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1월~6월까지 이탈리아 안치오(Anzio) 에서 벌어진 '안치오' 전투 중 촬영된 사진. 1944년 5월 22일, 안치오에서 지뢰를 밟고 한쪽 다리가 날아간 영국군 병사를 연합군 포로가 된 두 독일군 공정부대원들이 부축하고 있는 모습이다.
2처 세계대전 중 지뢰에 의한 부상은 최근 아프가니스탄 전쟁 중 자주 등장한 급조폭발물(IED: Improvised Explosive Device)에 의한 피해와 다를 바 없었다. 아울러 포로로 사로잡은 독일군 공정대원을 부상자 이송에 투입하는 경우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전투 후에는 일손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포로를 부상자 이송 등의 노역에 투입하는 것 자체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안치오 전투는 2차세계대전 중 이탈리아 전역에서 벌어진 전투 중 하나로, 1944년 1월 22일부터 6월 5일까지 진행됐으며, '슁글(Shingle)' 작전으로 명명된 연합군의 강습양륙작전과 함께 시작되어 로마의 함락으로 끝났다.
: 참고로 2차대전 중 한국계 미국인으로 참전한 김영옥 중위(1919~2005, 대령 예편)가 안치오 상륙 후 전투가 진공상태에 빠졌을 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낸 공로로 대위로 진급한 일화가 있다.
당시 그가 속한 미 제 6군 예하 442 연대전투단(RCT)은 지크프리드 라인에서 독일과 대치에 들어갔는데, 돌파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김 중위가 일본계 미국인 부하와 함께 적진으로 들어가 독일군 포로를 사로잡아왔다. 그리고 심문 결과 지크프리드 선 후방에 전차류가 하나도 없다는 결정적 정보를 얻으면서 6군은 전선을 돌파했다.
이 전과에 감격한(!!) 군단장 마크 클라크(Mark W. Clark, 1896~1984) 중장(훗날의 그 UN 사령관을 지낸 그 분이다)은 직접 표창을 하러 전선까지 왔고, 김영옥 중위를 만나자 수년 전에 만났을 때도 중위였던 사실을 기억했다. 그래서 "그게 벌써 몇 년 전인데, 아직도 중위인가?"라고 물었고, 김 중위가 겸연쩍게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 자리에서 자신의 전속부관(대위)에게 가까이 오라고 한 후 부관의 대위 계급장을 떼다가 김 중위에게 달아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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