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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7. 3] 해적기를 걸고 스코틀랜드에 입항한 영국 해군 잠수함

라마막 2023. 7. 4. 11:47

1982년 7월 3일, 영국 왕립해군의 컨쿼러(HMS Conqueror)가 해적기(졸리로저)를 나부끼며 스코틀랜드로 입항 중인 모습. 이들은 포클랜드 전쟁 중 잠수함 작전의 성공을 자축하는 의미로 해적기를 달았다.

해적기 좌 상단에는 작은 군함의 실루엣이 보이는데, 이는 아르헨티나 해군의 제네럴 벨그라노 함(ARA General Belgrano, C-4)를 5월 2일에 어뢰로 격침한 것을 의미하고 있다.

: 참고로 '졸리로저(Jolly Roger)' 깃발은 잠수함들이 상징기로 많이들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영국 왕립해군 잠수함 함대(Royal Navy Submarine Service)가 즐겨 사용한다.

이 깃발을 쓰기 시작한 유례는 1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해군참모총장이던 아더 윌슨(Sir Arthur Wilson, 1842~1921) 원수는 잠수함 전력을 못마땅해 하며 "항상 은밀하고, 정정당당하지 못하며, 영국인 답지 않다"고 일컬으며 '그런 배를 탄 자들은 해적으로 처우해야 한다'고까지 폭언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왕립해군 E9함(HMS E9) 함장인 맥스 호튼(Sir Max Kennedy Horton, 1883~1951) 중령은 1914년 9월, 독일 해군 순양함 헬라(SMS Hela) 함을 어뢰로 격침하고 귀환하던 중 윌슨 원수의 말이 생각 나 일부러 해적기를 내걸었다. 처음 호튼 중령은 한 차례 임무가 성공할 때마다 매번 새 해적기를 걸어 성과를 표시했으나, 더 해적기를 걸 자리가 없자 아예 대형 해적기 한 장을 따로 제작한 뒤 귀퉁이에 막대기를 그려 '킬마크' 표시를 했다.

이후 호튼 중령이 항의성으로 달기 시작한 해적기는 일종의 '전통'이 되었고, 왕립해군 잠수함들은 입항 시 성공적으로 임무를 달성했음을 표시할 때 해적기를 내걸게 됐다. 이를 본 타 해군 역시 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따라하기 시작했고, 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적지 않은 수의 해군이 이 전통을 흉내냈다.

2차세계대전 중에는 왕립해군 잠수함 전대장들이 예하 잠수함에 이 '해적기'를 나눠주어 걸게 했으나, 일부 함장들은 이를 못마땅해 하기도 했다. 해적기가 마음에 안 들었다기 보다는 '잠수함의 임무 자체가 은밀성에 중점을 둬야 하는데, 이 깃발은 성과를 사방에 떠들고 다니는 느낌이 있는데다, 사실 어뢰 발사 후 위치에서 퇴거하는 것이 잠수함의 절차이므로 '킬마크'를 새길 정도로 전과가 분명하게 확인되지도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어쨌든 이 '해적기' 전통은 일부 연합군 해군 사이에서 유행이 되었으며, 특히 영연방 국가들은 거의 대부분이 채택해서 사용했다.

오늘날에는 앞서 언급했듯 잠수함의 임무가 성공적으로 달성됐음을 표시하는 용도로 '졸리 로저'가 사용되고 있다. 최초에는 가운데 해골 마크 좌측에 격침한 배 그림 대신 막대기를 그어 전과를 표시했으나, 이것 또한 시간이 가면서 진화(?)해 우측 상단에는 기뢰부설 임무 수를 표시하기도 하고, 횃불이나 등대 그림을 그려 항해 임무나 적지 시찰 임무를 표시하기도 한다.

원래 '졸리 로저' 깃발은 1700년대 '해적의 황금기'에 수많은 해적들이 즐겨 달았던 깃발이다. 졸리 로저 기를 쓴 대표적인 해적은 블랙 샘 벨라미(Black Sam Bellamy, 1689~1717), 에드워드 잉글랜드(Edward England, 1685~1721), 그리고 존 테일러(John Taylor, 1718~1723) 등이며, '죽은 자의 두개골'이 가져오는 특유의 이미지 때문에 해적들이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안겨줄 목적으로 즐겨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상대방을 언제든 잔인하게 죽일 수 있는 '즉시성'이 있다는 이미지를 주어 기선제압을 하려는 의미였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왜 두개골 아래 뼈다귀를 X자로 겹친 표식을 "졸리 로저"라고 부르게 됐는지는 불명확하나, 추정에는 해적 바르톨로뮤 로버츠(Bartholomew Roberts, 1682~1722)나 프랜시스 스프릭스(Francis Spriggs, ?~1725?) 둘 중 하나가 이름을 붙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보다 앞서 활동한 영국계 사략 해적인 리처드 호킨스(Richard Hawkins, 1562~1622) 역시 '졸리 로저'로 부른 깃발을 달고 있었으나 두개골 아래 심장이 있고, 이를 뼈다귀가 관통하는 독특한 디자인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 '해적의 황금기'에는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된 해적기 형상으로 보인다.

'졸리 로저(Jolly Roger)'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으나, 가장 정설로 통용되는 것은 원래 이 깃발의 이름이 불어 '졸리 루주(Joli Rouge, "매우 빨갛다")'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초창기에 프랑스계 사략선들이 이 깃발을 달았다는 기록이 있는 바, 아마도 이들이 처음 달았던 것이 타 해적들에게 전파되면서 영국권 해적들 사이에서 이름이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측이다. 현재 공식적으로 찾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1723년 10월 19일, 영국 '브리티쉬 가제티어(British Gazetter)'지에 난 신문기사로, 이 기사에서는 해적기를 '올드 로저(Old Roger)'로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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