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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 12. 6] 일본군의 마지막 공정강습작전 - 레이테 섬 전투

라마막 2022. 12. 7. 10:22

일본군의 "마지막" 공중강습작전 모습.

1944년 10월, 일본의 야마시타 도모유키(山下奉文, 1885~1946) 장군은 일본의 필리핀 방어에 들어가면서 핵심 방어목표로 레이테 섬을 선택했다. 하지만 미군의 공격에 대한 몇 차례 역습이 실패하자 일본 측은 연합군이 보유하고 있던 활주로를 점령하기 위해 처절한 공격을 감행했다. 결국 궁지에 몰린 상황이 되자 일본 측은 공정부대를 투입해 양동작전으로 기습공격을 감행하게 되었다.

일본군의 마지막 공중강습 작전은 1944년 12월 6일에 실시됐다. 이들은 항공기로 침투하여 공중에서 강하한 후, 레이테 섬의 활주로 동편에 낙하하여 활주로를 점령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강하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아 병력이 넓은 범위에 흩뿌려져 버렸고, 일부는 낙하산이 제 때 개방되지 않거나 나무에 걸려 사망했다. 일본군의 강습이 개시되자 놀란 미군 역시 강하하는 일본군을 향해 난사를 해 일본 측은 적지 않은 병력을 상실했으나, 약 300명 가량은 강하 후 집결에 성공했으므로 계획대로 강습작전을 개시했다.

미군은 사방에서 접근하는 일본군 공수부대로부터 활주로를 방어하기 위해 급속 방어에 들어갔다. 일본군 공수부대원들은 성공적으로 지상에 주기되어 있던 항공기 몇 대와 보급 물자를 파괴하는데 성공했으며, 일부 병력은 미군 무기를 노획해 작전 중에 사용하기도 했다. 이에 미군은 일단 퇴각한 후 증원군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12월 8일, 미군 증원으로 제 187 공정보병연대가 도착했다. 이제 전황은 공정부대 대(對) 공정부대의 구도가 되었다. 곧이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아무런 증원이 없던 일본군은 뒤로 밀리기 시작했으며, 활주로 밖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저항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인근에 있던 일본군 보병 잔여부대는 다시 활주로를 점령하고자 시도했지만 곧 미군 공정부대에게 전멸 당했다.

결국 보병과 공수부대를 결합하여 양동작전을 펼친다는 일본군의 계획은 실패로 끝났고, 피해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에 일본군을 지휘 중이던 스즈키 소사쿠(鈴木宗作, 1891~1945) 중장은 전 병력의 퇴각을 명령했지만, 퇴각하던 병력 대부분 마저도 곧이어 추격해 온 미군과 필리핀 게릴라들에게 잔적격퇴를 당했다. 일본은 그간 이 공중강습 병력을 "정예"로 양성해왔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레이테 작전에서는 전황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 채 녹아 없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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