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6년 5월 22일,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하원의원인 프레스턴 브룩스(Preston Brooks, 1819~1857) 의원이 미 상원 홀에서 공화당 상원의원인 찰스 섬너(Charles Sumner, 1811~1874) 의원을 지팡이로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스티븐 더글러스(Stephen Douglas, 1813~1861) 민주당 상원의원이 올린 캔자스-네브라스카 법을 프랭클린 피어스(Franklin Pierce, 1804~1869)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발효되자 미래에 주(州)로 승격하게 될 두 영토(준주)가 탄생했다. 하지만 법안 서명과는 별개로 캔자스 주에서는 반 노예주의자와 노예주의자 간에 캔자스의 방침을 놓고 격렬한 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들은 캔자스가 자유 주를 표방할지, 노예 주를 표방할지를 놓고 합의하지 못하고 있었다.
노예제 철폐론자인 매사추세츠 주 출신의 찰스 섬너 의원은 1856년 5월 19일~20일 양일에 걸쳐 노예제 철폐에 대해 연설을 했다. 그는 연설 중 새로 탄생할 두 영토에 노예제를 도입하려는 생각이 얼마나 비도덕적인 행위인지에 대해 강력하게 규탄했다. 그는 노예를 소유한 노예주들을 강력하게 비판했으며, 대표적인 노예주인 앤드류 버틀러(Andrew Butler)의 실명을 언급했다. 문제는 앤드류 버틀러가 프레스턴 브룩스 의원의 사촌이었다는 점이다. 브룩스는 버틀러의 이름이 나오자 그 자리에서 일어서서 강력하게 항의했다.
1856년 5월 22일, 브룩스는 섬너에게 가 자신의 친인척에게 명예훼손을 했다고 항의했다. 브룩스는 섬너에게 항의하던 중 제풀에 흥분해 갑자기 들고 있던 지팡이로 그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무방비로 있다가 지팡이에 맞은 섬너는 부상을 입고 자리에 쓰러졌으며, 결국 병원으로 가 상처를 꿰매야 했다.
이 사건 자체는 섬너와 브룩스가 명예 훼손 문제로 시비가 붙었다가 폭행으로 비화한 사건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 즈음부터 사회 도처에서 누적되기 시작한 "노예제" 폐지 문제와 남/북 갈등 중 하나였다. 문제는 이 갈등이 극도로 첨예해지는 동안에도 피어스 대통령 뿐 아니라 후임인 제임스 뷰캐넌(James A. Buchanan, 1791~1868) 대통령 모두 문제의 본질을 파헤치기보다 이를 회피하는데 급급했으며, 결국 이 갈등은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폭발하여 남북전쟁이라는 미국 역사상 사상 최대의 내전으로 이어지게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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