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Hawaii)의 진주만(Pearl Harbor) 공습 직후인 1941년 12월 7일 오후 12:30분경, 하와이 경찰이 호놀룰루 소재 일본 영사관에 급습했을 당시 촬영된 사진. 당시 직원은 서둘러 주요 문서를 소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당시 일본 대본영은 작전 개시 전에 선전포고가 가해질 경우 미국이 사전에 대비할 것을 우려해 일본 외무성에 기습작전 내용을 알리지 않은 상태였다. 대본영은 나구모 주이치(1887~1944) 중장이 지휘하는 진주만 기습함대가 작전을 개시한 뒤에야 전세계 일본 공관에 비문화 한 선전포고문을 송달했고, 하와이 영사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일본 기습함대의 공습은 오전 7:50분부터 시작됐으며, 약 9:00시까지 한 시간 남짓동안 실시됐다. 이 날은 일요일이었으므로 영사관 직원들은 출근하지 않고 집에 있었으며, 기습이 개시되고 나서야 허둥지둥 영사관으로 달려왔다. 이들은 그간 미-일 간의 긴장상태를 알고 있었으므로 비록 따로 언질을 받지 못했을지언정 전쟁이 시작됐다고 판단했고, 서둘러 영사관 내의 비문자료를 꺼내 폐기하던 와중에 하와이 경찰이 들이닥친 것이다.
사실 이 시점에 비문화 된 선전포고문이 일본에서 날아와 영사관에 도착해 있었으나, 앞서 말했듯 이 날은 일요일이었던 관계로 비문 담당자가 따로 출근하지 않아 포고문을 해독하지 못했다. 이 비문은 다음 날에 가서야 해독했지만, 이미 개전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아는 상황에서 이 문서는 그저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일본 기습함대의 공습은 오전 7:50분부터 시작됐으며, 약 9:00시까지 한 시간 남짓동안 실시됐다. 이 날은 일요일이었으므로 영사관 직원들은 출근하지 않고 집에 있었으며, 기습이 개시되고 나서야 허둥지둥 영사관으로 달려왔다. 이들은 그간 미-일 간의 긴장상태를 알고 있었으므로 비록 따로 언질을 받지 못했을지언정 전쟁이 시작됐다고 판단했고, 서둘러 영사관 내의 비문자료를 꺼내 폐기하던 와중에 하와이 경찰이 들이닥친 것이다.
사실 이 시점에 비문화 된 선전포고문이 일본에서 날아와 영사관에 도착해 있었으나, 앞서 말했듯 이 날은 일요일이었던 관계로 비문 담당자가 따로 출근하지 않아 포고문을 해독하지 못했다. 이 비문은 다음 날에 가서야 해독했지만, 이미 개전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아는 상황에서 이 문서는 그저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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