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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2차세계대전사

[1944] 독일 협력 혐의로 삭발당한 프랑스 여성들

라마막 2023. 1. 29. 10:46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 협력했거나 독일군인의 애인이 되었던 프랑스 여성들이 단죄의 의미로 공개 삭발당한 후의 모습. 주로 1944년 연합군의 파리진주 이후부터 일명 '수평적 협력자(Collaboration Horizontale)' 색출이 시작되며 공개적으로 삭발을 당했다.

이 삭발은 중세 때부터 이루어진 일종의 '모욕'으로, 주로 서고트족이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단죄할 때 가했던 처벌이었다.

사실 이 '삭발' 행위를 당한 것은 비단 독일에 협력한 프랑스 여성 뿐이 아니었다. 독일이 프랑스를 정복했을 당시, 1차대전 후인 1923년 이후부터 프랑스령이 됐던 라인란트 내에서 프랑스 군인들과 관계를 맺었던 독일 여성들은 독일인들에 의해 삭발을 당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때에도 나치 정부는 비 아리아인이나 농장에 강제 부역 중인 외국인 포로와 관계를 가진 여인들을 모두 색출해 공개적으로 삭발행위를 실시했다.

심지어 스페인 내전 때에는 팔랑헤(Palangist) 당원들이 공화국군 가족 중 여성 구성원을 창녀취급하며 모욕을 가했다. 이는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에도 로버트 조던의 연인인 마리아를 통해 잘 묘사되어 있다.

사실 1944년 이후 이들 여성의 머리를 삭발하며 모욕을 가했던 이들은 레지스탕스 출신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상당 수가 독일에 협력한 전과자들이었다. 그들은 이들 여성에게 비난의 화살이 몰리게 하여 자신이 빠져나가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보복의 단계에서는 누구를 가릴 것 없이 잔인해지는 경향이 있었는데, 브르타뉴 같은 곳에서는 전쟁 말 보복행위로 살해당한 민간인의 1/3이 여성이었다.

사실 이들 여성 중 적극적인 독일 협력자가 얼마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상당 수는 독일 점령기간 중 생계문제로 독일인과 동침한 창녀들이었고, 일부는 진주해 온 독일인과 '모험적인' 사랑을 시도한 철없는 10대들이었다. 이들 중 독일인과의 관계가 정치적인 의미를 내포한다고 믿은 이는 소수에 불과했다.

특히 이 '수평적 협력자'로 지목된 여성들은 대다수는 보호받기 힘든 미혼모 여성들이기도 했다. 대부분 아이의 아버지인 독일군인은 포로로 끌려간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삭발을 당한 후 반 나체 상태나 얼굴에 타르를 바른 상태로 시가 행진을 강요당했고, 신체 일부에는 조롱의 의미로 스와스티카 문양이 그려졌다.

사실 이 행위 자체는 진주한 연합군들조차 달갑게 보지 않았다. 처칠 영국 수상의 비서였던 조 콜빌은 이 행진을 보며 "인간의 잔혹성에 눈길을 돌리게 된다...물론 영국은 지난 900년간 외세의 점령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감히 내가 저들을 판단할 입장은 아닐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1944년부터 약 2만 명의 여성이 삭발을 당한 것으로 기록되었으나, 사실 전후 집계 시 독일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8만 명이 넘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실제 수치는 이보다 훨씬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여성에 대해서만 가혹했던 이 복수 행위는 독일에 점령당할 당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프랑스인들의 분노와 허탈감의 표출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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