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1월 20일,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이 시작됐다.
뉘른베르크 재판은 우선 24명의 고위급 나치 관리를 대상으로 재판을 시작했으며, 전후 전쟁범죄 조사가 진행되면서 대상자가 늘었다.
연합군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포로가 된 나치 관리들의 처우를 고민하게 됐으나,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나왔다. 스탈린은 사로잡은 나치 장교와 정부관리 대부분을 대규모 처형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영국은 이들 전부에 대한 일괄적 처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후에는 미국, 프랑스, 영국, 소련 모두 포로가 된 나치 관리에 대해 재판을 벌인 후 '최악의 인물'들에 대해서만 처형하는데 동의했다.
재판은 국제 군사법원(IMT: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에서 처리하기로 했으며, 이 법원은 나치가 저지른 반인륜 범죄와 대량 학살 문제부터 우선순위로 두고 증거 수집에 들어갔다.
재판에서 한 명의 전범은 최대 4건의 범죄로 기소될 수 있었다. 첫째는 평화에 대한 전쟁범죄였으며 여기에는 전쟁 음모와 흉악한 전쟁 준비도 포함됐다. 예를 들어 2차대전 초 독일의 폴란드 침공과 관련된 인물들은 대부분 이 항목에 포함됐다. 둘째는 전쟁범죄였다. 나치 정권은 제네바 협약을 지속적으로 위반했으며, 특히 소련에서 위반한 건수가 많았다. 세 번째가 가장 중범죄였는데, 이는 반인륜 범죄였다. 이 범죄는 인권과 관련하여 선례가 없을 정도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경우를 말하며, 유대인, 집시, 슬라브족, 전쟁포로, 정치범 격리와 가스를 이용한 인종 청소나 대규모 격리, 강제 노동, 대량 학살 등이 포함됐다. IMT는 그 중에서도 유대인을 상대로 자행한 '홀로코스트' 범죄 추적에 집중했는데, 전쟁 말에 밝혀진 것만 해도 600만 명에 가까운 유대인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또한 소련은 독일의 침공 중 민간인을 포함해 200만 명이 살해당한 사건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파헤치기를 희망했다. 마지막 하나는 앞서 언급된 세 범죄를 실행하기 위해 계획하거나 설계한 혐의였다.
사실 전쟁 범죄의 핵심인 히틀러, 괴벨스, 히믈러 등은 이미 자살해버리고 난 뒤였으므로, 재판소는 사죄를 거부하는 나치 고위관리들의 단죄에 집중했다. 이들은 프란츠 폰 파펜(Franz von Papen, 1879~1969) 전 독일 수상,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Joachim von Ribbentrop, 1893~1946) 외무장관, 빌헬름 프리크(Wilhelm Frick, 1877~1946) 등이다. 군인들에 대해서도 재판이 진행되어 빌헬름 카이텔(Wilhelm Keitel, 1882~1946) 총장(원수), 알프레드 요들(Alfred Jodl, 1890~1946) 최고사령부 작전참모부장, 에리히 레더(Erich Raeder, 1879~1960) 제독(원수), 칼 되니츠(Karl Dönitz,1891~1980) 총통(원수) 등이 주요 대상이 되었다. 재판에 회부된 가장 거물은 헤르만 괴링(Hermann Göring,.1893~1946) 원수였다.
재판 결과 총 12명에게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9명에게는 종신형이 떨어지고, 3명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하지만 종신형에 처해진 인물 대부분은 신(新)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이 출범하면서 감형되어 조기 출소했다.
이 재판에서는 독일의 전쟁범죄에 가담한 기업들에 대해서도 재판을 실시했으며, 그 결과 크루프(Krupp), IG 파르벤(IG Farben), 아들러(Adler), AEG, 알리안츠(Allianz), 아우디(Audi), BMW, 바이엘(Bayer), 칼 자이스(Carl Zeiss), 하인켈(Heinkel), 융커스(Junkers), 메르세데스 벤츠(Mercedes-Benz), 포르쉐(Porche), 푸흐(Puch), 휴고보스(Hugo Boss), 라인메탈(Rheinmetall),
지멘스(Siemens), 슈타이어(Steyr), 폭스바겐(Volkswagen), 도니어(Doenier) 등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들 업체 상당 수는 유대인, 집시, 슬라브 등 강제 수용자와 포로 등을 강제노역에 투입한 혐의를 받았으며, 상당 수 군수관련 산업 참여 금지를 받아 강제로 업종을 전환하거나 폐업했다. 이들 역시 신생 독일이 출범하면서 대부분 사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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