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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체계

[무기체계] 미국 참전 후에도 독일의 대서양 작전을 가능케 한 '젖소' 보급 잠수함

라마막 2023. 5. 5. 12:33

2차세계대전 중 독일군이 '젖소' 보급 잠수함(Milk Cow Supply Submarine)이라 부른 보급함의 모습.

이 배에는 어뢰와 독일 7() 잠수함 연료를 가득 싣고 다녔으며, 대서양과 카리브 해, 심지어 미국 해안 지역 등 통상적인 독일군의 작전 해역보다 넓은 범위를 돌아다녔다.

이 배들은 인근에서 작전 중인 독일군 해군 함정의 어뢰나 연료가 떨어졌다고 연락이 오면 재빠르게 이동하여 재보급을 실시했으며, 그 덕에 독일 해군은 194112, 미국이 참전한 이후에도 계속 대서양을 휘저으며 연합군 함정 뿐 아니라 상선대까지 공격할 수 있었다.

: 정식 명칭은 IXV (9-V)형 잠수함. 기존 IXD형 유보트(U-Boat)를 보급함으로 개조한 것이며, 이런 형태로 쌍방이 운용한 유일한 함정이었다.

기본 설계는 IXD형의 선체를 짧게 줄이는 대신 아래로 깊게 재설계 했으며, 만재 배수량은 잠항시 1,661, 부상 시 1,901톤에 달한다. 함정 선체 길이는 67.1m였으며 폭은 9.35m, 높이는 11.7m이며 흘수는 6.51m 정도였다. 엔진으로는 6기통 2,350kW급 디젤 엔진을 장착했고, 잠항 시에는 550kW급 지멘스-슈케르트(Siemens-Schukert) 2 GU 345/38-8 전기 모터를 썼다. 최대 잠항심도는 약 240m였다.

이 잠수함은 보급용으로 재설계 했으므로 어뢰 발사관이나 갑판 기관포가 모두 제거되어 있었으며, 유일한 무장은 1.5인치 SK C/30 대공기관총(2,500) 두 정과 0.79인치 C/30 기관포(3,000)이 전부였다.

보급량도 선체가 컸기 때문에 작지 않았다. "젖소"함은 613톤의 연료와 13톤의 엔진 오일, 4발의 어뢰, 그리고 냉동고에 적재한 다량의 식량을 평소에 싣고 다녔다. 선내에는 작은 베이킹 시설이 있어 신선한 빵을 구울 수 있었으며, 항상 선의와 중형 의무실이 준비되어 있어 부상병을 다룰 수도 있었다. 구석에는 작은 구금실도 있어 말썽을 부린 선원이 있을 경우 이들을 이양받아 본국으로 싣고 돌아가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 "젖소"함에는 무장이 거의 없는 것이 문제였는데, 이 때문에 재보급 과정에서 연합국 함정의 공격을 받으면 우선 이 "젖소"함 부터 하던 작업을 모두 멈추고 잠항하게 했다. 문제는 선체의 평면 갑판 때문에 잠항 속도가 느렸다는 점인데, 잠수 속도가 느린 대신 최대 잠항심도가 VIIC형이나 IX형 잠수함보다 깊다는 점은 장점이었다. 하지만 잠항 후에도 어뢰 발사관이 없었으므로 "젖소"함이 할 수 있는 것은 도망치는 것 뿐이었다.

이들 보급함은 북미지역 해안에서 480km~640km 해역을 돌아다녔다. 이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어야 연합군 해상초계기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해군은 이들 덕에 194112월 미군이 본격 참전하면서 엄청난 물량의 함정이 투입됐음에도 VIIC형 잠수함들이 꽤 오랫동안 북대서양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연합군도 이 '젖소' 보급함의 존재를 알았으므로 우선 표적으로 삼았다. 이들 보급함 한 척만 격침하면 해당 해역의 유보트 보급이 끊겨 모두 본국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1943년 전후로 활동이 급감할 수 밖에 없었는데, 우선 연합군의 정보망이 확장되면서 보급함의 항로를 예측하기 쉬워졌고, 연합군이 본격적으로 레이더와 항공 수색, '헌터킬러(Hunter-killer)' 집단을 운용하면서 대대적으로 보급함이 사냥 당했기 때문이다. 이들 보급함은 19437월에만 네 척이 격침당했을 정도였다. 전쟁 말기인 1945년 초가 됐을 때는 총 열 척의 보급함이 모두 격침 당했다.

이들은 특히 근무 환경이 열악했던 것으로 악명이 높다. 당장 무장이 없는데다 속도도 느렸으므로 적에게 포착 당하면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쟁 기간 중 약 530~576명이 이 보급함에서 근무했으며, 그 중 절반이 넘는 289명이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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