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세계대전 중 진지에서 가스를 살포한 뒤 밖으로 탈출 중인 독일군 병사들의 모습. 1915년경 사진을 디지털 채색한 것이다.
1차세계대전에 참전한 독일군 병사인 빌리 시베르트(Willi Siebert)는 1915년 4월 22일 이프레(Ypres)에서 프랑스군을 상대로 참호전을 치르던 중 염소(鹽素) 가스를 살포했던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으로 남겼다.
"결국 우리는 가스를 살포하기로 했다. (중략) 그 날은 날씨가 좋아 태양볕이 아름답게 내리쬐고 있었다. 잔디가 있는 곳은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녹색이었다. 이 곳에서는 피크닉을 즐겼어야 마땅한 곳이지, 우리가 이후에 자행한 짓을 저지를 곳이 아니었다.
우린 보병을 모두 불러들인 후 선으로 연결된 가스 밸브를 열었다. 저녁 쯤 되자 가스가 프랑스군 진지 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모든게 마치 바위처럼 조용했다. 모두 다 지금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 지 궁금해하며 침묵했다.
이 녹빛을 띈 회색의 가스 구름이 우리 앞에 뭉게뭉게 뭉치기 시작하자 갑자기 프랑스 병사들이 지르는 비명이 들려왔다. 1분도 안되어 이들은 지금까지 중 가장 격렬하게 기관총과 소총 난사를 해댔다. 아마 소총이든 기관총이든 야포든, 프랑스 군은 갖고 있는 화기란 화기는 모두 다 쏴댄 것 같다. 지금껏 그 정도의 소음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우리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총알과 포탄의 폭풍은 어마어마했지만, 그 아무 것도 가스를 멈추지 못했다. 바람은 계속해서 프랑스군 전선 쪽으로 가스를 몰아갔다. 소들의 울음소리, 말들의 비명소리도 들렸다. 프랑스 병사들도 계속 소리지르고 있었다. (중략)...
한 15분 뒤쯤 총소리가 서서히 멎었다. 30분쯤 지나니 총소리는 어쩌다 간간히 들리는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한참 후 가스가 걷힌 후 우리는 빈 가스통 옆을 지나 조금씩 이동했다.
그 곳에는 오로지 죽음 밖에 없었다. 살아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심지어 야생동물들조차 다 굴 속에서 기어나와 죽어 있었다. 죽은 토끼, 두더지, 쥐 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여전히 공기 중에는 염소 가스 냄새가 남아 있었다.
프랑스군 진지에 도착하니 진지는 텅 비어있었고, 수백미터에 걸쳐 프랑스 병사들의 시체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조금 둘러보다 보니 영국군 병사도 몇 명 있었다. 이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숨을 쉬어보려고 자신의 얼굴과 목젖을 손톱으로 박박 긁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어떤 병사는 스스로 머리에 총을 쏴 자살한 것이 보였다. 마굿간에 묶여있던 말이나 소, 닭까지 모조리 죽어 있었다. 심지어 곤충까지 살아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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