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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2차세계대전사

[1941. 12. 7] 태평양 전쟁을 시작한 미 구축함의 첫 한 발

라마막 2022. 12. 28. 10:55

미군에 인양된 코효테키 잠수정. / 디지털채색=Erick Navas

많은 이들의 상상과 달리, 사실 태평양 전쟁을 시작한 "첫 한 발"의 총격은 일본군이 아닌 미군 구축함에서 발사됐다.

127일 새벽 545, 미 해군 소속 화물선인 안타레스 함(USS Antares, AG-10)진주만 외곽에 설정된 방어 해상 구역(Defensive Sea Area) 바깥에서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포착했다. 이에 구축함 워드 함(USS Ward, DD-139)이 해당 물체를 향해 오전 6:37분경 두 발의 함포를 발사했다. 워드 함의 두 번째 함포 사격이 해당 물체에 명중했으며, 뭔지 알 수 없던 '그것'은 가라앉은 것 같았다.

당시 명중 당한 잠수함은 선발대로 진주만에 온 일본군 소형 잠수정으로, 이 잠수정에 타고 있던 두 명의 일본군 수병은 태평양 전쟁 발발 후에 발생한 첫 전사자가 되었다.

이 날 진주만 인근에서는 계속 잠수함이 포착됐으며, 심지어 진주만 입구와 만() 안쪽에서도 포착됐다. 오전 8:30, 미 해군 구축함 모나한(Monaghan, DD-354)함이 두 번째 잠수정을 선체로 들이받아 침몰 시켰다.

이튿날 오전, 살아남은 소형 잠수정 하나와 그 안에 타고 있던 사카마키 카즈오(酒巻和男, 1918~1999) 소위는 오아후 섬 해안으로 떠밀려 왔다. 그는 태평양 전쟁 개전 후 처음으로 미군에 생포 된 일본군 포로가 됐으며, 미 해군은 전날 오전 내내 자신들이 포격을 해댔던 물체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사카마키 소위가 타고 있던 '물체''A-코효테키(A-甲標的甲)'형 잠수정으로, 2차세계대전 종전 후 기록에 따르면 진주만 공습 당시 총 다섯 척이 전개됐다. 길이 23.9m, 1.8m에 불과한 이 소형 잠수정은 두 명이 탑승할 수 있었고, 전기 모터로 약 600마력의 출력을 냈으며, 이들 소형 잠수정은 더 큰 잠수함에 '탑재'될 수 있었다.


A-
코효테키 잠수정은 전쟁기간 중 총 50척이 건조 됐으며, 이름에서 보듯 일부러 "표적"이라는 명칭을 넣어 혹시 선전포고 전에 이 정찰용 잠수정이 적에게 나포 되거나 포착될 경우 "훈련용 표적함"이라고 주장할 생각이었다.

진주만 공습 당일 날 이들 잠수정은 이()형 잠수함 I-24에 탑재되어 진주만까지 왔으며, 이후 태평양 전쟁이 전개되면서 시드니(호주), , 키사카 섬에서 한 척씩 나포되어 총 3척이 연합군 손에 들어갔다. 이들 잠수정에는 450mm 어뢰 두 발이 장착되어 있었으며, 350kg 탄두를 장착한 사거리 5.5km97식 어뢰를 운용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됐듯 이들 잠수정은 진주만 공격 후 1942529일 야간에 실시된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기습 때 목격됐다. 그 외에도 1942529일 아프리카 동해안의 마다가스카르 섬 인근에서 영국군의 리벤지(Revenge)급 전함인 라미(HMS Ramillies)함이 디에고 수아레즈 항에 기항한 것을 일본군이 발견하자 I-20 I-16 잠수함으로 섬에 다가가 이 'A-코효테키' 잠수정으로 공격했다. 이날 공격으로 라미 함은 한 발의 어뢰에 피탄 됐으며, 두 번째 어뢰가 6,993톤의 유조선인 로열티(HMS Loyalty)함을 격침 시켰다. 영국은 이후 로열티를 인양해 수리했으며, 라미 함 역시 항구에서 고쳐 다시 전선에 투입했다.

코효테키 잠수정. / Public Domain

이 날 기습에 참가했던 "A-코효테키' 잠수정 두 척 중 하나에 탑승한 아키에다 사부로(秋枝三郎, 1916~1942) 중위와 타케모토 마사미(竹元正美, ?~?) 하사는 잠수정을 노지 안탈리 클리(Nosy Antaly Kely)에 정박 시킨 뒤 앰버(Amber) 항에 내렸으며, 이 곳의 한 마을에서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침입하던 중 영국 왕립 해병대에게 포착되어 3일 뒤 사살 당했다. 한 편 이날 함께 기습한 다른 '아코효테키' 잠수정은 귀환하지 않고 실종됐으며, 이튿날 승선 중이던 승조원 한 명의 시신이 마다가스카르 해안으로 밀려와 귀환하지 못한 이유를 짐작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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