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언론인인 빅토르 누아르(Victor Noir, 1848~1870)의 무덤 모습.
무덤 앞에 조성된 청동상은 누워있는 누아르의 모습을 따서 만들었으며, 그의 바지 쪽에 특이하게 돌출된 부분이 보인다. 이 돌기 때문에 누아르의 무덤은 유명인사들이 매장된 파리 파르라세즈(Père Lachaise) 공동묘지에서 가장 여성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손꼽힌다.
전설에 따르면, 이 곳에 방문하여 청동상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 다리 옆 모자 속에 꽃을 위로 향해 꽃은 후 문제의 "돌출부"를 문지르거나 접촉하면 여성의 생식력이 증가해 난임(難姙) 여성이 임신하기 쉬워지고, 성 생활 능력이 향상되며, 일부 설(?)에는 미혼 여성이 1년 안에 남편감을 만난다는 도시 전설이 따른다.
이 무덤 앞의 청동상은 이 전설 때문에 수많은 관광객(주로 여성이겠다)이 만지면서 입술과 '돌출부'가 사진처럼 마모되어 반짝반짝 빛나게 되었다.
누아르는 1870년 나폴레옹의 형제이자 나폴레옹 3세(Charles Louis Napoleon Bonaparte/ Napoleon III, 1808~1873)의 사촌인 루시앙 보나파르트(Lucien Bonaparte/ Napoleon I, 1769~1821)의 아들인 삐에르 보나파르트(Pierre Napoleon Bonaparte, 1815~1881) 왕자에게 총으로 살해당했다. 사후 그는 나폴레옹 3세의 제정(帝政) 정부에 반대하는 '상징'이 되었으며, 뇌이(Neuilly)에서 열린 장례식에는 '공화제 지지자'라면 무조건 참석해야 하는 '시민의 의무'로 간주됐기 때문에 10만 명이 운집했다. 당시 나폴레옹 3세는 이미 인기를 잃고 있던 시점이기 때문에 이 사건은 제정을 흔든 결정적인 사건 중 하나가 되었다.
나폴레옹 3세의 제2 제정은 1870년 9월 4일, 보불전쟁이 패배로 확정되면서 무너졌다. 빅토르의 무덤은 1891년 뇌이에서 파르라세즈로 이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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