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전투는 중국 국민혁명군이 일본을 상대로 치른 22회의 대 회전(會戰) 중 하나로, 사실상 중일전쟁의 초전과도 같은 전투였다. 특히 국민혁명군은 70개 사단 75만 명, 일본은 9개사단 30만 명을 투입한 대 전투였기 때문에 훗날 사가들은 이 전투를 "양쯔강(陽子江)의 스탈린그라드"라 일컫는다. 또한 사실상 2차 세계대전의 핵심 교전국가 간의 충돌이었기 때문에 이 전투가 2차 세계대전의 본격적인 시발점이었다고 보기도 한다. 일본은 이미 1931년에 만주를 침공한 뒤 1932년 상하이를 한 차례 침공했다. 쌍방의 긴장은 1937년 노구교(蘆溝橋) 사건(혹은 서양에서는 '마르코 폴로 다리 사건')으로 증폭됐으며, 일본은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중국 대륙 침공을 개시했다. 일명 1차 상하이 전투(혹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