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10월, 보르네오 섬 브루나이 인근에서 촬영된 일본 해군 전함 나가토(長門), 야마토(大和), 무사시(武蔵)의 모습.
전국시대 중 쵸슈(長州)의 나가토 국(長門国: 현재의 야마구치 현)에서 이름을 따온 나가토 함은 일본 해군이 건조한 슈퍼 드레드노트 급 전함이었다. 이 함정은 1934년~1936년 기간 중 현대화 작업을 거치면서 장갑을 보강하고 기기류를 교체했으며, 선루(船樓) 역시 개조를 가해 파고다 형으로 바꾸었다. 나가토는 1937년 2차 중일전쟁에 잠시 참전했으며, 1942년 12월 진주만 공습 당시 일본 본토에서 지휘 중이던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 五十六, 1884~1943) 제독의 기함이기도 했다.
1941년 12월 2일, 야마모토 제독은 하시라지마(柱島)에 정박 중이던 나가토 함교에서 "니이가타(新潟) 산으로 오르라"는 암호명을 전파했다. 이는 북태평양에서 대기 중이던 제 1 기동함대에게 진주만 공격을 개시하라는 신호였다. 12월 8일에 전쟁이 시작되자 나가토는 2기동함대에 배속되어 있던 전함 무쓰(陸奥), 휴우가(日向), 야마시로(山城), 후소(扶桑), 이세(伊勢) 및 경항모 호쇼(鳳翔) 함과 함께 보닌 섬으로 출항했다. 이들은 진주만 공습대의 귀환을 원거리에서 지원하는 임무를 맡았다.
나가토 함은 1942년 6월에는 미드웨이(Midway) 해전에 참전했으나 전투 자체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나가토는 태평양 전쟁 개전 후 첫 2년간 대부분 일본 인근 연안에서 훈련 임무만 소화했을 뿐이다. 그러던 중 1943년 중순에야 나가토는 트룩(Truk)으로 이동했지만, 나가토가 참전한 첫 전투 다운 전투는 1944년 중순에 벌어진 필리핀 해 해전이었다. 이 전투에서 나가토는 미 함재기에게 공습을 받았지만 제대로 반격하지 못했으며, 미군을 향해 '첫 공격'을 실시한 것은 같은 해 10월에 벌어진 레이테 만 전투 때였다. 레이테 만에서 미군에게 공격 당한 나가토는 가벼운 피해를 입어 일본으로 귀환했다.
하지만 나가토의 수리가 시작됐을 무렵에는 일본 해군이 연료 부족 현상에 시달리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결국 일본 해군은 나가토를 완전히 수리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며, 대신 개조를 가해 수상형 방공(防攻) 플랫폼으로 개조하고 해안 방어 임무만 부여했다.
1945년 7월, 미군은 남아있는 잔여 일본군 주요 함정을 격파하기 위해 대규모 폭격을 가했지만, 희한하게도 나가토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은 채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종전했을 무렵 나가토는 일본 해군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전함이었다.
전후 미국은 나가토를 인수했으며, 함정 구조와 설계 등을 살펴본 뒤 1946년 중순 핵 무기 개발에 본격 돌입하면서 표적함으로 지정했다. 나가토는 크로스로드 작전(Operation Crossroads)에 투입되어 핵 무기에 피탄 됐지만 첫 발을 맞고도 버텼고, 결국 연이어 투하된 두 번째 핵무기에 격파 되면서 비키니(Bikino) 산호지대의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현재 나가토는 심해 33.5m 해저에 가라앉아 있으며, 선체가 완전히 위 아래로 뒤집힌 상태로 바닥에 닿아있다. 나가토의 침몰 잔해는 2007년 <타임즈(The Times)>가 선정한 "다이버들을 위한 세계 최고의 해저 침몰 잔해 10선>에 포함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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