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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 미국으로 이송하기 위해 해체 중인 '자유의 여신상'

라마막 2022. 12. 16. 10:17

해체작업 중인 '자유의 여신상' / 디지털채색=Jecinci

1886년, 프랑스 파리에서 완성 후 미국으로 이송하기 위해 해체 작업 중인 '자유의 여신상(The Statue of Liberty)'의 모습. 보다시피 최초 완성했을 당시에는 짙은 갈색으로, 동으로 만든 동상이었기 때문에 재질의 색상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하지만 30년의 세월이 지나가면서 갈색은 서서히 부식현상 때문에 녹색으로 변화했다.
 
: 최초 작품명은 <세상을 밝히는 자유(La Liberté éclairant le monde)>. 프랑스의 조각가인 프레데리크 바르톨디(Frédéric Auguste Bartholdi, 1834~1904)가 설계했으며, 실제 대형 동상으로 제작하기 위한 철골조 작업은 '에펠탑'으로 유명한 구스타프 에펠(Alexandre Gustave Eiffel, 1832~1923)이 맡았다.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 정부가 미국 정부에 보낸 독립 100주년 기념 선물로, 여신이 왼손에 들고 있는 석판에 "1776년 7월 4일"을 로마자로 새긴 'JULY IV MDCCLXXV'가 새겨져 있다. 이 날은 미국 독립선언서가 선언된 날짜이다. 발 아래에는 상징적으로 깨진 사슬이 흩어져 있는데, 이는 노예 해방을 상징하고 있다.
 
이 동상은 작업 착수 직후 프랑스와 프러시아 간에 벌인 보불전쟁(1870)으로 잠시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다시 곧 재개됐다. 바르톨디는 '여신'을 스케치 하면서 자신의 어머니 얼굴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자유의 여신' 컨셉은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자유의 여신인 '리베르타스(Libertas: 그리스 신화에서는 엘레우테리아[Eleutheria]에 해당)'에서 따왔다.
 
동상은 제작 작업에 비용이 많이 들었으므로 결국 바르톨디는 완성된 구성품 순서로 미국에 보냈다. 우선 머리와 횃불을 든 팔이 완성되자 베르톨디는 국제박람회에 출품해 기금을 모았다. 이 횃불을 든 팔은 1876년 필라델피아로 우선 보내져 미 독립 100주년 기념박람회에 출품됐고, 다시 같은 해 말부터 1882년까지는 뉴욕 맨하탄의 매디슨 스퀘어 파크(Madison Square Park)로 보내져 전시됐다. 미국은 미국대로 동상이 설 발판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이 또한 예산 문제에 직면하면서 완성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연출됐다.
 
이에 기금 마련에 팔을 걷어 붙인 이는 <뉴욕 월드(New York World)> 출판사의 사장인 조셉 퓰리처(Joseph Phlitzer, 1847~1911: 예상하듯, '퓰리처 상'의 창시자)로, 그는 전국적인 기금 모금 운동을 추진하여 120,000명의 기부자를 모았다. 그는 각각 기부자로부터 $1달러 이하(2021년 화폐가치로 약 $30달러)를 받았으나, 이 금액으로 건립기금이 충분하게 모임에 따라 여신상의 나머지 부분이 모두 완성됐을 뿐 아니라 곧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보내졌다.
 
동상의 발판은 뉴욕 만에 떠 있는 작은 섬인 엘리스 섬(Ellis Island)에 건립되었으며, 조각조각 도착한 여신상의 부품은 대규모 조립작업을 거친 뒤 1886년에 완공됐다. 완공이 되자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그로버 클리블랜드(S. Grover Cleveland, 1837~1908) 대통령은 기념 퍼레이드를 열어 미국 독립 백주년을 함께 축하했다.
 
자유의 여신상은 이후 엘리스 섬이 미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을 처리하는 이민국 시설로 활용되면서 "미국을 찾아오는 이민자들"이 처음으로 미국 땅에서 보게 되는 상징물이 되었다. 자유의 여신상은 1901년까지 미 등대위원회(US Lighthouse Board)에서 관리하다가 전쟁국(Department of War: 현재의 육군부)로 이관됐고, 마지막으로 1933년 자유의 여신상이 미 국립 기념물로 지정되면서 현재까지 계속 미 국립공원국(US National Park Service)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최초에는 자유의 여신상 내부 계단을 통해 횃불 주변의 발코니까지 관광객이 올라갈 수 있었으나, 안전상의 문제 등으로 1916년부터 횃불까지 올라가는 것은 금지되고 여신의 왕관까지만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여신상은 1976년 뉴욕 시에서 공식 랜드마크로 지정했고, 캘빈 쿨리지(J. Calvin Coolidge, Jr. 1872~1933) 대통령은 1924년 10월 15일에 미 국립 기념물(US National Monument)로 등록했다. 미 정부 역시 '자유의 여신상'을 2017년 연방 역사 기념물 제 100000829호로 지정하면서 공식 명칭을 <세계를 밝혀주는 자유의 여신상(The Statue of 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으로 등록했다. 자유의 여신상은 2009년 기준으로 누적 방문객이 320만 명을 넘었다.
 
자유의 여신상은 높이 46m(발판 위부터 횃불까지) 혹은 93m(바닥 발판부터 횃불까지)이며, 제조에는 총 27톤의 동과 113톤의 강철이 들어갔다. 완성된 여신상의 현재 무게는 204톤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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