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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 6. 1] 미 아시아 원정군, 조선 도착... 신미양요 발발

라마막 2023. 6. 1. 11:42

어재연 장군기를 노획한 미군들의 모습. 뒤에 지휘관을 뜻하는 수(帥)자가 쓰인 깃발이 보인다.

 

신미양요(辛未洋擾, 187161~73)와 관련된 미국 쪽의 이야기.

잘 알다시피 제네럴 셔먼(SS General Sherman) 호가 조선에서 "격침" 당하자 미국은 존 로저스(John Rogers, 1812~1882) 제독이 지휘하는 '로저스 전대' 기함인 콜로라도(USS Colorado) 함을 한반도에 급파해 조사를 명령했고, 조선 정부가 협조에 거부하자 공격을 개시해 어재연(魚在淵, 1823~1871) 장군이 이끄는 강화도 수비대와 격돌했다. 이 때 찰스 브라운(Charles Brown) 상병(해병)은 공세 세력에 포함되어 조선군과 격돌, 어재연 장군의 장군기를 뺏는데 성공했다. 이날 전투는 15분간 지속됐으며, 조선군은 어재연 장군을 포함하여 240명이 전사하고 미군은 3명이 전사(그나마도 우군사격과 실족으로 각 1명 사망)했다.

미 정부는 해외 영토에서 벌어진 공적으로 이날 전투에 참가한 9명의 해군 수병과 6명의 해병에게 명예 대훈장을 상신했으며, 여기에는 찰스 브라운 상병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미 해병 사상 처음 명예 대훈장을 수여받는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훈장 수여가 상신되어 승인되기 전 군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는 전투 4개월 뒤인 187110월에 군을 떠났는데, 이후 훈장 수여가 승인됐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행적이 추적되지 않아 영영 실제 수여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심지어 그가 자신의 훈장 상신이나 승인 사실을 알았는지도 불분명하다.

참고로 해당 장군기는 콜로라도 함이 전리품으로 수거하여 미국으로 가지고 귀환했으며, 이후 내내 미 해군사관학교에 전시품으로 전시하다가 2007, 10년 장기 대여 형태로 한국에 돌아왔다. 하지만 중간에 대여기간이 늘어나 2020년까지 강화 역사박물관에 전시했으나, 대여기간이 끝나 현재는 단기 임대로 계속 대여기간을 연장 중이다.

어재연 장군기 노획 후 콜로라도 함에서 펼쳐보이고 있는 미군들의 모습.
신미양요에 참전한 미측 지휘관들의 모습. 아시아 전대장(Asiatic Squadron Commander)인 존 로저스(John Rogers, 1812~1882) [해]소장(책상 오른쪽, 지도를 짚고 선 이), 상륙군 지휘관 윈필드 스콧 쉴리(Winfield Scott Schley, 1839~1911) [해]소령(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 및 참모들이 강화도 공격에 앞서 지도를 살펴보고 있다.
조선 도착한 미 해군 원정대의 기념사진. 앞줄 맨 왼쪽에 앉은 이는 휴 맥키(Hugh McKee, 1844~1872) 중위로, 강화도 전투 중 전사한 유일한 미군 장교이다.
강화도 상륙 후 포를 옮기고 있는 미군들의 기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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