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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 12. 6] 미국, 14년 만에 금주령 철폐

라마막 2022. 12. 6. 11:02

<오늘의 역사> 1933. 12. 6

1933년 12월 6일, 미국의 역사상 "최악의 악법" 중 하나로 손꼽히는 "금주법(Prohibition act)"이 헌법 제 21차 수정안(21st Amendment)이 통과되면서 철폐됐다.

미국의 금주령은 1919년 1월 16일에 알콜성 음료의 판매와 보유를 금지했던 제 18차 수정안과 그 뒤를 따른 "볼스테드 법(Volstead Act)"이 통과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이 법은 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면서 전쟁물자를 조금이라도 아끼고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취지로 시작됐지만 일반 대중의 어마어마한 반발에 직면했으며, 동시에 범죄조직이 범죄자금 마련을 위해 악용하는 부작용만 낳았다.

금주법 철폐는 1933년 3월 22일, 컬렌-해리슨(Cullen-Harrison) 법이 미 양원에서 통과되어 올라오자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이 서명하여 최종 발효됐으며, 이를 통해 맥주의 판매와 알콜 함유량 3.2%인 와인의 판매가 허용됐다. 오로지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만 이 법안 철폐에 반대했고, 8개 주가 찬반 결정을 못하고 공청회를 열었지만 나머지 38개 주는 모두 만장일치나 큰 찬반격차로 통과됐다.

21차 수정안이 통과된 뒤에도 몇 몇 주는 계속 알콜 음료의 소유를 금지했지만, 1966년 미시시피 주가 마지막으로 알콜 음료 유통 및 소비를 합법화 하면서 기나긴 금주령의 역사가 막을 내렸다.

금주령 철폐가 최종 통과 됐을 당시, 루즈벨트는 이 소식을 듣고 이런 말을 남겼다.
 

좋은 소식이야. 맥주 한 잔 걸치면 딱 좋겠군.


: 입법 당시부터 논란이 컸던 법. 이 법은 1893년 뉴욕 새러토가에서 창설된 반(反) 주점 연대(Anti-Saloon League, ASL)가 주도했으며, 1906년부터 주 단위로 로비를 시작했다. 이들은 전국적인 금주령이 빈민층을 없앨 것이며, 음란한 성행위나 폭력 같은 사회적 문제를 모두 척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금주령을 통해 안전한 사회를 이룩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며, 직장에서 사고를 줄이고, 전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는 슬로건으로 이 법안의 통과를 밀어붙였다.

그 뒤를 따라 창설된 여성 기독교인 절제 연합(Women's Christian Temperance Union)도 알콜 음료의 판매, 생산, 유통을 금지시키기 위해 로비에 돌입했으며, 결국 분위기 조성에 성공하면서 1916년까지 총 48개 주 중 23개주가 금주법안을 주 의회에 올렸다. 결국 1917년 8월에 미 상원이 각 주 정부들로 하여금 금주법 입법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하원마저 12월 17일자로 결의안을 채택하며 금주법의 입법 절차가 시작됐다. 이렇게 입법된 제 18차 수정안은 하원에서 282:128로 통과됐고, 상원으로 법안이 올라가자 이번에는 47:8로 통과시켰다. 이 법은 주(州) 법보다 상위 법이었으며, 1922년까지 총 46개 주가 수정안을 승인했다.


당초 18차 수정안은 금지품목을 애매하게 명시했는데, 법안이 금지시킨 것은 "취하게 할 수 있는 음료(toxicating liquors)"라고만 했을 뿐, 구체적으로 무엇이 "취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위반 시 처벌에 대해서도 명시하지 않았으므로 초창기에는 이 법안 자체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1919년 볼스테드 법이 통과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미네소타 주 사원의원이자 하원 법사위원장인 앤드류 볼스테드(Andrew Volstead, 1860~1947/공화) 의원이 입법한 '볼스테드 법'은 18차 수정안을 더 상세하게 규정한 것으로, 금주법의 정확한 범위와 유통, 생산 금지에 대한 절차와 처벌까지 명시했다. 그는 1919년 5월 27일에 1차로 법안을 상정했으나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강력하게 반대해 무산됐지만, 1919년 7월 22일에 다시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던 하원 주도로 볼스테드법이 입법되어 287:100으로 가결됐다. 이 법안이 양원을 통과하자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은 1919년 10월 27일자로 비토(veto)권을 사용해 법안에 반대했으나, 하원은 대통령의 비토권을 같은 날 오후에 기각 처리했고 상원 역시 하원을 따라 이튿날 비토권 행사를 기각했다.

사실 인간과 술이 '떼어놓기 어려운' 관계라는 점을 제외하고도 이 법은 실효성 면에서 논란이 많았다. 1920년대 말 세계 경제대공황이 시작되자 금주법은 술과 관련된 일자리를 전부 없애버려 실업률에 부담을 더했으며, 정부 입장에서도 주조세 등 술에 붙던 세입이 사라져 재정 상황에 타격이 발생했다. 이에 무당(無黨) 성향의 시민단체인 <금주 개정법에 대항하는 모임(AAPA: Association Against the Prohibition Amendment)> 등이 법안 철폐를 시도했고, 193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후보도 금주법 철폐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금주령은 수많은 논란만 야기하다가 1933년 3월, 볼스테드 법을 개정한 컬렌-해리슨 법이 통과되면서 알콜함량 3.2% (혹은 총 중량의 4%) 맥주와 와인의 유통이 허용됐다(기존 볼스테드 법은 0.5%로 제한). 1933년 2월에는 블레인(Blaine) 법이 통과되면서 사실상 18차 수정안이 철폐됐으며, 1933년 12월 5일에는 유타(Utah) 주가 마지막으로 21차 수정안을 비준하면서 볼스테드 법이 취소되어 길고 길었던 금주령이 완전히 철폐됐다.


금주령의 효과에 대해서는 이후 오랫동안 학계의 연구가 이어졌다. 실질적으로 이 법은 입법 초창기에 알콜 음주량과 음주 관련 범죄를 줄이는 효과가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결국 블랙마켓을 형성한데다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낮추는 악영향이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음주 주취자 체포 숫자를 근거로 한 통계로 보면, 금주령은 선포 직후에는 어느 정도 술과 관련된 범죄를 줄였지만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없었다.

국민 보건 측면에서는 금주령 기간 중 간경변 발병률 및 사망률이 크게 떨어졌고, 금주령 철폐 후 다시 크게 증가했다. 또한 영아 사망률이 떨어지고 알콜중독 정신병 발병률이 낮아진 것도 긍정적인 부분이었다. 반면 범죄 부분에서는 이 법이 오히려 흑인이나 백인 빈민층에게 부정적이었다고 나타났는데, 입법기관이 단속을 핑계로 이들 공동체를 압박하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결과가 나타났다. 2021년 <경제 역사학 저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금주령 기간 중 금주법을 초창기에 도입한 주는 인구가 크게 증가했고, 농장 등 비 도심지역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다. 하지만 금주법은 국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우선 주세법이 없어지면서 정부는 $2억 2,600만 달러의 세입이 사라졌고, 술 유통이 금지되면서 대체 무알콜 음료 유통이 그 자리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금주법으로 200개가 넘는 양조장과 수 천 개의 맥주공장이 폐업했고, 170,000개가 넘는 술 유통업체가 문을 닫았다. 금주법 시행을 위해 정부는 연 $1,300만 달러 이상 추가로 소요했으며, 금주법 철폐가 시행되자 곧장 정부는 $4억 3,200만 달러의 지출을 아꼈다는 통계도 존재한다.

당연히 금주법이 최악의 영향을 끼친 분야는 범죄 부분이다. 금주령 시행과 함께 밀주 유통을 통한 조직범죄가 성행했고, '뒷골목 시장'은 시카고에서 금주령 개시 후 세 배로 커졌다. 마피아는 밀주 유통으로 돈 세탁을 하면서 자금을 늘려 매춘과 도박 범죄가 증가했고, 몰래 술을 유통시키기 위한 '부틀레그(Bootleg)" 같은 범죄용도의 물건들이 제작되어 블랙마켓에서 돌았다. 금주령 기간 중 미 전역의 범죄는 24% 이상 증가했고, 강도나 절도는 9%, 살인은 13%, 폭행 13%, 마약 중독 45% 순으로 늘었다. 심지어 미국 내 각 경찰서의 연간 지출액 역시 11.4% 가량 증가했을 정도였다.

결국 언제나 인류와 함께 해온 '술'을 청교도 정신에 입각해 금지하려던 미국의 시도는 대 실패로 끝났으며, 온갖 불필요한 부작용만 낳은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아직도 금주법의 영향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이 법이 두 번 다시 세상에 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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