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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베트남전쟁사

[1967. 2. 13] 기습 당하고도 17:1의 교환 비율로 베트콩을 격파한 대한민국 해병대의 짜빈동 전투

라마막 2023. 4. 5. 09:38

주월 한국군 병사의 모습. / Public Domain

1967213일 밤, 베트남에 파병되어 있던 대한민국 해병 제 2여단("청룡"부대) 11중대는 짜빈동 인근의 한 작은 마을 옆 기지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날 밤, 두 개의 베트콩 연대가 짜빈동의 한국군 제 2해병여단의 주둔지를 사방에서 급습했다. 한국군 해병대 병사들은 각자 벙커에서 기관총과 박격포탄으로 응사하면서 엄청난 화력을 쏟아부었다.

곧 베트콩은 부대를 둘러싼 철조망을 뚫고 침입했으며, 이들의 숫자는 청룡부대 11중대원들의 숫자를 압도했다. 결국 쌍방은 기지 내에서 엉켜 백병전을 시작했으며, 해병대원들은 항복하기를 거부하고 각자 진지에서 끝까지 버텼다. 국군 병사 한 명은 치명상을 입고 포위 당하자 산 채로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고 그 자리에서 수류탄 핀을 뽑아 그의 진지로 뛰어들어온 베트콩들과 함께 폭사했다.

잠시후 해병대원 대부분은 중대장인 정경진 대위의 지시에 따라 기지에서 퇴거했으며, 일부러 기지 내로 수백 명의 베트콩이 진입하도록 놔두었다.

베트콩이 기지 시설을 완전히 장악하자 두 개 분대가 기지 진입로를 재점령하면서 백 여 명의 베트콩을 기지 안에 가두었고, 이윽고 다시 국군 해병대원들은 진입로부터 기지 안으로 돌입하면서 백병전으로 베트콩들을 쓰러뜨렸다.

오전 07:30분이 됐을 무렵, 한국군은 기지 내의 적을 완전히 일소했으며 생존한 잔적을 다시 밀림지대로 몰아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들의 공중지원 요청을 받은 A-4 스카이호크(Skyhawk) 한 대가 날아와 베트콩들의 뒤를 쫓았다.

이날 짜빈동의 한국군 제 2 해병여단 11중대를 기습한 베트콩은 254명이 전사했지만, 한국군 해병대원은 단 15명이 전사했을 뿐이었다.

이 전투의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는 625 전쟁 이래 처음으로 부대원 전원에게 특진 조치를 해 해병 제2여단 11중대원 전원이 일계급씩 진급했다. 또한 이날 열세의 상황에서 적을 오히려 기지 내로 유인해 섬멸한 기지를 발휘한 중대장과 소대장들에게는 초급장교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국군 최고 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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