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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2] 美, 1988년 록커비 사건 테러 용의자를 34년만에 체포

라마막 2022. 12. 12. 10:48

팬암 103편의 기수부분 잔해. / BBC


1988년 스코틀랜드 록커비(Lockerbie) 상공에서 폭탄 테러로 추락한 팬암(Pan Am) 103편의 테러리스트를 미국이 구속했다. 34년 전 벌어진 이 사건으로 270명이 사망했으며, 그 중 190명이 미국인이었다. 해당 항공기는 공중에서 폭발했으며, 당시 테러 배후로 리비아의 무아마르 알 카다피(Muammar Gaddafi, 1942~2011)가 지목됐다. 독재자로 악명을 떨치던 그는 2011년 아랍혁명 때 반군에게 사로잡힌 후 한 어린 민병대원이 죽였다. 

미 정부에 따르면 팬암 폭탄 테러 사건, 통칭 "록커비 사건"은 아부 아길라 마수드(Abu Agila Mas'ud)라는 전 리비아 정보장교가 폭발물을 제조한 후 테러를 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영국 영공에서 다수의 미국인이 포함된 민간인을 테러한 사건이기 때문에 중형이 불가피하다. 미 법무부는 사건 당시 그가 폭발물을 제작한 뒤 실행범에게 준 혐의를 받는다. 사건 전날 마수드는 몰타(Malta)의 한 호텔 방에서 폭발물을 제조해 중형 샘소나이트 가방에 숨겼으며, 폭발 시간을 11시간 뒤인 12월 21일로 맞춰놓고 이를 폭탄테러 실행범인 알리 알-메그라히(Abdel Baset Ali al-Megrahi)에게 주었다. 폭탄을 받은 메그라히와 동료 한 명은 몰타 공항을 통해 프랑크푸르트 행 항공편 화물 컨베이어 벨트에 가방을 몰래 실었으며, 팬암 사는 이 가방을 발견하고 주인이 확인되지 않은 가방으로 분류한 뒤 일단 분실물로 처리해 팬암 103편(보잉 747)에 화물로 실었다. 이 폭탄은 예정 시간인 이륙 후 38분 뒤 고도 9.44 km에서 폭발했으며, 항공기는 완전히 조각조각이 나  거의 스코틀랜드 전역에 해당하는 2,175㎢ 범위에 흩어졌다. 

당시 해당 기체에는 해외에서 교환학생 수업을 마치고 귀국 중이던 시라큐스(Syracuse) 대학교 학생 35명도 탑승 중이었다. 당시 팬암 103편은 히드로(Heathrow) 공항에서 이륙해 뉴욕 존 에프 케네디(John F. Kennedy) 국제공항으로 향하고 있었으며, 이 항공편은 원래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해 뉴욕을 경유해 디트로이트까지 갈 예정이었다.

이후 2001년, 실행범인 메그라히는 네덜란드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스코틀랜드 출신 판사 세 명에게 기소됐으며, 2009년 암 말기 판정이 나와 풀려났다가 2012년 리비아에서 사망했다. 그와 함께 기소된 라민 칼리파 피마(Lamin Khalifah Fhimah)는 록커비 사건에서 파생된 관련사건 연루 혐의로 구속됐다. 

정확한 체포 정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미 법무부는 마수드를 버지니아 주 알렉산드리아 성인 구치소에 수감했다고 밝혔으며, 우선 워싱턴 D.C.에서 진행될 재판에 첫 출석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 정부는 아부 마수드 구속 후 록커비 사건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며, 희생자인 마이클 번스타인(Michael Bernstein)의 아내인 스테파니 번스타인(Stephanie Mernstein)씨는 일요일 인터뷰에서 "믿을 수가 없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꿈인 줄 알았다. (마수드의 구속은) 미 정부 고위 관계자 분들이 이 테러리스트를 정의롭게 심판하겠다는 헌신없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망 전 마이클 번스타인은 미 법무부 소속으로 나치 정권 부역자들을 추적하는 업무를 하고 있었다. 스테파니 번스타인 씨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그 자를 잡을 수 있을지 불분명했다. 그는 이미 예전에 테러사실을 고백했지만 리비아 정부에만 했을 뿐이었다"고 덧붙였다. 

마수드는 아랍혁명 후 카다피 정권이 전복되고 난 뒤 리비아 교도소에 수년 간 구속 수감되어 있었으며, 록커비 사건과 관련하여 이미 미 연방법원으로부터 두 건의 기소를 당한 상태였다. 그는 카다피 정권 시절 리비아 정보국에서 1973년부터 2011년까지 폭발물 제조 전문가로 일했다. 그는 록커비 사건 외에도 1986년 4월 5일 서독 라벨(LaBelle) 디스코텍 폭탄 테러에도 관여해 미군 장병 두 명이 사망하고 229명의 민간인(미국인 79명)이 부상을 입었던 '디스코텍 테러'에도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부는 그가 리비아 정부 전복 직후 구속되어 내내 수감 중이라는 사실을 2016년에 파악했으며, 2012년 9월 경 리비아 사법집행관 한 명으로부터 심문받은 기록을 넘겨 받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테러 명령을 카다피에게 받았다고 자백했으며, 이후 미국에 대한 테러를 성공한 공로로 카다피에게 특별히 따로 감사인사를 받았다고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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