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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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 488

[1936] 20세기 최고의 전쟁사진이 된 한 스페인 병사의 전사 순간

1936년, 로버트 카파(Robert Capa)가 스페인 내전 중 촬영한 '쓰러지는 병사' 사진. 이 사진은 자유주의 청년단 소속 공화국군 병사가 사살당해 쓰러지는 순간을 찍은 것으로, 쎄로 무리아노(Cerro Muriano) 전투 중 촬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속 병사는 무정부주의 민병대 병사인 페데리코 보렐 가르시아(Federico Borrell Garcia)로 확인됐다. 이 사진은 죽음의 찰나를 찍은 명작으로, 사진 속 병사는 두부에 총격을 당하며 비탈에서 뒤로 쓰러지는 한편 오른손에 쥔 라이플을 놓치고 있는 상징적 모습으로 사진 속에 담겼다. 이 사진이 출판된 뒤, 이 작품은 전쟁 중 촬영된 최고의 명작 중 하나로 회자됐다. 하지만 1970년대에는 이 사진의 장소와 사진 속 병사의 신원, 그리..

근대사 2024.11.17

[2003] 할렘 한 아파트에서 몰래 사육되어 온 호랑이

2003년, 뉴욕 시경 경찰이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비밀리에 사육되던 450파운드(204kg) 호랑이인 '밍(Ming)'과 조우한 모습. 밍은 할렘의 한 대형 아파트 5층에 입주해 있던 안투안 예이츠(Antoine Yates)라는 남자의 방 다섯 칸 중 하나에서 사육되어 왔다. 이 날 그의 아파트에서는 이질적인(?) 다른 동물도 함께 발견됐는데, 예를 들면 '알(Al)' 이라는 이름의 악어가 침실방 중 하나에 살고 있었다. 예이츠는 '무모한 위험을 초래(reckless endangerment)'한 혐의로 5개월 실형을 살았다. 밍의 존재는 예이츠가 팔과 다리를 밍에게 물리면서 할렘 중앙병원 응급실에 실려오면서 밝혀졌다. 그는 응급실 도착 후 애견 핏불에게 물린 것이라고 둘러댔지만, 의료진은 상처의 모양과..

현대사 2024.10.29

[1899] 두루마기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은 벽안의 미국인

미국의 여행가이자 사진가, 영화제작자인 버튼 홈즈(Elias Burton Holms, 1870~1958)가 한성(서울) 방문 당시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 그는 1899년 경 조선에 방문해 다수의 사진을 남겼다. 홈즈는 전세계를 여행하며 사진과 영상을 남겼으며, 미국으로 귀국한 후에는 자신의 여행담을 강연하며 지냈다. 그는 1958년 88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약 8,000회의 강연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대사 2024.10.07

[1944. 9. 13] 미군을 환영하는 도미니칸 수도회

미 제 113 기병단("적마 기병대") 예하 113 기병 정찰대대 소속 M8 그레이하운드(포드 제) 경장갑차 승무원들이 1944년 9월 13일, 네덜란드 림부르크(Limburg)의 레이크홀트(Rijckholt)에 위치한 가톨릭 도미니꼬 수도회에 진주하자 수도원의 수사들이 나와 열렬히 환영 중인 모습. 몇 사람은 포탄 탄피를 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미군이 수도원에 진군했을 당시, 수도사 두 명이 나와 인근 수녀원에 여전히 독일군 병사들이 은닉 중이라고 알렸다. 이에 소대장인 마틴 그레이디 (Martin J. Grady) 중위는 M5A1 전차 세 대를 차출해 대응에 들어갔다. 그는 수녀원에 도착하고 나서야 수녀원이 높다란 벽돌 담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발견했고, 전차 포탑에서도 수녀원 내부가 거의 보이지..

[1942] 북아프리카의 이탈리아 정예군, 베르살리에리 연대 원사

1942년, 북아프리카의 베르살리에리(Bersaglieri) 부대의 어느 원사. 식민지 주둔군이던 제 9 베르살리에리 연대 마크가 새겨진 군모를 쓰고 있다. "바이라(Vaira)"라 불리는 베르살리에리 부대의 깃털 장식 모자는 이탈리아군 식민지 주둔군의 아이콘으로, 정식 명칭은 '모레토 다 베르살리에레(Moretto da Bersagliere)'였다. 이들은 술이 달린 검은 모자를 쓰고 다니는 독특한 군복으로 유명했다. 깃털 장식은 베르살리에리의 신속성과 기동성을 상징했으며, 이 부대는 이탈리아 군의 정예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 1871년 창설된 경보병부대. 이탈리아 피에몬테에서 창설되어 기동성에 중점을 두고 육성됐다. 1차 세계대전 중엔 오스트리아-헝가리군과 싸우며 카포레토 전투 등에서 대활약..

[1901. 9. 6] 맥킨리 대통령,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

1901년 9월 6일, 미국의 윌리엄 맥킨리 (William McKinley, 1843~1901) 대통령이 암살을 노린 테러에 당했다. 1897년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이 해에 재선에 성공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중이었다. 공화당 소속이던 맥킨리는 이미 1차 임기 중 미서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인기가 치솟은 상태였고, 이 여세를 몰아 재선에 도전해 선거인단 투표를 292표로 압승(승리 확보 수는 272)하면서 민주당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William Jennings Bryan, 1860~1925) 전 국무장관을 여유롭게 꺾었다. 1901년 9월 6일, 맥킨리 대통령은 뉴욕 버팔로의 음악회관(Temple of Music)에서 열린 범미 박람회에 참석했다. 참석자들과 악수를 하며 다니던 중, 폴란드..

근대사 2024.09.07

[1937] 독일에 방문해 히틀러와 따로 밀담을 나눈 영국의 전 국왕

영국의 전 국왕인 에드워드 8세(Edward VIII, 1894~1972) 부부가 1937년 나치 집권기의 독일에 방문해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와 기념 촬영 중인 모습. 에드워드 8세는 한 해 전인 1936년 12월에 왕위를 포기하고 동생인 조지 6세(George VI, 1895~1952)에게 선양했다. 에드워드는 미국 여성인 월리스 심슨(Wallis Simpson, 1896~1986)과 결혼한 뒤 윈저(Windsor) 대공 작위를 받았다. 두 부부는 요제프 괴벨스, 헤르만 괴링,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알베르트 슈페어 같은 고위 나치 인사들과 만찬을 즐겼으며, 베르히스가텐(Berchtesgarten)에서 따로 히틀러와 차를 마셨다. 에드워드 대공은 히틀러와 오랫동안 ..

[1916] 스와스티카를 로고로 사용하던 캐나다의 하키팀

1916년, 캐나다 앨버타 주의 에드먼턴 시가 운영하던 여성 하키팀인 '에드먼턴 스와스티카즈(Edmonton Swastikas)'의 모습. '스와스티카'라는 단어는 '행운'이나 '행복'을 의미하는 '스바스티카(Svastika)'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스와스티카의 심볼이 된 마크('비틀린 십자가')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왔으며, 7,000년 전에도 사용된 흔적이 있다. 스와스티카는 힌두교, 파간교, 오딘교, 자이나교 등에서 성스러운 상징으로 사용해왔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스와스티카는 일부 극우성향의 집단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게 됐다. 1920년, 나치당이 스와스티카를 공식 마크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1933년에는 정권을 잡자마자 아예 당기를 독일 국기로 채택해 사용했다. 이 ..

근대사 2024.07.23

[1976] 런던-캘커타 간에 운영된 세계 최장노선 여객 버스

1957년부터 1976년까지 영국 런던에서 출발해 인도 캘커타까지 향하는 정기 버스편이 있었다. 이 버스는 왕복 운행을 하는 동안 총 50일간 이동했으며, 이동거리는 32,000km에 달했다. 이 버스 루트는 세계 최장거리 버스 운행 루트였다. 버스 안에는 수면용 이층침대와 식당이 있었으며, 145파운드(현재 가치로 대략 3,020 파운드, 약 540만원)를 내면 50일간 이동하면서 숙식을 해결해주는 여객 서비스였다. 버스는 이동 중 주요 관광지에도 멈췄으며, 이동 중 비엔나, 이스탄불, 테헤란 등에 들러 쇼핑을 할 기회도 있었다. 런던에서 출발한 버스는 배편에 실려 벨기에로 간 뒤, 서독, 오스트리아,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터키, 이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거쳐 북부 인도에 도착했다. 이 루트..

현대사 2024.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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