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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7. 31] 왕립해군, 230년 역사의 '보급 럼주' 배급 중단

라마막 2023. 8. 1. 17:45

1970731, 영국 왕립해군의 유구한 전통(?) 중 하나였던 일일 럼주 배급이 230년의 역사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왕립 해군은 이 날 전군에게 마지막 배급분의 럼주를 하달했으며, 영국 왕립해군 수병들은 이 날을 '블랙 톳 데이(Black Tot Day)'라고 명명한 후 가짜 장례식을 치른 후 팔에 검은 완장을 두르고 다녔다.

한편 같은 영연방군 소속인 왕립 뉴질랜드 해군은 이 일일 럼주 배급("데일리 톳")1990년까지 실시했다.

: 문헌 상의 기록에 따르면, 왕립 해군이 처음으로 수병들에게 술을 배급했던 것은 17세기 경이다. 당시 해군은 약 4리터 가량의 맥주를 지급했으나, 당시 배급하는 술은 알콜 농도가 높지 않은 1% 수준에 불과했다.

영국군은 힘든 뱃 일을 하면서 병사들의 사기를 유지하고, 추운 겨울에는 몸을 덥히며, 불면증이 있을 때 수면에 도움을 주고, 수술 등 의료 상의 이유로 알콜이 필요할 때도 사용할 목적 등으로 술을 배급했다. 하지만 전군에게 매일 술을 배급하려니 워낙 엄청난 양을 만들어야 했으므로 상대적으로 제조가 쉬운 럼주로 대체됐고, 1655년부터 약 284ml ("하프 핀트")의 술이 맥주 대체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일단 수병들은 럼이 상대적으로 맥주보다 돗수가 높았으므로 호응이 좋았다.

물론 이에 따라 알콜 중독자가 발생하거나 술에 취해 근무하는 등 문제도 계속 발생했는데, 이에 따라 왕립해군의 에드워드 버논(Edward Vernon, 1684~1757) 제독은 배급 술을 물과 4:1 비유로 희석시킨 후 하루 두 번으로 나누어 배급하도록 규정화 했다.

이 전통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으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술 배급"에 대해 한 차례 논의가 벌어진다. 지속적으로 음주와 관련된 군기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왕립해군은 1824년 일일 럼주 배급량을 1 핀트의 1/4 (142ml)로 줄였으나, 다시 이 문제를 살펴본 해군참모총장실 특별 위원회는 아예 술 배급을 없애라는 쪽으로 권고했다. 그러나 술 배급을 없애는 문제는 워낙 수병들의 반발이 심하자 해군 측은 절충안으로 일일 배급량은 71ml로 대폭 줄이는 쪽으로 가면서 하루 2회 지급분 중 저녁 지급분을 없애버렸다. 심지어 1881년부터는 장교에 대한 럼주 지급이 폐지됐고, 1819년에는 준사관까지 배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다시 이 술 배급 문제가 대두된 것은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도 한참 뒤인 196912월이었다. 크리스토퍼 메이휴(Christopher Mayhew, 1915~1997) 의원이 술 배급이 계속 필요하냐는 질의를 던지자 영국 해군참모총장실은 숙고 끝에 서면으로 이렇게 답변하면서 다시 배급 중지 문제가 대두됐다.

"해군 참모부는 럼주의 배급이 이제는 수병들의 생명이 걸린 복잡하고 섬세한 기계 및 시스템과 관련된 개인의 임무에 필요한 높은 효율 기준과 호환되지 않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1970128일부터 하원에서 럼주 배급에 대한 토의가 이루어졌다. 이 논의는 1시간 15분 동안 진행됐으며, 결론으로는 이젠 럼주의 배급이 불필요하다는 쪽으로 내려졌다.

그리고 마지막 배급일이 1970731일로 정해졌다.

이 날 왕립해군은 오전 11:00시를 기해 평소와 다름 없이 술을 통으로 옮겨 담아 배급을 시작했다. 수병들 역시 평소처럼 줄을 서서 배급을 받았지만, 일부는 항의의 뜻으로 검은 완장을 찼으며, 일부는 배급 받은 술을 "바다에 수장"한다면서 바다 위로 부어버렸다. 훈련함이던 콜링우드 함(HMS Collingwood)과 햄프셔주의 페어험에 위치하고 있던 왕립해군 전자학교(Royal Naval Electrical College)에서는 검은 관을 준비해 가짜 "럼주의 장례식"을 거행했으며, 드러머와 스코틀랜드 백파이프까지 동원해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당연히 럼주 배급 철폐는 전군의 호응도가 좋지 못했지만, 사실 왕립해군이 일일 배급품에 맥주 한 캔을 대신 넣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술 배급이 끊긴 것은 아니었다.

영 연방 계통의 해군에서는 이 럼주 배급 전통을 따라하고 있던 경우들이 있었는데, 이미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은 영국보다 앞선 1921년에 럼주 배급을 중단한 바 있었다. 왕립해군의 배급 중지 후 2년 뒤인 1972331일에는 왕립 캐나다 해군이 럼주 배급을 중지했고, 1990228일에는 뉴질랜드 해군이 럼주 배급을 중지하면서 사실상 "영연방 해군"의 럼주 배급 전통은 완전시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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