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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 과학

[1936]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간 나치독일의 램젯 우주궤도 폭격기

라마막 2023. 9. 21. 09:30

1930년대 말 독일이 컨셉을 잡았던 로켓 추진 방식의 폭격기인 질버포겔(Silbervogel)의 모습. 오이겐 젱거(Eugen Sanger) 박사와 그의 아내 이레네 젱거-브렛(Irene Sanger-Bredt)이 개발했던 항공기로, 엄밀히 말하자면 우주 궤도권에 띄워 놓고 폭격을 하겠다는 '우주선' 컨셉에 가까웠다.

질버포겔의 기본적인 개념은 젱거의 전문 분야인 로켓엔진과 항공우주 기술을 접목시킨 결과로 탄생했다. 젱거 박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공학자로 비엔나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독일 국적을 얻어 정착한 인물이었으며, 램젯(Ramjet) 엔진 기술 전문가이던 이레네와 팀을 이루면서 장거리 로켓추진 폭격기 개발을 진행했던 것이다.

: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간 컨셉.

이 시기에 나치 독일은 베르너 폰 브라운(Wenher von Braun, 1912~1977) 박사의 로켓 기술처럼 한 번에 전쟁 판세를 역전시킬 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으며, 젱거의 궤도 폭격기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이 항공기는 외기권 우주 활공기였으며, 결과적으로는 냉전 시기가 되어서야 미국과 소련이 개발한 전략 폭격기 개념과 유사하다.

젱거와 이레네는 당시로썬 생소한 기술 분야에 집중했는데, 양력 동체 기술이나 램젯 기술이 이에 해당한다. 젱거는 열렬한 나치 주의자였으며,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던 당시 이미 SS 친위대에 가입해 활동한 전력이 있었다. 그는 훗날 이들 항공기 개발에 진력했던 이유가 인류의 우주 여행 꿈이었다고 밝혔지만, 실제 이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으므로 국가적으로 아낌없는 재정지원을 퍼붓는 나치 독일과 손을 잡았다.

젱거 박사는 1936년부터 브라운슈바이크(Braunschweig)에 건립한 연구소에서 이 궤도 폭격기를 움직일 초대형 엔진 개발에 착수했으며, 어느 정도 이것이 성과를 보이자 1936년에 연구소를 뤼네부르거 하이데(Luneburger Heide)로 이전한 후 본격적인 '질버포겔(은빛 새)' 개발에 착수했다. 이 항공기는 거대한 동체에 비해 짧은 날개가 특징적으로 달려 있었는데, 이는 대기권 상층부까지 도달하기 위해 엄청난 양력이 필요했으므로 항공기 동체 자체가 날개 역할을 하는 동체 양력 기술을 적용한 결과였다.

이 항공기의 개발은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는 있었으나, 독일 항공성은 1942년 다수의 프로젝트를 취소하면서 질버포겔 프로젝트도 함께 취소해버렸다. 일단 개발비가 엄청나게 소요되는 것이 큰 이유였겠으나, 그 이면에는 젱거 박사가 기술 개발 측면만 강조를 하고 이 항공기의 실용화의 속도를 높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장 미국을 상대로 개전한 독일 입장에서는 가시적인 성과가 빠르게 나오는 무기체계가 필요했지, 전쟁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한참 뒤에야 개발될 무기가 절실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젱거 박사와 그의 팀은 공군 활공기 연구소로 이전 됐으며, 젱거 박사는 이 곳에서 종전 시기까지 계속 램젯 엔진 분야에 대해 연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도르니어(Dornier)Do-17에 램젯 엔진을 장착해 속도 및 항속거리를 늘리는 연구를 하고 있었고, 체코의 항공기 공장을 활용해 램젯 요격기인 슈코다-카우바(Skoda-Kauba) Sk P.14를 개발하고 있었지만 종전 전까지 개발을 완료하지 못했다.

종전 후 젱거는 프랑스에서 일했으며, 1949년에는 우주연맹(Federation Astronatique)을 창설했다. 그는 1951년 이 단체를 확장하여 국제 우주연맹(International Astronautical Federation)을 만들어 총 64개국이 가입했고, 270여명의 과학자가 단체에 상주했다. 젱거 박사는 이 단체의 초대 의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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