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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11. 20] 오스트레일리아 해군 최초의 여성 수병, 낸시 벤틀리

라마막 2022. 11. 29. 17:36

낸시 벤틀리와 헨리 케일리 대령.

1920년 11월, 오스트레일리아 타즈메니아 섬 숲 속에서 한 소녀가 나무 위에서 놀다 떨어져 다쳤다. 그녀의 이름은 낸시 벤틀리(Nancy Bentley). 그녀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아래에 있던 뱀을 놀라게 했고, 뱀이 그녀의 팔목을 물었다.

독사일 수도 있기 때문에 위급한 상태였으나, 문제는 그 곳은 깡촌...가장 가까운 마을은 소렐이라는 곳이지만 그 곳까지 제 시간에 도달 못할 가능성이 크자, 그녀의 아버지는 소녀를 보트에 태운 후 가장 가까이 떠 있던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의 경순양함인 시드니 함(HMAS Sydney)까지 노를 저어 갔다. 당시 시드니 함은 해안에서 연습에 참가 중이었다.

당연히 선내 의무병은 소녀를 치료할 의향이 있었으나, 문제는 이게 1920년대라는 점... 그렇다. 당시 함대 사령관이 함장인 헨리 케일리(Henry Cayley) 대령에게 여성은 배 위에 절대 승선시키지 말라고 지시를 내린 상태였다. 함장은 뭔가 소녀를 배에 올리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핑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당시 호주 해군은 아직 여성의 입대도 받지 않던 시절이었다.
 
마스코트 임무를 훌륭히(?) 수행 중인 벤틀리 양과 시드니 함 승무원들.

이에 케일리 대령은 오스트레일리아 해군 본부의 마스코트(Mascot) 실에 연락했다. 당시 여러 국가의 해군은 부대나 승무원들이 선정한 동물을 부대 마스코트로 삼는 유행이 있었다. 쉽게 말해 승무원들은 마스코트를 선정하면 실제 이에 해당하는 동물을 "구입"하여 "마스코트"라는 계급을 준 뒤 배에서 키울 수 있었다. 물론 관련 계급 규정은 좀 엉성했는데, 이게 사람이 아니라 동물에게 주는 계급이니 별반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하야 케일리 대령은 낸시를 11월 15일자로 "마스코트"로 지정한 후 군번 000001을 부여했다. 공식적으로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의 일원이 된 낸시의 복무 조건은 간단했다. 복무기간은 "재미없어 질 때까지. (till fed up)".

그리고 선내 의무병들은 뱀에 물린 그녀를 응급치료한 후 타즈메니아의 호바트로 보내 후속치료를 했다. 그녀는 시드니 함이 다시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기 전까지 병원 치료를 하는 동안 동네 극장에서 영화를 자유롭게 볼 권리가 주어졌다. 그리하여 그녀는 총 8일간 호주 해군에서 복무한 후 퇴역(?)했다.

낸시는 1970년 한 인터뷰에서 당시 경험을 이리 밝혔다.
"저는 시드니함의 공식 마스코트였고, 함장님부터 막내 수병까지 다 VIP로 대해 주셨습니다."

해군은 그녀를 치료하는 동안 그녀의 "자격"에 대해 면밀히 검사했다. 그녀의 성격에 대해서는 "매우 좋음"으로 기록했고, 보직 수행에 대해서는 "뛰어남"이라고 적었다.


실제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에 여성이 실 계급을 받고 승선하게 된 것은 그 후로부터 21년 뒤였다.


낸시의 이야기는 동화책으로 만들어졌으며, 그녀의 모습을 딴 소녀의 모습은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이 가장 오래된 함정에 수여하는 트로피에 새겨져 있다.
 
낸시 벤틀리의 이야기를 동화로 만든 『낸시 벤틀리: 호주의 첫 여성 승무원』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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