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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 10. 29] 갑작스럽던 세계 경제대공황의 시작

라마막 2022. 12. 2. 16:29

 
1929년 10월 29일, 미국 증권시장 대폭락으로 시작된 경제 대공황(Great Depression)이 시작됐다. 통칭 "검은 화요일"로 일컬어지던 이 날 오전부터 미국은 유례없던 증권시장 대 폭락을 겪으면서 한 순간에 대 혼란이 시작됐다. 이 날 월스트리트 투자가들은 하루 동안 1,600만 주를 거래하면서 수십억 달러가 증발해버렸다.

증권시장 붕괴가 시작되자 청산되지 않은 부채와 은행 대출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미국 경제는 순식간에 파탄으로 치닫았다. 이 사건은 9월에 발생했던 런던 주식시장 붕괴 사건 후에 터졌으며, 이후 서방 선진국들은 이 경제공황의 후유증을 12년동안 겪었을 정도였다. 당장 경제 공황으로 직접적 피해를 본 인구는 1,500만 명에 달했으며, 기업의 연쇄 파산으로 실업률이 극단적으로 치솟았다.
 

유례없는 경제적 재앙을 놓고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 1874~1964) 대통령과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1882~1945) 대통령은 각자의 방법을 동원해 피해를 완화하고 공황을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후버는 정부가 계속 불필요한 규제를 할수록 공황이 길어진다는 관점으로 접근해 최대한 개입을 자제한 한편, 루즈벨트는 다양한 정부 구제 사업을 일으키면서 재정지출을 늘리는 방향으로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노력했다.

: 1929년에 터져 사실상 2차 세계대전 발발 시기인 1939년까지 이어진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 특히 아직 경제적 안전장치가 미비하던 시절에 터졌으므로 확산범위가 커 20세기 최장기간, 최대규모의 경제 붕괴 사건으로 기록됐다.


공황이 터진 1929년부터 1932년까지 전세계 GDP는 15% 이상 폭락했고, 서방 선진국을 중심으로 평균 가계소득과 금리가 모두 극단적으로 떨어지고 물가와 세율은 치솟았다. 전세계 무역 거래량은 50% 이상 급감했으며 미국 내 실업률은 23%, 일부 유럽 국가의 경우 33%까지 기록한 사례도 있었다. 특히 중공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타격이 컸던 것으로 기록됐으나, 농업 중심 국가 역시 곡물가격은 한 때 60%까지 폭락했으므로 피해를 비켜갈 수 없었다.


사실 경제대공황의 미스테리는 정확한 "발단"의 원인을 특정 짓기 어렵다는 점이다. 일단 가시적으로는 1929년 10월 29일 주식시장이 일시적으로 대폭락을 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는 점이며, 이듬 해인 1930년 12월 미국 내 민영은행인 뱅크 오브 유나이티드 스테이츠(Bank of United States)가 흔들리자 뱅크 런(bank run) 사태가 발발하면서 사태가 증폭됐다. 은행의 이름 때문에 미 정부 소유 은행으로 착각한 투자자들은 은행이 '망하기 전에' 예금을 모두 빼내려고 했고, 그 과정에서 은행이 도산하자 타 은행까지 사태가 확산됐다는 것이다. 실제 이 한 달 동안 뱅크 오브 유나이티드 스테이츠는 $5억 5천만 달러에 달하는 예금 인출이 일시에 밀려들어 사실상 망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1931년 독일과 영국으로 확산됐고, 결국 유럽 전역에 타격을 입히며 전세계적인 대공황이 되었다. 하지만 수습에 실패한 후버 대통령은 곧 재선에 실패하고 루즈벨트에게 자리를 넘겨주었으며, 뉴딜(New Deal)을 표방한 루즈벨트는 테네시 계곡 개발사업(TVA: Tennessee Valley Authority) 등 공공 사업을 늘리고, 미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국영기업(예를 들면 예금보험공사[FDIC])을 설립했다.


하지만 사실 어느 쪽이 공황 해결의 정답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일단 루즈벨트가 이것저것 많은 사업을 벌였지만 상당 수는 이미 후버가 시작을 해놓고 백악관을 떠났기 때문이기도 하고, 루즈벨트가 일으킨 공공공사나 사업 중 가시적으로 효과를 나타낸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의 공황을 해결한 것은 2차 세계대전 덕이 큰데, 전시 경제가 시작되면서 대규모 방산물자 양산이 시작되어 경제가 돌았고, 실업률도 군 동원령과 생산능력 확장으로 급감하게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공황이 '특정 사건'으로 촉발 됐다기 보다는 1920년대 호황기가 끝나가면서부터 시작된 소비 위축과 기술의 발전에 따른 잉여생산물 양산, 수출 급감, 소득 불균형 등이 계속 누적되다가 터졌다고 보는 것이 전반적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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