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0년 2월 8일, 미 연방군(북군) 장성인 윌리엄 테쿰세 셔먼(William Tecumseh Sherman, 1820~1891) 장군이 태어났다. 셔먼은 전쟁 수행에 대한 독특한 접근 방식으로 "최초의 현대적 장군(the first modern general)'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셔먼은 1840년 웨스트포인트 美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남북전쟁이 터지기 전 그는 2차 세미뇰(Seminole) 전쟁에 참전했으며, 1853년 사업을 할 목적으로 전역했다. 그러나 사업이 순탄치 않자 그는 1859년 미 육군에 재입대 해 루이지애나 주 교육 및 군사학원(LSU: Louisiana State Seminary of Learning and Military Academy)의 교장이 되었다.
그는 남북전쟁 발발 후 루이지애나 주가 연방에서 분리되어 나가자 교장 직을 사임한 후 미 연방군으로 돌아가 싸웠다. 미 연방의 장군이 된 뒤에는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겪으면서 잠시 신경쇠약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든든한 친우가 된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S. Grant, 1822~1885) 장군의 우정 어린 도움으로 이를 극복하고 다시 전선으로 돌아왔다.
셔먼은 테네시 주와 미 동부지역을 남부연합군(CSA)으로부터 탈환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실로(Shiloh) 전투와 빅스버그(Vicksburg) 전투 중 지휘관을 맡았으며, 1864년에는 서부전역 총사령관이 되었다. 이 때 그는 두고두고 수 세대에 걸쳐 그를 기억하게 한 독특한 전략을 개발했다. 셔먼은 애틀란타에서 조지아주 서배너(Savannah)까지 진격하면서 초토화 전술을 실시했다. 그는 적에게 전략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불질렀으며, 주로 인프라 시설과 통신 기술과 관련된 모든 것을 파괴했다.
셔먼은 항상 보급을 확보하면서 진격했으므로 광범위한 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으며, 이 때문에 오늘날 그는 전면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던 전술의 천재로 인정 받는다.
: 오하이오 주 태생. '최초의 현대적 장군'이라는 별명은 역사가이자 군사이론가인 리델하트(B. H. Liddell Hart, 1895~1970)가 붙인 별명이다. 언급됐듯 1853년 경 진급 적체가 심한 군을 떠나 세인트 루이스의 '루카스 터너 은행(Bank of Lucas, Turner & Co.)' 샌프란시스코 지점장이 되었으며, 운송선에 직접 탑승했다가 두 차례나 배가 침몰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의 지점이 1857년 5월에 폐점 결정이 나자 그는 뉴욕 시로 옮겼지만, 같은 해 말에 터진 1857년 패닉 사태로 뉴욕지점까지 폐점했다. 이후에도 그는 캘리포니아와 캔자스 주 레번워스(Leavenworth) 등지로 옮겨 다니다가 처남이 운영하던 로펌에 채용됐으며, 법을 공부한 적이 없지만 바(bar) 시험에 합격해 짧은 기간 동안 변호사로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59년 루이지애나 주에서 군사학교 교장직 제의가 들어오자 미련없이 군으로 돌아갔다.
훗날 맥킨리 행정부 때 국무장관을 지낸 동생 존 셔먼(John Sherman, 1823~1900)은 공화당 소속 오하이오 주 상원의원을 지냈으며, 동생 역시 반 노예제를 강력히 주장했다. 그의 이름 '테쿰세'는 부친이 샤우니(Shawnee)족 인디언 추장 이름에서 따왔다고 스스로 자서전에 썼으며, '윌리엄'은 천주교 도미니꼬 회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으면서 붙은 세례명이었다.
그는 남북전쟁 말 캐롤라이나와 조지아, 플로리다의 남부연합군 전부로부터 항복을 받았으며, 남북전쟁 후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이 대통령에 선출되자 1869년 3월부로 미 연방군 최고사령관(Commanding General of the Army)에 임명되어 1869년부터 1883년까지 재직했다. 재직기간 중 그는 미국의 서부개척 사업인 인디언 전쟁을 지휘했으며, 이후에는 정치권에서 러브콜이 이어졌지만 1875년에 이 모든 제안을 거부하고 은퇴했다. 그의 자서전은 남북전쟁과 관련된 1차 사료 중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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