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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12. 21] 미 육군의 맹장, 조지 패튼 대장이 교통사고로 사망

라마막 2022. 12. 25. 11:27

조지 패튼 미 육군 대장 (1885~1945)

19451221, 미국의 명장인 조지 패튼(George Smith Patton, 1885~1945) 장군이 독일 만하임에서 사고로 사망했다.

: 독불장군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명장으로, 히틀러조차 "연합군에서 가장 위험한 사내"라고 불렀던 인물이다. 캘리포니아 주 LA 외곽인 산 게이브리얼(San Gabriel) 태생으로 어려서부터 군인을 동경했으며, 평생 "군인 외에 다른 직업은 생각도 해 본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대학을 지원할 때 웨스트포인트 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 신청을 넣었으나 상원의원 추천장이 없어 대기에 걸리자 ROTC 과정이 있는 여러 대학에 지원했고, 그 중 프린스턴 칼리지(Princeton College)에 입학 허가가 나왔으나 버지니아 사관학교(VMI)로 진학했다. 그러던 중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의 추천서 한 부를 얻는데 성공하면서 웨스트포인트로 학적을 옮겼으며, 1909103명의 동기 중 46등으로 졸업했다. 그는 임관 당시 기병 병과 소위로 임관했다.

그는 1912년 올림픽에 승마선수로 출전하기도 했으며, 1915년에는 판쵸 비야(Pancho Villa) 진압을 위한 미 원정군에 포함되어 활약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미군이 원정군 파병을 결정했을 때 이 원정군에서 제외됐는데, 그는 낙심하지 않고 존 퍼싱(John J. Pershing) 장군을 찾아가 읍소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퍼싱 장군 사무실 앞에 의자를 갖다놓고 꼬박 이틀을 버텼으며, 결국 오며가며 그를 본 퍼싱은 그에게 다가가 "좋아, 내 관심을 사는데 성공했네, 대위. 뭘 원하는건가?"라고 말을 걸었다. 이에 패튼은 "미 원정군에 참가하고 싶은데 제 소속대가 파병대상 부대에서 제외되어 찾아왔습니다. 장군님 전속부관으로 따라가고 싶습니다."이라고 말했고, 퍼싱은 "안타깝네만 난 이미 부관을 둘이나 뽑았는데..."라고 답을 했다. 하지만 패튼은 "그렇다면 한 명 더 뽑아도 달라질게 없지 않습니까? 대신 저를 뽑아주시면 절대로 후회하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라고 약속하여 결국 파병부대에 포함됐다.

이렇게 퍼싱과 인연을 맺은 패튼은 2차 세계대전에 처음 참전했을 때에도 일부러 퍼싱을 찾아가 "대원수(General of the Armies)님의 축복을 받고 출전하고 싶어 찾아왔다"고 말했고, 퍼싱은 그를 축복하는 동작을 취하며 후배의 건승을 기원해주었다.

: 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에 대장으로 진급한 그는 종전 시점에 미 제 15군을 맡았으나, 이미 전쟁 마무리 단계였으므로 15군은 거의 사령부만 남아있고 해편에 들어간 부대였다. 이후 패튼은 한동안 파리, , 샤르트르, 브뤼셀, 메츠, 룩셈부르크, 베르됭 등지를 돌며 여행을 즐겼으나, 이후 15군 사령관직을 사임하기로 하면서 본토로 돌아가 근무할지, 아니면 전역할지를 놓고 고민했다.

그러던 중인 1945128, 패튼의 참모장이던 호바트 게이(Hobart Gay, 1894~1983/6.25 전쟁에도 1기병사단장으로 참전) 장군이 자신의 주둔지이던 슈파이어(Speyer)에서 꿩사냥을 하자고 패튼을 초청했다. 사냥을 나가던 그는 차에서 일어서 독일 주변을 둘러보던 중 "전쟁이라는게 얼마나 끔찍하냐 이거야. 쓸모없이 버려진게 얼마인지 보라구"라고 말을 했다. 그 순간 패튼이 탄 차는 저속으로 맞은 편에서 오던 미군 트럭과 충돌했다.

이 때 앉아있던 호바트 게이 소장과 운전병은 경상을 입었을 뿐이나, 일어서있던 패튼은 뒤로 나동그라지면서 뒷 유리창을 머리로 깨면서 큰 부상을 입었다. 그는 머리에서 엄청나게 피를 흘렸으며, 사고 직후 호흡이 어렵고 몸이 마비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패튼은 하이델베르크의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으며, 검사 결과 복합골절이 발생하고 늑골이 부러졌으며, 목뼈 일부와 척추가 손상되어 목 이하로 몸이 마비된 것이 밝혀졌다.

패튼은 치료를 위해 12일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패튼의 부상 사실은 철저하게 비밀로 함구됐다. 그는 한동안 의식이 있었는데, 의사가 '앞으로 회복되시더라도 승마를 하거나 일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하실 거다'라고 말하자 "X나 끔찍하게 뒈지겠군."이라고 내뱉었다. 그는 투병 중이던 19451221, 폐부종과 울혈성 심부전이 오면서 수면 중에 사망했다.

그는 룩셈부르크 내의 룩셈부르크 미군 묘지에 안장되었으며, 자신이 지휘하던 미 제 3군 장병들 사이에 영면했다. 이는 본인이 만약 사망할 경우 "내 병사들 사이에 묻어주게"라고 말한 유언을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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