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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 4. 9] 리 장군, 애포매톡스에서 그랜트에게 항복...美 남북전쟁 종료

라마막 2023. 4. 9. 17:54

애포매톡스 항복식의 모습을 그린 그림. 가운데 청색 군복을 입은 인물이 그랜트 장군, 우측의 회색 군복을 입은 이가 로버트 리 장군.

186549, 미국의 애포매톡스(Appomattox) 법원 건물에서 남부연합(Confederate States of America: CSA)군 총사령관인 로버트 리(Robert E. Lee, 1807~1870) 대장이 미 연방군(the Union: 북군) 총사령관 율리시즈 그랜트(Ulysses S. Grant, 1822~1885) 장군에게 항복했다.

게티스버그(Gettysburg) 전투 이래로 남부연합군은 계속 추격해오는 북군을 피해 수세에 몰려 있었다. 남부연합은 이후 윌리엄 테쿰세 셔먼(William Tecumseh Sherman, 1820~1891) 장군이 남부 주요지역과 애틀란타로 향하는 루트를 모두 초토화 시킨 "바다로의 행군(March to the Sea)"이 실시되면서 전력이 더 약화됐다. 남부연합 수도인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Richmond)는 이미 43일자로 연방군에게 함락됐으며, 제퍼슨 데이비스(Jefferson Davis, 1808~1889) 대통령을 비롯한 남부연합 정부 요인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주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리 장군은 전쟁을 계속 지속할 능력도, 선택도 없었다. 그는 버지니아 주 애포매톡스에서 율리시즈 그랜트 장군이 지휘하는 연방군 병력에 포위 당했고, 더 이상의 저항이 무의미하다고 판단되자 인근 건물 안에 있던 식탁보를 꺼내 흔들어 항복 의사를 표시했다. 그랜트는 곧 항복을 수락했으며, 애포매톡스의 법원으로 쓰이던 작은 건물을 항복 장소로 사용했다. 리 장군의 항복은 이후 남부연합군 수뇌부의 연쇄적인 항복을 야기하면서 사실상 '남북전쟁'이 종식됐다.

남북전쟁은 미국 역사상 본토에서 벌어진 가장 처절한 전쟁으로 기록됐으며, 전사자 수는 남북 쌍방을 도합해 60만 명이 넘는다. "둘로 갈라진 집(a house divided)"을 봉합하느라 대통령 임기를 모두 보낸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 대통령은 힘겨운 싸움 끝에 미국을 다시 하나로 통합하는데 성공했지만, 그는 불과 수일 뒤에 암살 당했으므로 승리를 자축할 수 없었다.

리의 항복 순간에 대해 그랜트가 자서전에 남긴 내용이 있다. 둘은 웨스트포인트(West Point) 미 육군사관학교 동문인데다 미군이 작던 시절 함께 근무한 근무연이 있어 비교적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대화가 시작됐다. 한참을 옛 이야기를 하면서 추억을 더듬던 두 사람은 점점 대화가 뜸해졌으며, 곧 침묵이 이어지자 그랜트가 종이를 한 장 가져오라고 해 항복 조건을 종이에 적기 시작했다. 앞의 내용에는 남부연합군은 당장 항복하며 모든 무기를 넘긴다, 이후 미국에 적극 협조한다 등이 있었고, 뒤에는 항복한 직후 귀향을 원하는 병사들에게는 약간의 여비와 말 한 마리를 지급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리는 내용을 읽고 관대한 조건에 감사의 인사를 했고, 곧 서명했다.

이후 리는 모자를 쓰고 법원 건물을 나섰으며, 뭔가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바깥을 바라보며 오른 주먹을 왼 손바닥에 한 번 쳐 보인 뒤 말에 올라타 자신의 진영으로 갔다.

이 직후 북군 병사들이 신이 나 포를 끌고 나와 축포를 쏴대기 시작하자 그랜트가 화를 내며 중지 시켰다. 그는 항복한 대선배와 그의 병사들에게 모욕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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