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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2차세계대전사

[1947. 2. 24] 동족 유대인을 팔아넘긴 안스 판 데이크의 재판

라마막 2022. 12. 1. 14:46

헤이그 전범재판 중의 안스 판 데이크.

1947년 암스테르담에서 나치에 협력한 혐의로 재판 중인 안스 판 데이크(Ans van Dijk, 1905~1948)의 모습. 2차대전 중 그녀는 유대인들을 꾀어낸 뒤 게슈타포에게 유인해주고, 그 댓가로 돈을 받았다.

그녀는 네덜란드 레지스탕스인 척 위장했으며, 유대인에게 접근해 은닉처를 소개해주는 척 하면서 위조서류로 신뢰를 샀다. 이런 식으로 그녀는 145명을 함정으로 유인했으며, 그 중에는 그녀의 남동생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중 85명은 결국 유대인수용소 내 가스실에서 살해당했다.

추정에는 실제 그녀가 죽음으로 이끈 사람은 최대 700명까지 달할 것으로도 보고 있으며, 일부 자료를 바탕으로 추정한 바에 따르면 안네 프랑크(Anna Frank, 1929~1945) 가족 역시 그녀가 밀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안스 판 데이크는 네덜란드에서 전쟁 기간 중의 범죄로 전후 사형이 선고된 유일한 민간인이다.

: 암스테르담 태생. 부모는 1935년에 별거에 들어갔으며, 결국 이혼으로 치닫으며 판 데이크 역시 혼란스런 유년기를 보냈다. 그녀는 미에프 스토델(Miep Stodel)이라는 여성과 동성애 관계가 되었으며, 암스테르담에서 여성 모자 가게를 경영했으나 1941년 독일이 네덜란드로 진주하면서 유대인 가계라는 이유로 상점을 폐쇄했다. 이에 안스의 애인이던 스토델은 1942년 스위스로 피신했다.

판 데이크는 1943년 부활절 날 독일 정보국에 체포됐으며, 여기서 나치 독일의 회유에 응해 정보국 내 유대인 문제실에 협력하기로 했다.

앞서 언급한대로 유대인을 포함한 700여 명을 게슈타포에 인계한 그녀는 전쟁이 끝나자 헤이그의 친구 집으로 피신했지만 1945년 6월 20일에 결국 네덜란드 경찰에 체포됐다. 그녀는 23건의 이적행위로 기소됐으며, 1947년 암스테르담 특별 법정에 회부되었다. 그녀는 23건에 대해 순순히 인정했지만 어디까지나 자신도 살아남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증인으로 나온 그녀의 핸들러인 나치 정보국 소속 빌리 라게스(Willy P. F. Lages, 1901~1971)는 판 다이크가 항상 열정적으로 일했으며, 밀고 할 때마다 돈을 받았기 때문에 적극적이었다고 증언했다. 결국 그녀는 재판 끝에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녀는 네덜란드 왕실에 사면 탄원을 넣었지만 네덜란드 왕실은 이를 거부했다.
그녀는 1948년 1월 14일, 베이스페르카르스펠(Weesperkarspel)의 베일머르(Bijlmer) 요새에서 총살형에 처해졌다. 그녀는 처형이 이루어지기 전날 밤 천주교로 개종하기로 선택한 후 세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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