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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 10. 20] 미국,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 영토 매입

라마막 2022. 12. 8. 17:54

루이지애나 매입 기록화 / Public Domain

1803년 10월 20일, 미 상원이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Louisiana) 영토 구입을 승인해 '루이지애나 매입(Louisiana Purchase)'안이 비준됐다. 최초 프랑스가 신대륙에 진출하면서 여러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을 정벌하면서 확장했던 이 땅은 2,140,000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광활한 영토였다. 미국은 단계적으로 이 영토를 15개로 분할해 보호령과 준주를 거쳐 주(state)로 승격시킨 후 미 연방에 가입시켰다.
 

루이지애나 영토는 최초 프랑스가 진출하여 확장하다가 1762년 스페인에 한 차례 할양했으나,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 1769~1821) 집권기이던 1800년에 다시 스페인으로부터 양도받았다. 하지만 얼마 후 아이티(Haiti)에서 스스로 해방한 노예들이 프랑스군을 격퇴하고 독립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유럽 대륙에서는 신성동맹이 결성되어 프랑스 제국을 압박하기 시작하자
루이지애나까지 관리하기도 힘들고, 전비 충당도 필요한데다 미국까지 우군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계산 하에 나폴레옹은 루이지애나의 매각을 추진하도록 지시했다.

1801년, 루이지애나 매입 제안을 받은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 당시 미 대통령은 다시 없는 영토 확장의 기회로 판단해 매입을 추진하려 했으나, 뜻밖에도 연방당(Federalist Party) 측이 새로운 영토를 '매입'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들고 나오자 문제가 생겼다. 심지어 제퍼슨이 속한 민주공화당 내의 의원 일부까지 신규 영토를 연방에 추가하는 것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을 하자 이 매입안은 좌초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것이 미 연방헌법의 허용 범위 안이라고 판단한 제퍼슨 대통령은 대통령 직권으로 매입을 강행하여 결국 성사시켰다.

미 정부가 프랑스로부터 매입한 루이지애나 영토(하얀 색). 이 영토는 이후 서부개척이 시작되면서 주변영토와 합쳐 지형조건에 따라 나누었으며, 인구 조건이 차는 지역부터 주(州)로 승격시켰다. 이 영토는 총 15개 주로 나뉘어 독립하거나 흡수합병 됐으며, 캐나다 앨버타 주와 사스캐처원 주와 인접한 영토는 동부 메인 주 쪽에서 영토를 할양받는 조건으로 캐나다 정부와 교환했다. / Public Domain

이 매입 후인 1804년 5월, 미 육군은 루이스와 클라크 원정대(Lewis and Clark Expedition)를 루이지애나 영토로 파견시켰으며, 이들은 태평양까지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찾으라는 임무를 받고 2년여에 걸쳐 탐사에 나섰다. 탐험병과(Corps of Discovery) 소속이던 메리웨더 루이스(Meriwether Lewis, 1774~1809) 대위와 윌리엄 클라크(William Clark, 1770~1838) 중위는 1804년 5월 14일, 일리노이 주 캠프 뒤부아(Camp Dubois)에서 출발했으며, 1805년 말 콜롬비아 강을 거쳐 태평양에 도달했다. 이들은 1806년 오늘날의 오리건 주에서 배편으로 출발해 같은 해 말 여정을 완수했다.


: 사실 다소 간의 법적 문제가 있던 거래였다. 실제 프랑스가 광대한 해당 지역을 전부 통치한 것이 아니라 주로 인디언 부족이 살던 영토 위주로만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 거래를 통해 해당 지역의 영토 보유권한을 '선제적'으로 행사했고, 아직 실질적인 통치자가 없던 영역에는 프랑스와의 협정을 근거로 권리를 행사했으며 이외의 지역은 인디언 부족 등을 정벌하면서 지배권을 확보했다. 즉, 프랑스가 실질적으로 넘긴건 해당 구역 일부의 통치권이었지만, 주변 열강 모두가 미 중부-서부에 손을 뻗치기 전에 미 정부가 먼저 선제적으로 들어가 지배권을 장악하는 명분이자 근거로 활용한 것이다.

프랑스는 이 거래가 성사되자 서반구의 전 병력(약 7,000명)을 모두 산토도밍고에 집결시켰다가 프랑스 본국으로 철군시켰고, 아이티는 1804년에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프랑스는 이 사건을 계기로 서반구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한편 거래 대금으로 프랑스는 $1,500만 달러를 요구했으나 미 정부 재정으로 감당이 어려운 금액이었으므로 미 정부는 일부 대금을 영국 정부로부터 빌려 충당했으며, 영국은 연이자 6%로 하여 미 정부에 차관을 제공했다.

프랑스는 1803년 12월 20일자로 서반구 식민지의 수도 역할을 하던 뉴올리언스(New Orleans)를 미 정부에 넘겼으며, 미국은 1804년 1월부터 루이지애나 영토 재편에 들어갔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 영토는 인구 이주에 따라 조건이 충족되는 지역부터 승격을 거쳐 총 15개 주가 되었으며, 오늘날 캐나다 지역으로 넘어가 있던 작은 영토 두 곳은 1842년 웹스터-애쉬버튼(Webster-Ashburton) 협정 체결로 미-캐나다 영토를 확정하면서 국경선을 직선으로 확정하기 위해 캐나다에 할양했고, 대신 동부에서 유사 면적의 영토를 캐나다가 미국에 할양해 메인 주에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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