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3월 17일, 2차세계대전 미 해군 참전용사 출신인 윌리엄과 제임스 콘웨이(William A. Conway, 1922~2004 /James F. Conway, 1927~2006)가 '미스터 소프티(Mister Softee, Inc.)'라는 아이스크림 브랜드를 창업했다.
이 브랜드는 냉전기간 중 민방위(CD: Civil Defense) 네트워크 시스템의 일부였으며, 이동식 아이스크림 판매차량 내에는 발전기와 냉장고, 비축용 생수, 대형 확성기, 대형 투광기가 들어있어 만약의 우발사태가 발생한 후 민간인 구호활동에 투입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민방위 네트워크용으로 설계된 상업용 차량에는 보통 메뉴판에 CD 표식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 원래 독립전쟁 때부터 민병대로 시작한 전통이 있는 국가지만, 체계적인 민방위 시스템은 1차세계대전 때 구축됐다. 미 정부는 루시타니아 호 격침사건 후 1916년 8월 29일에 국가방위위원회(Council of National Defense)를 설치했으며, 연방 단위로 전시 국민 방어체계 구축과 전쟁 역량 지원을 임무로 했다.
본격적인 민방위국(Office of Civil Defense)은 1941년 5월 20일에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국가 비상기획실(Office of Emergency Planning)이 설치되면서 함께 창설됐다. 초대 민방위국장은 당시 뉴욕 시장이던 피오렐로 라과디아(Piorello La Guardia, 1882~1947)가 겸임했으며, 지상능력 외에 민간 항공 지원 능력도 갖출 요량으로 민간항공정찰대(Civil Air Patrol) 역시 진주만 공습 바로 전날 설치됐다. 2차 세계대전 중 미 민방위대는 약 1천 만 명의 자원자로 구성됐으며, 소화 작업, 화생방 제독 작업, 응급처치, 적 항공기 지상관측 교육 등을 받았다.
민방위는 냉전 기간 중 역할이 더 중요해졌을 뿐 아니라 확장됐다. 핵 전쟁 위협이 도래하면서 1950년 국가 안보자원위원회(National Security Resources Board)는 민방위대 조직을 재편하는 162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발행했으며, 겉 표지 색상에 따라 '블루북'으로 명명되어 향후 40년 동안 미 민방위 시스템의 사실상 가이드라인이 되었다.
훗날 기밀해제된 관련 문서에 따르면 1950년대 말~1960년대 기간 중 미국인 2,700만 명이 민방위대에 참여했으며, 소련의 선제공격에 대비한 사전 교육을 이수했다. 하지만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제창된 탄도미사일 방어체계(BMD: Ballistic Missile Defense System)가 관심을 받기 시작하고, 민방위 시스템 자체가 들이는 비용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제도가 단계적으로 퇴색했다.
미 민방위 제도는 1979년부터 2001년까지 미 연방 비상관리국(FEMA: 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이 관장했으나, 911 테러 발생 후에는 신규로 설치된 국토안보부(US Homeland Defense Deparment)가 임무를 인수했다. 현재 민방위 계획 역시 국토안보부가 책임을 맡고 있다. 현재 민방위 시스템은 이전의 우발 시 민간 지원 임무 외에 비상 동원 임무 등도 함께 통합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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