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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 10. 21] '영국의 이순신' 넬슨 제독, 트라팔가에서 나폴레옹 함대 격파

라마막 2023. 10. 23. 16:32

1805년 10월 21일, 트라팔가(Trafalgar) 해전이 벌어졌다. 이 전투는 나폴레옹 전쟁 중 결성된 3차 신성동맹군과 프랑스 제국군 간의 전투였다. 나폴레옹은 스페인 점령 후 스페인 함대와 프랑스 함대를 연합시켜 영국 침공을 단행하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프랑스군 제독인 삐에르-샤를 빌뇌브(Pierre-Charles Villeneuve)가 스페인 카디즈에서 이곳까지 함대를 이끌어 온 뒤 영국 왕립해군의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중장과 격돌했다.

넬슨 제독은 33척의 프랑스-스페인 함대를 맞이하여 27척의 소규모 전력으로 대응했다. 당시 스페인 해군에는 세계 최대 전함인 산티스마 트리니다드(Santisma Trinidad) 함이 포함되어 있었다.

수적으로 유리한 이들 연합전력을 상대하기 위해 넬슨은 프랑스-스페인 함대의 측면으로 붙어 적 함대의 전선을 끊고자 했다. 넬슨의 작전은 적중해 프랑스 측은 대 혼란에 빠졌으며, 왕립해군은 근거리에 물린 상태로 프랑스 함대에 일제 포격을 가했다. 이 근거리 교전으로 프랑스-스페인 함 중 19척이 격침됐으나 영국 측은 한 척도 배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넬슨 자신은 프랑스군과 함상에서 교전을 벌이던 중 소총수가 쏜 총에 맞았다. 그는 빈사의 상태에서도 지휘권을 놓지 않았으며, 마지막 순간에는 대승의 보고를 받은 뒤 "나는 내 임무를 다했다"라는 말만 남긴 채 눈을 감았다. 한편 빌뇌브 제독은 교전 중 자신의 기함과 함께 항복해 포로가 되었으며, 스페인 해군에서 발탁된 부제독은 이 날 입은 치명상으로 얼마 후 사망했다.

이 트라팔가 해전은 19~20세기까지 이어진 영국의 해상지배의 시초로 보고 있다. 프랑스는 이 해전으로 영국을 꺾고 유럽과 대서양 제해권을 장악하려는 희망을 갖고 있었지만 완전히 좌절했으며, 오히려 해상 전력이 크게 꺾여버리는 바람에 통제가 어려워진 아메리카 식민지를 미국에 팔아야 하게 됐다.

이 해전은 세계 4대 해전 중 하나로 손꼽히며, 오늘날까지도 해전사를 배우는 이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실전사례 중 하나로 내려오고 있다.

: 참고로 빌뇌브란 사람이 '일패도지'라는 고사에 어울리는 인물. 원래 아메리카 독립전쟁에도 프랑스 해군 지원군으로 파견 갔었으며, 대서양에서 왕립해군을 꺾어 영국 원정군의 보급을 어렵게 만들어 사실상 영국의 패배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 빌뇌브의 운명은 당시 영국군을 지휘하던 윌리엄 콘월리스(William Cornwallis) 공작과 비교되는데, 미국에서 결국 식민지군에게 치욕의 항복을 한 그는 귀국 후 아일랜드 총독과 인도 총독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한 삶을 산 반면, 빌뇌브는 귀국 후 이 트라팔가의 패배 하나로 완전히 추락해 재기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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