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논란이 되어 온 <노르망디의 한국인> 사진.
장동건, 오다기리 조가 주연한 2011년작 《마이웨이》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던 내용이다. 참고로 그가 처음 "한국인"이라는 단서도 이 사진 뒷면에 사진 촬영자가 취조 과정에서 들은 이름인 '양경종(Yang Kyoungjong)'을 영어로 휘갈겨 써놔 처음 알려졌음.
: 2차 세계대전 중 3개국 군복을 입었던 것으로 알려진 유일한 한국인 병사의 모습.
'양경종'은 조선 출신으로, 최초 일본군에 입대했다가 소련군에게 생포됐고, 소련군에 입대해 대독(對獨) 전선에 투입됐으며, 다시 독일군으로 입대해 노르망디를 방어하다가 미군에게 생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전 양경종의 행적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으나, 단지 알려진 것은 그가 조선 출신이고, 2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만주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 뿐이다. 그는 1938년 18세의 나이로 일본군에 병사로 입대해 관동군(關東軍)에 편성됐다.
칼킨 골(Khalkin Gol) 전투에 투입된 그는 소련군과 전투 중 생포 당했고, 그 길로 만주로 보내져 강제 노동 캠프로 배치됐다. 하지만 독소(獨蘇)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인력이 부족했던 소련은 그를 포함한 수천 명의 병사에게 소련 군복으로 갈아입힌 후 수인(囚人)부대로 편성했다. 1942년, 이 수인부대는 동부전선의 수많은 전투에 강제 투입됐으며, 양경종 역시 카르코프(Kharkov) 3차 전투를 비롯한 다양한 전투에 투입되며 1년 가량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로 이 전투에서 양경종은 다시 한 번 독일군에게 포로로 사로잡혔다.
독일군은 포로 취조를 했으나 굳이 조선인이 어쩌다 소련군에 소속되어 우크라이나에서 싸우게 됐는지에는 크게 관심 없었다. 이미 독일군 자체에 이런저런 인종 출신들이 꽤 많이 유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은 포로들의 입대 의사를 확인한 뒤 독일국방군 제 709 보병사단 예하 동방대대에 편성 시켰으며, 양경종은 여기서 마지막으로 독일군 군복으로 다시 한 번 갈아입었다.
동방대대는 독일이 점령 중이던 유럽 각지 출신의 "자원병"들을 털어 넣은 혼성대대였으며, 이들은 노르망디 반도에 배치되어 혹시 모를 연합군에 대한 방어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 대대는 곧 지원부대와 완충부대 등이 붙으면서 증편했다.
양경종은 최초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전 프랑스의 코탕텡(Cotentin) 반도 방어 임무에 투입됐다. 연합군이 오버로드(Overlord) 작전, 통칭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개시하자 허를 찔린 독일군은 연합군의 해안 상륙을 허용했고, 양경종은 미 제 506 낙하산 보병연대(PIR: Parachute Infantry Regiment)에 생포됐다.
최초 그를 생포한 506 보병연대 소속 로버트 브루어(Robert Brewer, 1924~1996, 1957년 대령 예편) 중위는 "독일 군복을 입은 네 명의 동양인"을 체포했다고 보고서에 적었다. 그의 말이 틀리진 않았지만, 506연대는 양경종을 포함한 이들 4명 모두가 일본인이라고 판단했다. (사실 양경종을 제외한 3명은 투르키스탄 출신으로 확인됨) 로버트 브루어 중위가 양경종의 국적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은 양경종 자신이 영어나 독일어를 둘 다 못했기 때문에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해서였다.
양경종은 생포 후 영국의 포로 수용소에 수용됐으며, 2차 세계대전이 종전할 때까지 그 곳에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그는 수용소에서 풀려났지만,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 미국 이민을 선택했다. 그는 일리노이 주 쿡 카운티(Cook County, IL)에 정착했으며, 80년대 말쯤 일각에서 그의 이야기를 취재하기 위해 일부 언론이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는 그 곳에서 조용히 살다가 1992년에 타계했다.
"진실은 허구보다 기묘하다." -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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