지점에서 미군의 신분증, 군번 줄, 가족 사진이 들어있는 지갑, 조종복과 권총집 일부를 함께 수거해왔으며, 당시 신분증에는 마이클 블라시에(Michael Blassie) 미 공군 중위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 당시 베트남으로부터 이 물건들을 인수받은 윌리엄 파넬(William Parnell) 대위는 이 물건들을 군번줄로 감아 플라스틱 박스에 넣은 후 태국에 설치한 미 수색회복본부로 넘겼으며, 다시 이 물건들은 하와이에 위치한 미 육군 중앙 신원확인 연구소(US Army Centra..

[1968. 7] 백악관에서 베트남으로 떠난 사위의 음성 테이프를 듣는 린든 존슨 대통령

1968년 7월, 사위인 찰스 롭(Charles "Chuck" Spittal Robb, 1939~) 대위가 베트남에서 보낸 음성 테이프를 듣는 중인 린든 존슨(Lyndon B. Johnson, 1908~1973) 대통령의 모습. 린든 존슨 대통령은 1908년 8월 27일 생으로, 흔히 이름의 약자인 "LBJ"로 불린다. 그는 1963년부터 1969년까지 미 제 36대 대통령을 지냈으며, 그 이전인 케네디 행정부 시기(1961년~1963년)에 부통령을 지냈다.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1917~1963) 대통령 암살 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그는 대통령과 부통령을 지내기 전 이미 텍사스 주 상원의원을 지냈으며, 상원에서 여당 당수를 역임했다. 존슨이 대통령이 됐을 무렵 미국은 엄청난 사회..

[1971] 독일 사진사가 촬영한 베트남 인민군 연인

베트남 전쟁 중후반인 1971년, 독일의 사진가 토마스 빌하르트(Thomas Billhardt, 1937~)가 촬영한 어느 베트남 인민군 소속 남녀의 모습. 둘 다 모두 모신-나강(Mosin-Nagant) 소총을 메고 여유롭게 걷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토마스 빌하르트는 동독 태생의 사진가이자 언론인이다. 주로 분쟁지역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으며, 특히 베트남, 팔레스타인, 니카라과, 북한에서 다수의 사진을 찍었다. 1963년 라이프치히의 시각예술 전문 학교인 HGB를 졸업했으며, 1963년부터 프리랜서 사진가가 되어 1971년까지 활동했다. 독일 통일 후인 1989년부터 2001년까지 독일 사진가협회 회원이었으며, 2005년에는 UNICEF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필리핀, 인도네시아, 중국 등지에서..

[1962] 전선 없는 베트남에서 목숨을 걸고 부상자를 돌본 간호장교단

베트남 전쟁 중 활동한 미군 간호장교의 모습. 베트남 전쟁 중 여성의 간호사 역할은 부상병 치료에 있어 핵심적이었다. 1960년대는 아직 여성이 군에서 활동하기에는 제약과 차별이 컸던 시기지만, 이들은 애국심 하나로 죽음이 도처에 만연한 이역만리의 전장까지 가 이 곳에서 부상을 입고 병든 병사들을 치료했다. 베트남 전쟁 기간 중 복무한 여군 간호 인력은 7,000명에 달한다. 이들은 총을 쥐고 전선에서 싸운 것은 아니지만 "전선" 구분이 없던 베트남의 정글 속에 임시로 차려진 야전병원 천막 아래에서 분투했다. 이들에겐 항상 자원이 부족했고, 의료 장비나 의약품도 모자랐다. 이들 간호 인력은 전장 위에서 의료 활동 뿐 아니라 원거리까지 원정을 와 정신적으로 지친 병사들의 심리 상담까지 병행했다. 이들은 미..

[1967. 2. 13] 기습 당하고도 17:1의 교환 비율로 베트콩을 격파한 대한민국 해병대의 짜빈동 전투

1967년 2월 13일 밤, 베트남에 파병되어 있던 대한민국 해병 제 2여단("청룡"부대) 11중대는 짜빈동 인근의 한 작은 마을 옆 기지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날 밤, 두 개의 베트콩 연대가 짜빈동의 한국군 제 2해병여단의 주둔지를 사방에서 급습했다. 한국군 해병대 병사들은 각자 벙커에서 기관총과 박격포탄으로 응사하면서 엄청난 화력을 쏟아부었다. 곧 베트콩은 부대를 둘러싼 철조망을 뚫고 침입했으며, 이들의 숫자는 청룡부대 11중대원들의 숫자를 압도했다. 결국 쌍방은 기지 내에서 엉켜 백병전을 시작했으며, 해병대원들은 항복하기를 거부하고 각자 진지에서 끝까지 버텼다. 국군 병사 한 명은 치명상을 입고 포위 당하자 산 채로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고 그 자리에서 수류탄 핀을 뽑아 그의 진지로 뛰어들어온 베트콩..

[1967. 1. 2] 로빈 올즈 대령의 '울프팩', 북베트남 미그 21기 대파

베트남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67년 1월 2일, 로빈 올즈(Robin Olds) 대령이 지휘한 미 제 8 전술전투비행단 소속 F-4C 21기가 "전자적으로" F-105로 위장해 북 베트남 공군의 MiG-21 16대를 기만하여 교전에 들어갔다. 교전 결과 푹 옌(Phúc Yên) 상공에서 MiG-21 7대가 격추됐으며, 미군 측은 한 대도 손실을 입지 않았다. 일명 "볼로(Bolo)" 작전으로 명명된 이 작전은 "롤링썬더(Rolling Thunder)" 작전 간 북 베트남 공군의 MiG-21이 미 공군 폭격기의 항로로 진입하여 격추하는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자 북 베트남 공군을 유인하여 기동성이 높은 F-4로 격추하는 계획이었으며, 특히 레이더 신호를 기만함으로써 향후 북 베트남군이 쉽게 출격하지 ..

[1975. 4. 3] 베트남 패망으로 아기들을 구출하려던 '베이비리프트' 작전

베트남 패망과 함께 1975년 4월 3일~26일까지 실시된 작전 모습. 이 작전은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남공화국 측이 패배하게 되자, 미국과 서방 자유진영 국가(호주, 프랑스, 서독, 캐나다)로 베트남 공화국의 아기들을 이주시킨 작전이다. 미군은 대량의 항공편을 투입해 3,300명의 아기들을 탈출시킨 것으로 알려졌으나, 혼란 속이었으므로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는다. 1975년 4월 3일, 북베트남군이 베트남공화국 수도인 사이공까지 밀고 내려오면서 포격이 시작됐다. 이에 제럴드 포드(Gerald R. Ford) 대통령은 미군이 베트남의 고아 아이들부터 우선 미국으로 퇴거시키겠다고 의회에 통보했으며, 미 공군 공중수송사령부(Military Airlift Command)는 약 30소티의 수송기 이동 편을 편..

[1978. 6. 1] 대통령에 맞서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한 미국의 영웅

1944년 8월 11일, 적지 종심에 연합군 특수작전 요원을 침투시키는 "제드버러(Jedburgh)" 작전을 위해 낙하산 강하작전을 준비하던 중 촬영된 존 K. 싱글러브(John Kirk Singlaub, 1921~2022) 중위의 모습. 가슴에는 공정강하용으로 제작된 .3 구경 M1-A1 개머리판 접이식 카빈을 매고 있다. 그는 작전 투입에 앞서 적에게 잡힐 경우를 대비해 청산가리가 든 캡슐이 지급되자 이를 받지 않고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건 필요 없습니다. 전 적에게 잡힐 계획이 없거든요." 싱글러브는 2차 세계대전,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참전했으며, 두 개의 우수근무훈장(Distinguished Service Medal), 은성훈장(Silver Star), 퍼플하트(Purple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