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4월, 콩코드(Concorde)가 초음속 돌파 후 비행 중 사진에 촬영됐다. 이 사진은 비행 중 왕립공군(The Royal Air Force, RAF) 소속 토네이도(Tornado) 전투기가 촬영한 것으로, 두 항공기는 아일랜드 남쪽에서 우연하게 잠시 같은 방향으로 날았다.
토네이도는 콩코드의 초음속 순항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었지만(혹은 뛰어 넘을 수 있었지만), 토네이도는 콩코드와 달리 초음속 비행 시 소모되는 연료량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매우 짧은 시간 동안만 콩코드를 따라갈 수 있었다. 두 항공기는 약 4분간 함께 비행하다가 토네이도가 먼저 항로에서 이탈했으며, 콩코드는 계속 초음속 순항으로 비행해 미국 뉴욕의 JFK 공항에 안착했다.
콩코드는 이제는 모두 퇴역해버린 전설의 초음속 여객기로, 영-불 합작으로 제작해 영국에서는 브리티쉬 에어크래프트 주식회사(British Aircraft Co., 現 BAE 시스템즈), 프랑스에서는 수드 항공(Sud Aviation, 아에로스파시알을 거쳐 現 에어버스)이 합류하여 개발했다.
초도 비행은 1969년 3월 2일에 실시했으며, 개발비용은 당시 화폐로 약 7천만 파운드, 현재 가치로 약 14억 파운드가 소요됐다. 1965년부터 총 6대의 시제기가 개발됐으며, 초도 비행은 최종 조립시설이 있던 툴루즈(Toulouse)에서 이뤄졌다. 당시 '콩코드 컨소시엄'을 구성한 두 회사는 시장 조사를 통해 약 350대가 팔릴 것으로 예상했으며, 실제로 초창기에는 옵션 주문 형태로 약 100대의 주문이 들어왔었다. 하지만 실제 2003년 퇴역할 때까지 판매된 기체는 14대(시제기 6대 제외) 뿐이었다.
콩코드는 당시로서 파격적인 설계를 채택한 초음속 여객기였다. 여객기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둥근 삼각익에 무미익 설계를 채택했으며, 엔진은 롤스로이스(Rolls-Royce)와 스네크마(Snecma, 現 사프란)의 올림푸스(Olympus) 593 터보 젯 엔진이 채택됐다. 동체는 대부분 알루미늄으로 제조해 초음속 비행을 위해 최대한 중량을 가볍게 했으며, 여객기로써는 최초로 아날로그 방식의 플라이-바이-와이어(fly-by-wire) 비행제어 시스템이 장착됐다. 콩코드의 최고 비행 속도는 고도 6만 피트(18.3km)에서 마하 2.04였다. 최대 이륙중량은 185,080kg, 최대 연료량은 95,680kg 였으며, 탑승 좌석은 배열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약 92석에서 최대 128석까지 설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초음속 순항(super cruise)이 가능한 여객기였기 때문에 런던에서 뉴욕까지 불과 두 시간 53분 정도면 주파가 가능했을 정도로 빠른 항공기였다.
항공기 자체는 여객기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명작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우선 개발 과정에서 사업 비용이 21억 파운드(현재 가치로 132억 파운드) 가량 초과해 기체 가격이 올랐다. 콩코드는 1976년부터 일단 제작국인 영국의 브리티쉬 에어웨이스(British Airways)와 프랑스의 에어 프랑스(Air France)가 도입해 운항했으며, 양사는 각각 파리 로이지(Roissy)-워싱턴 덜레스(Dulles) 국제공항, 런던 히드로(Heathrow)-뉴욕 JFK 국제공항에 투입했다.
하지만 아직 미제 초음속 여객기가 없는 상황에서 유럽의 초음속 여객기가 항공 시장을 유린할 것을 우려한 미국이 우선 미국 국내 영공에서 여객기의 초음속 비행을 금지 시키면서 초음속 여객기의 진입 장벽을 높였고, 콩코드 자체가 엄청난 유류비와 정비 비용을 필요로 하는 항공기이니 만큼 비싼 티켓 가격도 아무나 타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콩코드의 대서양 횡단 항로의 평균 좌석 가격은 1996년 왕복 비용 $12,000달러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24,000 달러(2,800만원)나 됐다.
콩코드 여객기에 관심을 보인 항공사는 많았으나 실제 계약까지 간 항공사는 거의 없었으며, 그나마 국적 항공사인 에어 프랑스와 브리티쉬 에어웨이스를 제외하면 싱가포르 항공 정도만이 적극성을 보였다. 싱가포르 항공은 브리티쉬 에어웨이스와 공동 마케팅 협정을 체결한 뒤 브리티쉬 에어웨이스의 콩코드에 '싱가포르 걸' 스튜어디스를 파견하고, 좌석 공동 운항까지 하는 등 적극적으로 콩코드 도입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결국에는 브리티쉬 에어웨이스의 콩코드 기체와 조종사, 승무원, 보험까지 모두 빌리는 형태의 "리스"로만 계약을 체결했으며, 그나마도 1977년 12월 9일부터 13일, 1979년 1월 24일, 그리고 1980년 11월 1일까지 열 번도 안되는 제한적인 운항만 한 뒤 계약을 만료했다.
결국 콩코드는 국적사 두 곳이 7대씩 나눠 도입하여 운항했으며, 이윤 창출 보다는 항공사의 이미지 재고와 마케팅 목적으로 대서양 횡단 항로에만 제한적으로 투입했다. 하지만 그나마도 2000년 7월 25일, 에어 프랑스 소속 콩코드가 파리에서 이륙하던 중 활주로에 떨어진 부품 조각을 밟고 폭발하면서 근처 호텔에 충돌해 109명의 승객과 호텔 직원 4명이 사망하는 대 사고가 발생하자 두 항공사는 2001년 11월까지 콩코드 운항을 전면 중지했고, 운항 27년 만인 2003년, 콩코드 전 기종을 퇴역 시켰다.
초음속 순항 여객기 개발은 사실 미국과 소련도 시도했으나, 그나마 콩코드 정도가 실제 항로에 투입되어 25년 넘게 운용된 기록을 세웠다. 소련은 투폴레프(Tupolev) 항공이 콩코드와 유사한 설계의 초음속 여객기인 Tu-144를 제작해 1977년부터 시험 비행에 들어갔지만, 1978년 5월 시험 비행 중 연료 누출이 비행 간 화재로 이어지면서 추락했다. 그나마 탑승자 8명 중 사망자는 2명 밖에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Tu-144 사업을 취소 했다. 미국의 보잉(Boeing)도 1960년대부터 정부 지원으로 보잉 2707 프로젝트를 발주하면서 보잉 2707-300 기종을 개발했으나 경제성이 의심되는 데다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1971년 두 대의 시제기 완성을 눈 앞에 둔 단계에서 사업을 전면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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