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20일, <이라크 자유작전(Operation Iraqi Freedom, OIF)>이 시작되면서 연합군의 이라크 침공이 개시됐다. 지상군 투입에 앞서 공중자산에 의한 대규모 공습이 이루어졌으며, 이튿날부터는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 작전이 미국, 영국, 폴란드, 오스트레일리아군에 의해 단행됐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George H. Walker Bush, 1946~)과 영국의 토니 블레어(Tony Blair, 1953~) 총리는 연합군의 작전목표가 어디까지나 사담 후세인(Sadam Hussein, 1937~2006)의 이라크 통치를 종식시키는 것이라 밝혔으며, 참여국은 추후 20개국으로 증가했다.
미국은 최초 중앙정보국(CIA)이 이라크 내에 대량살상무기(WMD: Weapons of Mass Destruction)가 존재한다는 첩보에 근거하여 이라크 침공을 전격 단행했으며, 이는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난 9.11 테러의 대응개념인 '전세계 테러와의 전쟁(Global War on Teorrism)'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이라크는 이미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 기간 중 화학무기를 사용한 적이 있었고, 1991년 걸프전 때도 화학탄을 쓰려던 시도가 발각되면서 전후 화학무기 개발 프로젝트 포기를 강요당한 바 있었다. 이 때문에 2003년에는 이들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 중이라는 첩보가 신빙성을 가졌던 것이다.
전쟁은 2003년 이날 개전하여 불과 1달 보름 정도 뒤인 5월 1일자로 종료했다. 하지만 미측은 개전의 명분이었던 WMD를 이라크 전역 그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또한 전쟁 그 자체는 2개월 내로 속전속결하여 끝냈지만 곧이어 반군과 알카에다를 비롯한 테러단체를 상대로 기나긴 안정화 작전에 들어가 모든 것을 정리하는데 10년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사담 후세인은 2003년 12월 13일, 고향 티크리트 인근에서 체포당했으며 2006년 12월 30일에 사형이 집행됐다. 한편 테러와의 전쟁은 최초 표적인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1957~2011) 체포를 목표로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계속 진행 중이었으나 동시에 추진한 두 전쟁은 서로의 기세에 영향을 주고 말았다.
이라크 자유작전은 버락 오바마(Barack H. Obama, 1961~) 행정부가 들어선 후인 2011년 12월 15일에 공식 종료했으며, 미군은 2014년 6월 15일, 이 지역에서 개시한 또 다른 작전인 <내재적 결의(Inherent Resolve) 작전>이 시작되면서 간신히 해당 지역에서 완전히 철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라크 자유작전'은 전사자만 3,000명을 헤아릴 정도로 광범위한 피해를 야기했으며, 미군 역시 10년 넘게 중동에 묶여 있으면서 지친 군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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