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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8. 31] GPS의 민간 개방을 야기한 대한항공 007편 격추사건

라마막 2023. 4. 5. 09:35

사고가 발생한 대한항공 007편. / 출처: Public Domain

198391일, 소련이 캄차카 반도를 통과하던 대한항공 007편의 격추사실을 인정했다. 해당 기체는 뉴욕 JFK 국제공항을 이륙해 앵커리지를 경유해 서울로 오던 항공편으로, 천병인 기장을 비롯해 승객 240명과 승무원 28(참고로 한국인 105/미국인 62/일본인 28/대만인 23/필리핀인 16/홍콩인 12/캐나다인 8/태국 5/기타 10)을 탑승시키고 있었다.

당시 투입된 기체는 대한항공사가 1972년부터 운항 중이던 보잉 747-230B형으로 HL7442라는 항공식별부호를 받은 여객기였으며 독일의 콘도르(Condor) 항공사가 운항하던 중고를 도입한 기체였다. 해당 여객기는 1983830, 뉴욕 JFK 국제공항 15번 게이트에서 출발했으며, 원래 출발시각인 미 동부시간 밤 11:50분에서 35분이 지연된 1225분에 공항 활주로에서 이륙했다. 이 기체는 앵커리지에 잠시 착륙하여 중간 급유를 했으며, 다시 알래스카 시간으로 831일 새벽 4시 정각에 서울로 재출발했다.

당시 해당 항공기는 1등석과 비즈니스석은 거의 만석인 반면 이코노미 클래스는 80석 가까이 비어 있었으며, 12세 미만의 아이들도 22명이나 탑승하고 있었다(비수기 서울행 항공기라 그랬을 듯). 특히 당시 1등석엔 서울 방문 길이던 미 하원의원인 래리 맥도날드(Larry McDonald)씨도 동승 중이었으며, 이 항공기를 경유편으로 이용하여 홍콩, 대만, 태국으로 가려던 외국 승객들도 다수 탑승 중이었다. 제시 헬름스 미 하원의원, 스티븐 심즈 상원의원, 캐롤 허바드 하원의원 등도 당시 한국 방문 길이었는데, 이들은 불과 15분 후에 이륙한 대한항공 KAL 015편에 탑승하여 재난을 피할 수 있었다.

앵커리지에서 해당 기체가 이륙한 후 항공통제센터(ATC)에선 기수를 220도로 돌리라고 명령했으며, "베델(Bethel)시 상공으로 들어가면 90도로 다시 기수를 돌리라"고 통보했다. 이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시뮬레이션으로 해당기체의 항로를 종합해본 바에 따르면, 조종사는 최초 항공기의 오토파일럿 모드를 헤딩(HEADING: 지상 관제탑에서 유도하는 방향으로 비행하는 모드)으로 놨다가 나중에 관성유도(INS)로 바꿨어야 하는데 이 전환을 제 때 하지 않은 것 같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여기에 대해서도 1) 기장이 실수로 모드 전환을 하지 않았거나, 2) 이미 항공기가 컴퓨터의 관성유도 한계를 벗어나 13.9km 가까이 항로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전환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았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격추 때까지 오토파일럿은 "HEADING" 모드였으며, 승무원들은 이로 야기된 문제를 깨닫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해당 007편이 이륙한 뒤 28분이 지났을 때 케나이에 있던 민간 레이더 하나는 007편이 항로에서 9km 북방으로 벗어나 있음을 보았고, 킹 샐먼에 위치한 군용 레이더는 이 기체가 문제의 베델 시 근처를 지날 때 23.3km 이상 북방으로 벗어나 있음을 탐지했다. 문제는 이 기체가 코스에서 너무 크게 벗어나면서 단파 VHF 통신범위에서도 나가버렸다는 것인데, 이 때 무선이라도 연결됐다면 뒤따르던 KAL 015기가 관제탑 교신을 릴레이로 연결해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007기는 015기에 자신의 현위치를 확인해달라는 메세지를 관제탑에 쏴달라고 세 차례나 보냈으나 015기가 수신하지 못했다. 해당 기체가 9km 가량 항로에서 벗어나 비행하기 시작한 것이 미국 영공을 벗어날 때엔 110km 가량 벗어나 있었으며, 북미 방공 완충지대에 들어섰을 땐 190km 가량을, 국제 날짜변경선을 넘을 땐 300km 가량 벗어나 있었다.(피격 당시 720km 이탈)

피격당시 대한항공 007편 비행 루트. 점선이 원래 계획된 항로이고, 실선이 실제 비행한 항로이다. (출처/Asaf Degani, NASA, ICAO)

사실 당시 소련이 민간항공기를 격추까지 한 것에 대해선 시대적인 배경도 크게 작용했다. 쿠바 미사일 사태(1962) 이후 미-소는 서로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으며 바로 직전까지 미 항모 미드웨이와 엔터프라이즈가 이 근해에서 항모훈련을 실시하며 캄차카 영공까지 함재기를 날려댔는데, 소련군 방공사령관이 이를 요격하지 못해 해임당한 사건이 있었다. 소련은 이에 "라이언(RYAN)" 작전을 실시하며 캄차카지역 방공을 강화하고 있었으며, 특히 사건 당일엔 소련이 미사일 발사 테스트를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계가 더 강화된 상태였다. 이런 와중에 대한항공 007편이 이 긴장이 팽팽한 영공에 뛰어들어간 것이다.

소련측 기록에 따르면 당일 15:51, KAL 007편이 비행제한구역에 진입해 들어갔고, 소련은 곧장 미그 23 한 대와 SU-15 한 대를 출격시켜 요격에 들어갔다. 해당 전투기 중 한 대를 몰던 오시포비치 대위는 KAL기의 화물 점멸등을 보고 "민간항공기 같다, 화물점멸등이 켜있다"고 보고 했고, 관제탑 역시 "화물점멸등이 분명한가"라고 재차 확인했다. 그는 "그렇다"라고 확인해줬으나, 워낙 정상항로에서 600마일 씩이나 벗어나 전투공역으로 항공기가 들어오는게 정상이 아니라고 본 소련 측은 이것이 민항기로 개조한 정찰기로 보았다.

문제의 007편은 당시 연료문제로 고도를 상향하겠다고 도쿄 관제소에 연락을 한 뒤 고도를 올리고 있었는데, 이 때의 감속행위 때문에 소련 측 요격전투기들에게 따라잡히고 말았다(영공에서 거의 벗어나고 있었다고 함). 이것이 영공에서 이탈하려는 기동이라 판단한 소련은 격추명령을 내렸고, 사할린 공군기지 사령관인 아나톨리 코르누코프 대장은 "영공에서 나가기 전에 쏴 떨어뜨려라"고 재촉했다. 결국 해당 기체가 영공 경계에 선 순간 칼리닌그라드 K-8 공대공 미사일 한 발이 발사됐고, 대한항공 007편은 공중에서 격추당했다.

소련은 이후 민간항공기였음이 확인되자 "영공침해에 대한 합법적인 요격"이었음을 강조했다. 추후 ICAO 조사에 따르면 007편은 피격 후 약 4분간 급강하하면서 모네론 섬 4.2km 부근에 추락해 전 승객이 사망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1993년 러시아 정부가 공개한 격추지점은 46°4627N 141°3248E 부근이었는데, 이는 해당 항공기가 국제 공역 상에서 격추당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다.

아직도 이 007편의 "추락"에 대해서는 미스테리가 많다. 일단 해당 기체의 전 파편이 수거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인근 군기지 레이더도 해당 기체의 "마지막"을 포착하지 못했고, 주변 어부등도 추락하는 모습을 목격했으나 폭발하는 소리나 광경은 보지 못했다고 한다. 해당 기체를 격추한 조종사 역시 "천천히 활강하며 하강하는 것까지만 봤다"고 증언했을 뿐, 기체의 마지막 순간을 목격한 이는 아무도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소련의 은폐설이 존재하지만 아직도 확인된 바 없으며, 제시 헬름스 의원도 CIA와 공동사고조사를 실시했으나 구체적인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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