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무기체계

[1943] 사상최대규모의 열차포, 구스타프 열차포

라마막 2023. 4. 5. 00:39

1943년경 촬영된 슈베러 구스타프(Schwerer Gustav), 일명 "구스타프 열차포"의 모습. 이 전차포는 역사상 전장에서 실제 운용된 강선포 중 최대구경을 자랑한다. 조립 완료시 중량은 1,350톤에 달했으며, 포탄 무게만 7톤에 최대 사거리는 약 47km에 달했다. 이 열차포는 포신 중량 때문에 철도를 이용해 이동시켰다.

독일군은 개전 전부터 열차포를 개발했으나 철도 이동이나 조립에 필요한 시간 등 전장에서 사용하기에 제약이 많아 실제로는 바르바로사(Barbarossa) 작전 중 크름반도 전투 때 처음 열차포를 전장에 투입했다. 열차포는 세바스토폴 전투에 동원되어 지하 30m 깊이에 파놓은 소련군 탄약고를 관통해 격파했다.

열차포는 1945년, 소련 붉은군대에 열차포가 노획 당할 것을 우려한 독일군이 스스로 파괴했다.

: 개전 전인 1937년부터 독일 크루프(Krupp)사가 개발한 대형 포. 두 대가 제작됐으며, 포 구경은 31인치(80cm)에 달한다. 하지만 앞서 기술했듯 운용에 제약이 컸는데, 우선 조립에만 250명이 필요했고, 조립 자체에 최소 54시간(3일)이 소요되었으며, 열차로를 깔고 출발시키는데만 2,500명이 있어야 했다. 게다가 하늘에서 워낙 분명하게 보이는 초 거대 물체라 사격 간에는 최소 2개 방공대대가 주변에서 보호를 해줘야만 했다.

발사 속도 역시 문제였는데, 1발을 쏘는데 30~45분이 소요됐으며, 방열 등을 모두 고려할 시 하루에 쏠 수 있는 최대 사격량은 14발 정도였다.

최초 이 거대한 대구경포를 제작하기 시작한 이유는 프랑스군이 독-불 국경에 세우기 시작한 마지노(Maginot) 요새 때문이었다. 따라서 최초 설계철학은 사거리보다 관통력에 집중해 1m 두께의 강철판이나 7m의 강화 콘크리트를 격파해야 했으며, 기동성이 전혀 없는 포를 보호해야 했으므로 최대한 프랑스군 포 사거리 밖에서 쏘도록 제작했다.

사실 개발 착수 후 진도는 빠르지 않았으나, 1936년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가 에센(Essen)의 공장에 방문하면서 거대 포의 타당성을 보고 받으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제작 공장은 1937년에 완공됐으며, 1938년부터 열차포 치장에 들어가 개전 전까지 완성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워낙 대량의 강철이 소요됐으므로 물자 확보가 어려워 1940년 초까지 완성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됐다.

크루프 사는 1939년 말 시제품 한 대를 완성해 힐러슬레벤(Hillersleben) 사격장에서 시험에 들어갔으며, 고각 사격으로 7.1톤 포탄이 7m 콘크리트와 1m 장갑판을 돌파함에 따라 관통력이 검증됐다. 열차포는 1940년 중반까지 완성됐으며, 포의 이름은 크루프 사의 알프레드 크루프(Alfried Felix Alwyn Krupp non Bohlen un Halbach, 1907~1967) 사장의 이름이 붙어 "크루프"포로 명명됐다. 열차포는 1941년 9월 10일에 실전배치 됐으며, 1942년 2월 제 672 중포병부대를 재편하여 크루프 포를 전개했다.

열차포가 완성됐을 때는 사실 그 최초 목적을 상실한 상태였다. 독일군이 벨기에 아르덴느 숲을 관통해 프랑스를 치면서 마지노선을 우회해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완성도 늦었던 데다가 아무 전선에서나 전개하기에는 손이 많이 가고 보호가 어려워 실전 사용이 늦어졌다. 그러던 중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25대의 열차에 구스타프 포를 얹어 크름 반도로 이동 시켰으며, 1942년 2월 페레코프(Perekop) 지협까지 도달했으나 4월까지 그 곳에서 대기했다. 독일군은 열차포 운반을 위해 포격 목표 북쪽으로 선로를 깔았으며, 조립용 크레인 이동을 위해 두 줄 트랙으로 설치했다.

열차포는 세바스토폴에 최초 전개되면서 약 25km 떨어진 해안포와 스탈린 요새, 몰로토프 요새, 시베리아 요새 등을 격파하고, 탄약고와  다수의 고정 목표를 제거했다. 이후 포는 레닌그라드로 이동했는데, 아마도 독일이 이를 이동시킨 것은 폴란드의 바르샤바 봉기 진압을 위해 전개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봉기 자체가 열차포 이동 후 조립 전에 진압됨에 따라 실제 사용되지는 못했다. 이후 전투에 더 이상 동원되지 못한 구스타프 포는 그 자리에 내내 대기하다가 소련군이 진주해옴에 따라 독일군이 스스로 파괴해버렸다.

구스타프 열차포는 역사상 최대구경 강선포였으며, 역사상 가장 무거운 포탄을 날려보낸 야포로 기록됐다. 영국의 말레의 박격포(Mallet's Mortar/36인치 구경)나 미국의 리틀 데이비드(Little David/36인치) 시험용 박격포 등 단순히 포 구경에서는 열차포를 능가하는 포가 있었으나, 이 세 포 중 실전 기록을 남긴 것은 구스타프 열차포 하나 뿐이었다.

#2차세계대전 #전쟁사 #역사사진 #무기체계 #야포 #대포 #열차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