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년 3월 4일,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 연설 모습을 디지털로 채색한 사진. 사진 상단에 존 윌크스 부스(John Wilkes Booth, 1838~1865)가 보이는데, 이 사나이가 결국 42일 뒤 링컨을 암살한 암살범이 된다.
부스는 이 날 링컨과 매우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을 두고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던 사실을 후회했다. 그는 링컨의 연설을 보고 온 날 일기장에 "완전히 좋은 기회였다!!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대통령을 취임식 날 죽여버릴 수 있었다!!!"라고 적었다.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4년 11월에 간신히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1865년 3월 4일부터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으며, 바로 이 날 부스가 뒤에서 바라보는 가운데 워싱턴 D.C.의 의회 건물 앞에서 취임사를 한 뒤 업무에 들어갔다.
부스는 링컨의 암살에 성공한 뒤 도망치다가 사살 당했으며, 배후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들이 단순히 링컨만 노렸던 것이 아니라 앤드류 존슨(Andrew Johnson, 1808~1875) 부통령 및 윌리엄 시워드(William H. Seward, 1801~1872) 국무장관까지 노렸다는 것이 밝혀졌다.
: 사실 남북전쟁이 아직 진행되던 시기에 대선이 있었으므로, 아직 그 시점까지 존속하고 있던 남부연합(CSA: 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은 다양한 방법으로 미국 대선에 영향을 주고자 노력했다. 1864년 선거에는 공화당의 링컨 대통령, 그리고 전 포토맥군 사령관(: 북군의 야전군사령부)을 지낸 조지 맥클렐런(George B. NcClellan, 1826~1885) 소장이 민주당 후보로 격돌했으나, 이미 선거 전부터 전쟁이 승세에 접어들고 있었으므로 민주당 쪽에는 승산이 없었다. 실제 1864년 선거는 일반선거에서 55:45로 링컨이 승리했고,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212:21이라는 압도적 표 차이로 승리했다.
이 때문에 더더욱 링컨에 대한 적개심이 불타오른 부스는 링컨이 백악관에서 4.8km 떨어진 올드 솔저스 홈(Old Soldiers Home)에 여름 별장이 있는 것을 파악하고 이 곳에서 그를 납치할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에서 포토맥 강을 건너 숨어들어 링컨을 납치하고, 이를 통해 링컨에게 남부연합을 승인하라고 한 후 전쟁을 종결시키고자 했다.
부스가 링컨의 납치를 준비하는 동안 링컨은 대선에서 승리했고, 사전에 백악관 일대를 볼 계획을 세우면서 3월 4일 링컨의 두 번째 취임식에 참석했다. 당시 그는 밀애 관계에 있던 연인인 루시 헤일(Lucy Hale)의 동반인으로 참석했으며, 이 자리에서도 "결심만 한다면" 링컨을 죽일 수 있었다고 훗날 후회했으나 행동을 취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부스는 3월 17일에 더 훌륭한 기회를 잡았다. 링컨이 취임 기념으로 <강은 여전히 깊숙히 흐른다(Still Waters Run Deep)>이라는 연기를 보러 올드 솔저스 홈 인근 병원에 방문할 계획임을 들었고, 이 날 연극을 보러 오는 링컨을 납치하기 위해 일당을 모아 길목에서 매복했다. 하지만 링컨은 이 날 마지막 순간에 계획을 바꿔 연극 관람을 취소하고 국립호텔(National Hotel)에서 열리는 리셉션에 참석해 납치 계획은 무산됐다. 아이러니한 점은 당시 부스는 일당에게 납치를 지시한 후 자신은 바로 그 국립호텔에서 대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와중인 1865년 4월 12일,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Robert E. Lee, 1807~1870) 대장이 애포매톡스(Appomattox) 법원 건물에서 연방군(북군) 총사령관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S. Grant, 1822~1885) 장군에게 항복했다. 북군은 곧 남부연합 수도인 리치몬드를 점령했고, 제퍼슨 데이비스(Jefferson Davis, 1808~1889) 남부연합 대통령도 도주 중 체포당했으므로 더 이상 윌크스 부스 역시 링컨 "납치"를 할 이유가 없어졌다. 대신 링컨을 암살하기로 결심한 그는 링컨이 백악관에서 옛 노예들에게도 참정권을 줘야 한다는 연설을 할 때 바깥에서 듣고 있었는데, 연설이 끝난 뒤 동료들에게 "이게 저 놈의 마지막 연설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부스는 이 날 링컨과 매우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을 두고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던 사실을 후회했다. 그는 링컨의 연설을 보고 온 날 일기장에 "완전히 좋은 기회였다!!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대통령을 취임식 날 죽여버릴 수 있었다!!!"라고 적었다.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4년 11월에 간신히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1865년 3월 4일부터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으며, 바로 이 날 부스가 뒤에서 바라보는 가운데 워싱턴 D.C.의 의회 건물 앞에서 취임사를 한 뒤 업무에 들어갔다.
부스는 링컨의 암살에 성공한 뒤 도망치다가 사살 당했으며, 배후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들이 단순히 링컨만 노렸던 것이 아니라 앤드류 존슨(Andrew Johnson, 1808~1875) 부통령 및 윌리엄 시워드(William H. Seward, 1801~1872) 국무장관까지 노렸다는 것이 밝혀졌다.
: 사실 남북전쟁이 아직 진행되던 시기에 대선이 있었으므로, 아직 그 시점까지 존속하고 있던 남부연합(CSA: 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은 다양한 방법으로 미국 대선에 영향을 주고자 노력했다. 1864년 선거에는 공화당의 링컨 대통령, 그리고 전 포토맥군 사령관(: 북군의 야전군사령부)을 지낸 조지 맥클렐런(George B. NcClellan, 1826~1885) 소장이 민주당 후보로 격돌했으나, 이미 선거 전부터 전쟁이 승세에 접어들고 있었으므로 민주당 쪽에는 승산이 없었다. 실제 1864년 선거는 일반선거에서 55:45로 링컨이 승리했고,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212:21이라는 압도적 표 차이로 승리했다.
이 때문에 더더욱 링컨에 대한 적개심이 불타오른 부스는 링컨이 백악관에서 4.8km 떨어진 올드 솔저스 홈(Old Soldiers Home)에 여름 별장이 있는 것을 파악하고 이 곳에서 그를 납치할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에서 포토맥 강을 건너 숨어들어 링컨을 납치하고, 이를 통해 링컨에게 남부연합을 승인하라고 한 후 전쟁을 종결시키고자 했다.
부스가 링컨의 납치를 준비하는 동안 링컨은 대선에서 승리했고, 사전에 백악관 일대를 볼 계획을 세우면서 3월 4일 링컨의 두 번째 취임식에 참석했다. 당시 그는 밀애 관계에 있던 연인인 루시 헤일(Lucy Hale)의 동반인으로 참석했으며, 이 자리에서도 "결심만 한다면" 링컨을 죽일 수 있었다고 훗날 후회했으나 행동을 취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부스는 3월 17일에 더 훌륭한 기회를 잡았다. 링컨이 취임 기념으로 <강은 여전히 깊숙히 흐른다(Still Waters Run Deep)>이라는 연기를 보러 올드 솔저스 홈 인근 병원에 방문할 계획임을 들었고, 이 날 연극을 보러 오는 링컨을 납치하기 위해 일당을 모아 길목에서 매복했다. 하지만 링컨은 이 날 마지막 순간에 계획을 바꿔 연극 관람을 취소하고 국립호텔(National Hotel)에서 열리는 리셉션에 참석해 납치 계획은 무산됐다. 아이러니한 점은 당시 부스는 일당에게 납치를 지시한 후 자신은 바로 그 국립호텔에서 대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와중인 1865년 4월 12일,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Robert E. Lee, 1807~1870) 대장이 애포매톡스(Appomattox) 법원 건물에서 연방군(북군) 총사령관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S. Grant, 1822~1885) 장군에게 항복했다. 북군은 곧 남부연합 수도인 리치몬드를 점령했고, 제퍼슨 데이비스(Jefferson Davis, 1808~1889) 남부연합 대통령도 도주 중 체포당했으므로 더 이상 윌크스 부스 역시 링컨 "납치"를 할 이유가 없어졌다. 대신 링컨을 암살하기로 결심한 그는 링컨이 백악관에서 옛 노예들에게도 참정권을 줘야 한다는 연설을 할 때 바깥에서 듣고 있었는데, 연설이 끝난 뒤 동료들에게 "이게 저 놈의 마지막 연설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암살은 1865년 4월 14일, 포드(Ford) 극장에서 벌어졌다. 처음 포드 극장은 영부인인 링컨 여사와 그랜트 장군 부부가 공연 <우리의 미국인 사촌(Our American Cousin)>에 참석하겠다고 통보를 받았으며, 부스도 이 곳에 소속된 배우였으므로 곧 계획을 세웠다. 그는 자신이 링컨을, 동료 배우인 파월(Powell)에게 시워드 장관을, 아트제로트(Atzerodt)에게 존슨 부통령을 살해하라고 지시했으며, 암살이 끝나면 탈출할 퇴출로를 마련하고 그 곳에 말을 빌려두었다. 링컨 외에 두 사람을 노린 이유는 일부러 대통령 암살 후 승계 차 순위에 있는 두 사람을 죽임으로써 국가를 대 혼란에 빠트리겠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승계순위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존슨 다음의 승계 대상자는 미 상원의장 대리(President Pro Tempore)인 라파예트 포스터(Lafayette S. Foster, 1806~1880) 상원의장(공화/코네티컷)이지 시워드 국무장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날 대통령에게 동반 참석을 요청받은 그랜트 장군은 집에서 나서려고 할 때 아내가 꿈자리가 좋지 않다면서 참석하지 말라고 강하게 종용해 몸이 안 좋아 갈 수 없다고 전갈을 보낸 뒤 뉴저지의 친척 집에 대신 방문했다.
결국 밤 10:10분 경 공연이 시작되면서 링컨 대통령 부부는 VIP석 박스에 들어가 관람을 시작했고, 그랜트 장군 대신으로는 헨리 라스본(Henry Rathbone, 1837~1911) 소령과 애인인 클라라 해리스(Clara Harris, 1834~1883)가 동석했다. 부스는 VIP석 뒷문으로 접근해 공연을 관람 중인 링컨 뒤로 다가갔고, 10:14분경 링컨을 뒤에서 저격했다. 뒤늦게 라스본 소령이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서 대항하려 하자 부스는 장검으로 그를 찔러버린 뒤 도주했다. 암살 성공 후 그는 부스 박스에서 "해냈다!! 내가 남부의 복수를 했다!!"고 크게 외쳤다.
이 날 실제 암살에 성공한 것은 부스 뿐이다. 시워드 장관은 하필 그날 낮에 마차 사고가 발생해 병원에 누워있었고, 아트제로트는 존슨 암살을 앞두고 심적 부담을 못 견뎌 종일 술을 마시다 결국 이 자리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스는 포드 극장에서 도주해 계획대로 말을 탔으며, 워싱턴 D.C.를 가로질러 탈출한 후 메릴랜드를 거쳐 버지니아까지 도주했다. 하지만 함께 탈출한 데이비드 헤롤드는 결국 지치게 되자 먼저 항복해버렸고, 부스 홀로 도주극을 계속했으나 결국 한 농가에 숨어있다가 군에게 발견됐다.
발견되던 순간 그는 저항하려 했지만 북군 병사인 보스턴 콜벳(Boston Corbett, 1832~1894) 병장이 먼저 그의 목을 쏴버렸다. 부스는 전신마비가 되어 급히 후송됐지만 몇 시간 뒤 사망했으며, 그와 암살을 공모한 여덟 명 모두 수 일 내로 체포되어 네 명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갈라진 집"을 하나로 합치며 이제야 모처럼 "하나가 된 미 연방"을 통치하게 된 링컨은 숨을 거둔 뒤였으며, 미국은 이제부터 어떤 식으로 남부를 보듬고 통합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 숙제를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 숙제는 고스란히 살아남은 자들-존슨, 시워드, 그랜트-이 고스란히 떠 안게 되고 말았다.
이날 대통령에게 동반 참석을 요청받은 그랜트 장군은 집에서 나서려고 할 때 아내가 꿈자리가 좋지 않다면서 참석하지 말라고 강하게 종용해 몸이 안 좋아 갈 수 없다고 전갈을 보낸 뒤 뉴저지의 친척 집에 대신 방문했다.
결국 밤 10:10분 경 공연이 시작되면서 링컨 대통령 부부는 VIP석 박스에 들어가 관람을 시작했고, 그랜트 장군 대신으로는 헨리 라스본(Henry Rathbone, 1837~1911) 소령과 애인인 클라라 해리스(Clara Harris, 1834~1883)가 동석했다. 부스는 VIP석 뒷문으로 접근해 공연을 관람 중인 링컨 뒤로 다가갔고, 10:14분경 링컨을 뒤에서 저격했다. 뒤늦게 라스본 소령이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서 대항하려 하자 부스는 장검으로 그를 찔러버린 뒤 도주했다. 암살 성공 후 그는 부스 박스에서 "해냈다!! 내가 남부의 복수를 했다!!"고 크게 외쳤다.
이 날 실제 암살에 성공한 것은 부스 뿐이다. 시워드 장관은 하필 그날 낮에 마차 사고가 발생해 병원에 누워있었고, 아트제로트는 존슨 암살을 앞두고 심적 부담을 못 견뎌 종일 술을 마시다 결국 이 자리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스는 포드 극장에서 도주해 계획대로 말을 탔으며, 워싱턴 D.C.를 가로질러 탈출한 후 메릴랜드를 거쳐 버지니아까지 도주했다. 하지만 함께 탈출한 데이비드 헤롤드는 결국 지치게 되자 먼저 항복해버렸고, 부스 홀로 도주극을 계속했으나 결국 한 농가에 숨어있다가 군에게 발견됐다.
발견되던 순간 그는 저항하려 했지만 북군 병사인 보스턴 콜벳(Boston Corbett, 1832~1894) 병장이 먼저 그의 목을 쏴버렸다. 부스는 전신마비가 되어 급히 후송됐지만 몇 시간 뒤 사망했으며, 그와 암살을 공모한 여덟 명 모두 수 일 내로 체포되어 네 명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갈라진 집"을 하나로 합치며 이제야 모처럼 "하나가 된 미 연방"을 통치하게 된 링컨은 숨을 거둔 뒤였으며, 미국은 이제부터 어떤 식으로 남부를 보듬고 통합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 숙제를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 숙제는 고스란히 살아남은 자들-존슨, 시워드, 그랜트-이 고스란히 떠 안게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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