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9월 1일, '칸다하르(Kandahar)' 전투 중 쓰러진 멘지에스(Menzies) 중위를 보호하기 위해 제 92 하이랜더(92nd Highlanders) 연대 소속 고수(鼓手: 북치는 병사)인 제임스 레딕(James Reddick)이 백병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
칸다하르 전투는 2차 영-아프간 전쟁의 전환점이 된 전투이다. 프레드릭 로버츠(Frederick Roberts) 장군은 영국군 구원부대를 이끌고 칸다하르 포위망을 돌파해 아유브 칸(Ayub Khan)의 아프간군을 격퇴했으며, 곧 도시를 점령하여 아프간군에게 치명타를 날렸다.
1880년 7월 27일, 조지 버로우즈(George Burrows) 준장이 이끄는 2,500명의 영국-인도군 혼성부대는 마이완드(Maiwand)에서 열 배가 넘는 아프간 군과 조우해 압도당했다. 마이완드 전투 후 잔여 영국군은 칸다하르로 퇴각했으나 곧 포위당했다. 마이완드의 패배는 빅토리아 여왕의 대영제국에 큰 위기가 되었다.
하지만 곧 영국군의 노련한 명장인 로버츠 장군이 구원부대장으로 지명됐다. 그는 카불부터 칸다하르까지 약 10,000명의 병사를 이끌고 483km의 거리를 주파했다. 1880년 9월 1일, 로버츠 군은 아유브 칸의 아프간 군과 칸다하르 외곽에서 조우했다. 아프간 군은 약 13,000명으로 추산되었으며, 이들은 정규군 외에 인근 부족 전사들까지 합세한 숫자였다.
수적으로 크게 밀렸음에도 군기가 잡혀있던 영국군은 압도적 화력의 우세 속에서 아프간 군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치열한 전투는 수 시간 동안 계속됐다. 로버츠 군은 잘 협조된 파상공격을 실시하며 아프간 군의 치열한 화망을 서서히 무너뜨렸다. 결국 아프간 군의 방어선은 한 축이 무너져 내렸으며, 영국군에게 방어선 안쪽으로 돌파당하자 아유브 칸의 병사들은 무질서하게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프간 군은 이날 약 3,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반면, 영국군은 100명이 전사하고 218명이 부상을 입었다. 칸다하르 전투의 승리는 사실상 2차 영-아프간 전쟁의 마지막 전투가 되었으며, 이 패배로 아유브 칸은 아프가니스탄의 아미르(Amir: 지배자)가 되겠다는 꿈을 꺾을 수 밖에 없었다. 영국은 새로운 아미르로 압두르 라흐만 칸(Abdur Rahman Khan)을 세웠으며, 그는 영국군과 곧 간다마크(Gandamak) 협정을 체결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한 영국군은 1881년에 모두 이 지역에서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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