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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1. 5. 5.] 풍운아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세인트 헬레나에서 눈을 감다

라마막 2023. 5. 6. 21:54

1821년 5월 5일,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1769~1821)가 세인트 헬레나(Saint Helena) 섬에서 유배 중 사망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자 전략가로 손꼽히는 그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정복한 정복왕이기도 했다. 그는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하던 시기에 초급장교로 군생활을 시작했으며, 곧 혁명세력에 가담하면서 명성을 높였다. 그는 혁명의 이념을 고향 코르시카로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다.

혁명파의 지지를 얻으면서 툴롱항 전투로 이름을 알린 그는 이탈리아 원정과 이집트 원정 등으로 승세를 이어가며 영웅이 되었고, 곧이어 쿠데타를 통해 제1 집정이 되어 프랑스의 지배자가 되었다. 1804년에는 프랑스 황제로 등극하면서 프랑스 제국을 성립시켰으며, 곧이어 사실상의 유럽 전토를 휩쓸며 적대적인 유럽 구체제 왕정국가들을 굴복시켰다.

그는 제위기간 중 통칭 '나폴레옹 전쟁'으로 불리는 일련의 전쟁을 치르며 유럽 대부분을 석권했다. 하지만 무리한 러시아 원정을 감행하면서 패퇴한 나폴레옹은 그를 추격해 온 신성동맹군에게 항복했고, 결국 퇴위를 강요받은 후 남부 프랑스 해안의 작은 섬인 엘바(Elba)로 유배를 떠났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자신의 퇴위 후 복위한 부르봉(Bourbon) 왕가가 자신의 업적을 하나씩 지우는 모습에 대노하여 엘바를 탈출했고, 그를 기억하는 지지자들을 규합하면서 두 번째로 황위에 복귀했다. 하지만 그는 벨기에의 작은 마을인 워털루(Waterloo)에서 아더 웰슬리(Sir Arthur Wellsley, 1769~1852/혹은 '웰링턴 공작') 장군이 지휘하는 새로운 신성동맹군에게 패배했으며, 이번에는 그가 두 번 다시 부활하지 못하기를 바라는 적들에 의해 서아프리카 바다 위에 떠 있는 '지구 상에서 가장 외딴 섬' 중 하나인 영령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두 번째 유배를 떠났다.

세인트 헬레나에서 나폴레옹은 소일거리를 하면서 자서전을 구술했으나, 이 원고가 완성되기 전에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그는 죽음을 예감하자 가톨릭 교황청에 병자성사를 요청했으며, 이에 천주교 사제가 섬으로 파견되었다. 나폴레옹은 1821년 3월부터는 아예 침대 밖으로 나올 수가 없는 건강 상태가 됐으며, 이에 따라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해 고해성사 등을 모두 마친 뒤 1821년 5월 5일에 눈을 감았다. 그의 나이는 불과 51세였다. 임종의 순간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프랑스여! 대육군이여! 장군들이여! ... 그리고 조세핀!(이혼한 첫 부인)"이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가설이 떠돈다. 훗날 그의 유해에 남은 머리카락을 분석한 결과에 따라 보통 가장 유력한 사인으로 비소 중독을 꼽는다. 하지만 사망 직후 부검을 한 부검의인 프랑수아 카를로 안토마르키(Francois Carlo Antommarchi)는 당시 나폴레옹의 사인이 위암이라 적었다. 사실 비소 중독 설은 1961년 과학논문지 네이처(Nature)에 수록된 의사 스텐 포르슈훗(Sten Forshuvud, 1903~1985)의 논문이 처음 제기했다. 그는 당시 비소를 검사할 방법이 없었으므로 사인을 감추기 위한 방법으로 종종 쓰였다는 점을 들어 영국에 의한 암살설을 제기했다.

하지만 2008년, 한 연구단체에서 나폴레옹의 생에 전체의 나이대 별로 수집한 머리카락을 분석하면서 이 이론도 힘을 잃었다. 이 단체에서 유년기부터 수집한 나폴레옹의 머리카락 및 보나파르트 가문 후손의 마리카락을 분석한 결과, 처음부터 이 집안 사람들 머리카락에 비소 함량이 일반인 보다 높았을 뿐 아니라 나폴레옹은 이미 유년시절부터 꽤 심각한 비소 중독 현상을 보였다. 당대 사람들은 비소에 노출되기가 쉬운 환경이었는데, 아직 비소의 영향이 잘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의약품부터 염색약, 풀 등에 다량으로 함유해 썼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소 자체가 치명적이었을 가능성이 낮고, 무엇보다 이 중독 자체가 오랜 세월에 걸쳐 누적된 결과지 누군가에 의한 의도적 중독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현재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나폴레옹의 사인은 소화성 궤양과  위선암 합병증으로 보고 있다.

나폴레옹은 유럽 대륙에 그 당시까지 남아있던 봉건제도의 잔재를 타파하고, 1800년대 중반부터 애국주의의 신물결을 일으킨 인물로 평가 받는다. 또한 다양한 전술을 활용하고 군제를 개혁한 군사개혁가로도 인식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왕정제를 부활시킴으로써 '자유, 평등, 박애'를 기치로 시작한 프랑스 대혁명의 기치를 퇴색하게 했고, 견제 속의 균형이 어우러져 있던 유럽의 질서를 무너뜨렸던 '풍운아'로 보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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