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1월 1일, 통칭 '시코르스키(Sikorski)의 군대'로 불린 프랑스 망명 폴란드 육군 병사들의 모습.
1939년 9월, 독일의 침공을 받은 폴란드는 독일을 힘겹게 막던 중 뒤에서부터 침공한 소련에 의해 양쪽에서 무너졌으며, 폴란드 수뇌부는 폴란드 함락 전 전군에게 각자도생으로 폴란드를 탈출해 프랑스에서 집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85,000명의 폴란드 병사들이 폴란드를 탈출해 프랑스로 모여들었으며, 망명 폴란드 군은 망명자와 탈출 병사들을 재편해 총 4개 사단과 2개 독립여단, 1개 항공지원부대를 구성했다.
독일이 프랑스로 침공하자 이들 폴란드 사단도 전투에 참전했지만, 독일군에게 영불연합군이 파죽지세로 대패하자 총 85,000명의 병사 중 약 2만 명 가량이 영불 연합군 병사들과 함께 덩케르크를 통해 간신히 영국으로 탈출했다. 이들은 이미 영국으로 망명해 영국과 서방 연합군의 지원으로 재건 중이던 통칭 '서부 폴란드군(Polish Armed Forces in West)'에 합류했으며, 폴란드 출신 장교인 스타니스와프 소사보프스키(Stanisław Sosabowski,1892~1967) 장군의 지휘 하에 연합군에 합류했다.
이후 통칭 '자유 폴란드 군'으로 불린 폴란드 망명부대는 영국과 서방 연합군의 지원을 받아 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 전선에서 싸웠다.
: 원래 폴란드 레지스탕스와 연계해 대규모 봉기가 폴란드에서 일어나면 이에 호응해 폴란드를 해방할 계획이었으나, 영국의 반응이 뜨뜻 미지근해 타이밍을 놓쳐 폴란드 대봉기를 지원하지 못했다. 이후 1944년 마켓가든 작전에 투입됐지만, 몽고메리와 브라우닝의 오판 때문에 아른헴의 '머나먼 다리' 앞에서 독일군에게 포위 격파됐고, 억지로 소규모 병력이 영국으로 탈출하긴 했으나 이후에는 이전같은 전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종전을 맞았다.
이 '서방 연합군'에 가담한 폴란드 망명자들은 2차대전 후 소련 정부에 의해 폴란드 국적을 말소당했으며, 이 때문에 대부분 귀국을 포기하고 망명지에 정착해 살다가 고국을 밟지 못하고 사망했다. 소사보프스키 장군 역시 대전 후 런던에서 공장 노동자로 살다 사망했으며, 이들의 행적이 다시 재조명 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후반, 네덜란드의 한 TV 방송국에서 자유 폴란드 부대의 행적을 조명하면서부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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