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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 11. 14] 미 대통령을 암살할 뻔한 미 해군 함정 이야기

라마막 2023. 9. 1. 09:50

- 미국 역사상 1개 함정 승무원 전체가 대통령이 승선한 전함을 공격한 "암살미수 혐의"로 재판을 받은 전대미문의 사건.

19431114,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 미 대통령은 전함 아이오와(USS Iowa, BB-61)함이 함재기 공격을 받을 경우 방어 상태를 점검하고 싶다고 하여 직접 아이오와 함에 승선해 훈련을 실시할 것을 명령했다. 이에 미 해군은 대통령이 탑승한 아이오와를 포함한 총 4척의 전함을 버뮤다 동쪽으로 출항시켰다. 아이오와 함의 선원들은 기상관측용 기구(weather balloon)를 띄워 가상의 대공 표적으로 삼았고, 이를 향해 100발이 넘게 사격을 가했다. 이 때 구축함 윌리엄 D. 포터(William D. Porter, DD-579)함의 함장인 윌프레드 월터(Wilfred A. Walter) 중령은 포터 함도 여기에 참가시키고 싶었기 때문에 전 승무원들에게 전투태세에 들어갈 것을 명령했다.

윌리 디(윌리엄 D. 포터함의 별칭, Willie Dee) 선원들은 아이오와 함이 놓친 기구를 향해 쏘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뢰실의 선원들은 5.5km 밖에 있던 아이오와 함을 향해 연습 어뢰를 쏘려고 준비에 들어갔다. 통상 실 어뢰 훈련에서는 어뢰 뇌관을 제거하고 쏘는 것이 상식이었으나, 이날 따라 어뢰 담당관이 어뢰 뇌관을 제거하는 것을 깜빡했다. 그리고 어뢰 장교가 발사 명령을 내리자 윌리 디의 어뢰는 힘차게 바다를 향해 뻗어나가 아이오와 함을 향해 직진했고, 대통령을 포함한 해군 최고위 귀빈들이 승선한 아이오와 함을 위협했다.

그리고 발사 직후 문제점을 파악한 윌리 디의 선내는 이후 5분 동안 아비규환이 되었다. 장교들은 서로 상충하는 명령을 여기저기에서 내렸고, 함교에서는 아이오와 함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가를 놓고 대 혼란이 일어났다. 윌리 디 함은 일단 함교에서 전조등을 껐다 켰다 하면서 '전속력으로 후진하라'고 신호를 보냈으나 그마저도 엉뚱한 방향을 향해 신호를 쐈다.

결국 윌리엄 D. 포터 함 지휘부는 어뢰가 아이오와 함에 충돌하기 직전에 통신으로 어뢰 뇌관이 제거되지 않았다고 통보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어뢰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을 즈음, 주변 사람들은 휠체어에 탄 루즈벨트(그는 소아마비 증세가 있어 걷지 못했다)를 통째로 들어 안으로 모셔 피탄 순간을 보지 못하게 했다. 한편 아이오와 함의 지휘부는 이것이 행여라도 대통령 암살 음모였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 윌리엄 D. 포터 함을 향해 포신을 돌렸다.

하지만 아이오와가 전속력으로 선회하면서 일어난 파도에 어뢰 뇌관이 반응해 폭발하면서 위기는 끝났다.

사태가 끝나자 윌프레드 월터 중령은 "우리가 쏜 게 맞다"고 차분하게 답했으며, 윌리엄 D. 포터 함 선원 전원이 체포되어 버뮤다로 이송된 후 군법재판에 회부됐다. 그리고 이 사건은 미 해군 역사상 처음으로 1개 함정의 선원 전체가 체포된 사례로 기록됐다.

어뢰 담당관 중 한 명이던 로턴 도슨(Lawton Dawson) 하사는 자신이 실수로 어뢰에 표시용 프라이머(primer/실 어뢰라는 표시)를 어뢰 발사관에서 제거하지 않았다고 실토했으며, 사건 후 이를 은폐하기 위해 바다에 던졌다고 말했다. 그나마 사건 조사 결과 의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실수에 의해 야기된 것임이 확인됐지만 이 사건 자체는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비공개 상태로 두기로 결정했다.

군법재판 후 도슨 하사만 14년 노동형에 처해졌고, 다른 이들의 군 경력은 모두 거기서 끝장 날 판이었으나, 루즈벨트 대통령이 직권으로 개입해 '사고로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절대 처벌하지 말라고 지시를 내리면서 모두 풀려났다.

윌리엄 D. 포터함은 대서양 함대에서 재편되어 북태평양 알류산 열도로 이동했으며, 이후 상대적으로 간단한 순찰 임무만 수행했다. 하지만 포터 함이 다시 한 번 태평양 모처로 이동 명령이 내려졌을 때, 이 함은 또 한 번 실수로 5인치 함포를 발사해 포탄이 알류산 열도에 위치하고 있던 함대 사령부 연병장에 피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윌리 D. 포터 함은 이후 오키나와로 이동했으며, 전쟁 말기인 오키나와 전투 때에 가서야 원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해 일본군 항공기를 격추하는 기염을 토했으나... 그 과정에서 또 미군 항공기까지 세 대를 격추했다. 이렇게 쌓인 악명 때문에 가끔 윌리엄 D. 포터 함 선원들과 마주치는 사람들은 농담조로 "쏘지 마시오!! 난 공화당원이라구!! (루즈벨트가 민주당 소속임을 빗댄 말)"이라고 말하곤 했다.

포터의 최후는 1945610일에 찾아왔다.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던 포터 함의 측면에 격추된 일본군의 아이치(愛知) D3A 급강하폭격기 하나가 가미가제 돌격으로 내리 꽂았다. 폭격기는 포터 함을 빗나가 바로 옆 물 속에 빠졌으나, 폭격기에 실려있던 폭약들이 물 속에서 폭발하면서 포터 함의 배면을 뚫어버렸다.

사연많던 포터 함은 폭발이 일어나자 순식간에 물 속으로 가라앉았으나, 최후의 운을 모두 짜냈는지 선 내에 있던 승무원은 한 명의 전사자도 없이 모두 탈출에 성공했다. 당시 윌리엄 D. 포터 함의 선원 구조를 지휘한 상륙함 LCS(L)(3)-122의 리처드 맥쿨(Richard M. McCool) 대위는 이날 포터함의 선원들을 모두 무사 구조한 공로로 명예 대훈장을 수여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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