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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1941. 12. 7] 진주만 기습을 지휘한 일본 해군 항공대장

라마막 2023. 5. 28. 10:09

후치다 미쓰오(淵田美津雄, 1902~1976) 대위는 일본 해군 항공대 소속이었으며, 2차대전 이전부터 종전 시기까지 폭격기 관측사였다. 그는 1941127, 진주만 공습을 실시했을 당시 일본 기습함대의 제 1()를 지휘했던 인물로 가장 잘 알려졌다. 이 날 그는 나구모 주이치(南雲 忠一, 1887~1944) 중장이 지휘하는 기습함대의 항공 전력 전체를 관장했다.

종전 후 그는 기독교로 개종해 전도사가 되었으며, 미국과 유럽을 다니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설파했다. 그는 말년에 미국으로 이주했으나 미국 국적을 취득하지는 않았다. 그가 전후에 밝힌 회고담은 사실 신빙성 문제 때문에 역사가들이 종종 의구심을 갖는 편이다. 특히 진주만에서 2파 공격이 끝나자 후치다 자신은 3파 공격을 주장했지만 나구모가 거부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전사가들은 회의적인 편이다.

1941127일 오전 753, 후치다는 제 1 항공함대 기함인 아카기(赤城) 함에 "도라! 도라! 도라! (トラ・トラ・トラ)"라는 암호문을 본국으로 전달하게 했다. 이 메시지는 기습이 완벽하게 먹혀 들어갔다는 신호였다. 그가 보낸 이 비문은 전날 밤을 지세우면서 승전보만 기다리고 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1884~1943) 연합함대 사령관과 그의 참모들에게 전달됐고, 이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환호했다.

1파 공격대가 기습을 마치고 항모로 귀환한 뒤에도 후치다는 계속 진주만 상공에 남아 표적 피해 평가와 2파 공격을 위한 관측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2파 공격까지 완수가 되자 항모로 귀환했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자랑스럽게 미 해군 전함 여러 척을 격침 했다고 보고했다. 후치다는 하기 후 자신의 전투기를 살펴보던 중 미군 방공포에 21발이나 맞은 것을 발견했으며, 심지어 컨트롤 와이어는 거의 끊어지기 직전까지 가 있었다.

진주만 기습의 성공으로 후치다는 국가적 영웅이 되었으며, 이 공로로 히로히토(昭和, 1901~1989) 천황은 그와 독대를 허락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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